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육식(六識, 산스크리트어: sadvijñāna, 영어: six vijñānas, six consciousnesses)은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을 말한다.[1] 복수형 접미사 신(身)을 사용하여 6식신(六識身)이라고도 한다.[2]
부파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1가지로 단일한 것이지만 그 발동 근거인 6경(六境)과 6근(六根)에 따라 이들 6가지의 식(識: 요별, 지식. 앎, 의식)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3][4] 이와는 달리,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이 부파불교에서 말하는 6식에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추가된 8식(八識)으로 나뉜다고 본다.[5][6]
불교에서는 모든 객관적 대상을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 · 법(法)의 6경(六境)으로 나누는데, 6식은 이 6경에 대하여 보고[見] · 듣고[聞] · 냄새 맡고[嗅] · 맛보고[味] · 감촉하고[觸] · 아는[知] 인식작용이다.[1][4]
정의
편집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논사인 세우(世友)는 《아비달마품류족론》에서 마음[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心云何。謂心意識。
此復云何。謂六識身。即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마음[心]이란 무엇인가? 심의식(心意識)을 말한다.
이것[심의식]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6식[六識身, 6가지 식]을 말한다. [6식, 즉 6가지 식이란] 곧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신 · 구 · 의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키는 집기(集起)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서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심(心)이라고도 하고, 과거에 쌓은 원인 즉 업에 바탕하여 생각하고 헤아리는 사량(思量)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서 의(意)라고도 하고, 또는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 또는 대상을 아는 요별(了別: 앎)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서 식(識)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들 3가지 능력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뜻에서 심의식(心意識)이라고도 한다.[7][8] 한편, 주의해야 할 점으로는, 불교는 행위외에 행위자를 따로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심의식(心意識)의 행위 또는 능력 외에, '마음'이라고 하는, 이 모든 능력을 소유한 별도의 행위자가 있지 않다고 본다는 점이다.[9][10][11]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6식, 즉 6가지의 식(識)으로 구분한 것은 심(집기) · 의(사량) · 식(요별)의 3가지 능력들 중에서 특히 식 즉 요별의 능력을 들어서 구분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심의식 중에서 굳이 3번째의 식을 들어서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6가지로 구분한 것은 요별(식, 인식, 식별, 분별, 앎, 지식)이 아무런 근거 또는 바탕 없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의 2가지의 작용 즉 집기(심)와 사량(의)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6식의 각각의 명칭을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으로 명명한 것은 식 즉 요별이 일어날 때 그 의지처[根] 또는 인식기관[根]이 되는 안근(眼根) · 이근(耳根) · 비근(鼻根) · 설근(舌根) · 신근(身根) · 의근(意根)의 6근을 따라 명명한 것이다.[12]
달리 말하면, 식 즉 요별이 일어날 때의 그 대상인 색경(色境) · 성경(聲境) · 향경(香境) · 미경(味境) · 촉경(觸境) · 법경(法境)의 6경에 따라 구분하여 색식(色識) · 성식(聲識) · 향식(香識) · 미식(味識) · 촉식(觸識) · 법식(法識)으로 명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점은 현대에서 지각 또는 의식을 구분할 때 시각 · 청각 · 후각 · 미각 · 촉각 · 의식(생각) 등으로 주로 인식대상을 기준으로 명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6식(六識)의 각각은 식(識) 즉 요별(了別: 앎)의 뜻을 바탕으로 보통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13][14] 아래의 정의에서 주의할 점으로는, '요별의 작용', '앎' 또는 '지식'외에 별도의 행위자, 아는 자 또는 지식을 소유한 자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요별 = 앎 = 지식 = 마음 = 요별하는 자 = 아는 자 = 지식을 소유한 자'이다.[9][10][11]
- 안식(眼識): 안근(眼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색경(色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 이식(耳識): 이근(耳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성경(聲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 비식(鼻識): 비근(鼻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향경(香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 설식(舌識): 설근(舌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미경(味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 신식(身識): 신근(身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촉경(觸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 의식(意識): 의근(意根)을 소의(所依: 발동근거)로 하여 법경(法境)을 요별(了別)하는 작용, 즉 앎, 즉 지식
아비달마품류족론
편집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서는 식(識)과 6식의 각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식(識) 즉 마음은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의 6식신(六識身) 즉 6식(六識)을 말한다.[15][16]
안식(眼識)은 안근[眼]과 색경[色]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안근의 인식[眼識]을 말한다. 이 때 안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색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안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색경에 대한[於眼所識色]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의 요별[已了別] · 현재의 요별[正了別] · 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안식(眼識)이라 이름한다.[17][18]
이식(耳識)은 이근[耳]과 성경[聲]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이근의 인식[耳識]을 말한다. 이 때 이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성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이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성경에 대한[於耳所識聲]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의 요별[已了別] · 현재의 요별[正了別] · 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이식(耳識)이라 이름한다.[17][18]
