에프레임 라커

Efraim Racker
에프레임 라커
태어난(1913-06-28)1913년 6월 28일
죽은1991년 9월 9일(1991-09-09) (78)
국적오스트리아의
로 알려져 있다.ATP 싱타아제 효소의 첫 번째 부분인 식별 및 인자 1(F1)
수상워런 트리엔니얼상 (1974년)
국립과학훈장 (1976년)
게어드너상(1980년)
과학 경력
필드생화학

에프레임 라커(Efraim Racker, 1913년 6월 28일 ~ 1991년 9월 9일)는 오스트리아생화학자로, ATP 싱타아제 효소의 첫 번째 부분인 인자 1(F1)을 식별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F1은 Complex V로 알려진 더 큰 ATP synthase complex의 일부일 뿐이다. 성분 Fo에 부착된 말초막 단백질로, 막에 내장되어 있다.[1]

초년기

에프레임 라커는 1913년 폴란드 산데즈(당시 오스트리아 갈리시아)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에서 자랐다. 그의 형 하인리히 라커는 유명한 정신분석가가 될 예정이었다. 에프레임 라커는 1938년 히틀러가 침공했을 때 비엔나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래커는 영국으로 도망쳐 웨일즈의 정신병원에 취직했다. 그의 연구는 정신질환의 생화학적 원인에 초점을 맞췄다. 전쟁 중에 라커는 의학을 실습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했다.[2]

경력

미국에서는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생리학 연구원으로서의 직책을 수락했다. 그는 뇌질환의 생화학적 근거를 조사하던 중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쥐의 뇌에서 당분해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결국 뉴욕시의 할렘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기 위해 연구직을 떠났다. 1944년에 그는 뉴욕대학교 의과대학미생물학 부교수가 되었고, 그곳에서 글리콜리시스 연구를 계속했다.[2]

In 1952 he accepted a position at Yale Medical School, but left after two years to accept the position of chief of the Nutrition and Physiology Department at the Public Health Research Institute of the City of New York. It was here that Racker demonstrated that glycolysis was dependent on ATPase and the continuous regeneration of ADP and phosphate. Maynard E. Pullam joined Racker's staff in 1953, and decided to uncover the mechanism of ATP synthesis in mitochondria and chloroplasts. Joined by Anima Datta and Harvey S. Penefsky, they set out to identify the enzymes used in ATP synthesis.[2]

Racker left the Public Health Research Institute in 1966 to found the biochemistry department at Cornell University. He continued his research at Cornell, and was awarded many honors and prizes, including the Warren Triennial Prize in 1974, the National Medal of Science in 1976, the Gairdner Award in 1980, and the America Society of Biological Chemistry's Sober Memorial Lectureship. In addition, he was appointed to 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and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3] Efraim Racker died in 1991, leaving colleague and friend Dr. Mossaad Abdel-Ghany to take care of his lab and graduate students, but not before coining the phrase, "Don’t waste clean thinking on dirty enzymes," which is often quoted as one of "The Ten Commandments of Enzymology".[2]

Discovery

Racker and his associates, Anima Datta, Maynard Pullmand, and Harvey Penefsky, worked to isolate the enzymes involved in ATP synthesis. They observed that isolated mitochondrial fragments were capable of respiration but not able to synthesize ATP. Racker and his co-workers concluded that oxidative phosphorylation could be restored by addition of the supernatant from the centrifuging. The complex making this restoration possible was named Factor 1 or F1 as it is a necessary coupling factor for ATPase activity. This discovery of the first enzyme of oxidative phosphorylation was identified and purified in 1960.[4]

F1을 막에 묶는 인자인 Fo는 나중에 가가와 야스오와 함께 발견되었다. 이 입자는 항생제 올리고민에 민감한 것으로 밝혀져 Fo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발견은 ATPase 활성 콤플렉스에 대한 올리고마이신 민감성을 부여했기 때문에 산화 인산화에서 F1의 역할에 대한 비평가들을 침묵시키는 추가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4] 일단 이 두 가지 요인이 모두 확인되면, Racker는 Peter D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중의 의견과는 달리, ATP 합성은 고에너지 중간을 통한 호흡에 결합되지 않고 대신 투과형 양성자 구배에 의해 결합된다는 미첼의 가설.[2]

F1은 미토콘드리아 내 ATP 합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콤플렉스 V는 ATP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양성자 구배를 생성할 수 없다.[1] ADP와 무기인산염의 ATP 합성에 영양소의 산화를 결합하는 역할을 한다.[4]

1991년 9월 6일, 라커는 심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3일 후 시라큐스에서 사망했다.

참조

  1. ^ a b 콕스, 마이클 M, 데이비드 L. 넬슨. 제4판 생화학 레닝거의 원리. 뉴욕: WH Freeman and Company. 2005
  2. ^ a b c d e 크레지, 니콜, 로버트 D 시모니와 로버트 L. 힐. "산화 인산화 효소 분해: 에프레임 라커의 작품" 생물 화학 저널 제281권, 2006년 1월 27일자 4호. http://www.jbc.org/cgi/content/full/281/4/e4
  3. ^ University, Cornell. "Biographical timeline Efraim Racker". efraimracker.library.cornell.edu. Retrieved 2016-03-10.
  4. ^ a b c "에프레임 라커" 전기 회고록 70권. 1996년 국립과학원 http://www.nap.edu/readingroom/books/biomems/eracker.html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