비식(鼻識)은 비근[鼻]과 향경[香]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비근의 인식[鼻識]을 말한다. 이 때 비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향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비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향경에 대한[於鼻所識香]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의 요별[已了別] · 현재의 요별[正了別] · 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비식(鼻識)이라 이름한다.[17][18]
설식(舌識)은 설근[舌]과 미경[味]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설근의 인식[舌識]을 말한다. 이 때 설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미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설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미경에 대한[於舌所識味]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의 요별[已了別] · 현재의 요별[正了別] · 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설식(舌識)이라 이름한다.[17][18]
신식(身識)은 신근[身]과 촉경[觸]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신근의 인식[身識]을 말한다. 이 때 신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촉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신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촉경에 대한[於身所識觸]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의 요별[已了別] · 현재의 요별[正了別] · 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신식(身識)이라 이름한다.[17][18]
의식(意識)은 의근[意]과 법경[法]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의근의 인식[意識]을 말한다. 이 때 의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법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의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법경에 대한[於意所識法]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의 요별[已了別] · 현재의 요별[正了別] · 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의식(意識)이라 이름한다.[17][18]
전5식과 의식
편집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고 하며, 의식(意識)을 제6식(第六識), 제6 의식(第六意識) 또는 제6의식(第六意識)이라고도 한다.[19][20][21]
자성분별·계탁분별·수념분별
편집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전5식(前五識)은 심(尋)과 사(伺)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감성적 인식(感性的認識)이며, 감성적 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인식대상의 자성(自性: 본질적 성질, 예를 들어, 빨간색의 경우 빨간색 그 자체 또는 노란색의 경우 노란색 그 자체)을 분별(지각)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자성분별(自性分別)이라고 한다.[12] 여기서, 심(尋)의 마음작용은 거친 살펴봄의 마음작용 즉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으로 이 작용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심구(尋求: 찾고 탐구함)라고 한다. 그리고 사(伺)의 마음작용은 정밀한 살펴봄의 마음작용 즉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작용으로 이 작용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사찰(伺察: 정밀하게 살펴봄)이라 한다.[22][23][24]
이에 대해, 의식(意識), 즉 제6의식(第六意識)은 혜(慧: 판단)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오성적 인식(悟性的認識)이며 또한 염(念: 기억)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기억(記憶) 또는 재인식(再認識)이다. 오성적 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헤아리고 판단하여[計度] 분별한다'라는 뜻에서 계탁분별(計度分別)이라 하며, 기억 또는 재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기억[念] 또는 재인식[念]을 바탕으로 분별한다'라는 뜻에서 수념분별(隨念分別)이라 한다.[12]
무분별·유분별
편집전5식은 감성적 인식일 뿐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식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혜(慧: 판단)의 작용은 없고 심(尋)과 사(伺)의 작용만 있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불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이다. 불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확정적인] 분별, 식별, 요별 또는 앎이 없다'는 뜻에서 무분별(無分別)이라 한다. 여기에 의식 즉 제6의식의 오성적 인식과 기억 또는 재인식이 더해짐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비로소 대상에 대해 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가지게 된다. 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확정적인] 분별, 식별, 요별 또는 앎이 있다'는 뜻에서 유분별(有分別)이라 한다.[12] 상좌부의 아비담마에서는 이 유분별을 결정하는 마음(determining consciousness, 팔리어: votthapanacitta)이라 한다.[25][26] 한편, 전5식의 본질적 성질로서의 무분별(無分別: 불확정적인 인식)은 반야바라밀다의 무분별지(無分別智)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므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설일체유부의 논사인 제바설마(提婆設摩)는 《아비달마식신족론》에서 무분별(無分別) 즉 불확정적인 앎(요별)으로서의 전5식과 유분별(有分別) 즉 확정적인 앎(요별)으로서의 제6의식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정신적 대상(즉 법경)을 인식하고 정신적 행위(즉 법경에 대한 작용)를 행하는 제6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有六識身。謂眼識耳鼻舌身意識。
眼識唯能了別青色。不能了別此是青色。意識亦能了別青色。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青色。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青色。亦能了別此是青色。如青色黃赤白等色亦爾。
耳識唯能了別聲。不能了別此是聲。意識亦能了別聲。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聲。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聲。亦能了別此是聲。
鼻識唯能了別香。不能了別此是香。意識亦能了別香。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香。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香。亦能了別此是香。
舌識唯能了別味。不能了別此是味。意識亦能了別味。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味。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味。亦能了別此是味。
身識唯能了別觸。不能了別此是觸。意識亦能了別觸。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觸。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觸。亦能了別此是觸。
意識亦能了別諸法。
謂或執為我。或執我所。或執為斷或執為常。或撥無因。或撥無作。或復損減。
或執為尊。或執為勝。或執為上。或執第一。或執清淨。或執解脫。或執出離。
若惑若疑。若猶豫。若貪若瞋。若慢若癡。若麤若苦。若障若靜。若妙若離。若如病若如癰。若如箭若惱害。若無常若苦若空若無我。
若於因謂因謂集謂生謂緣。若於滅謂滅謂靜謂妙謂離。若於道謂道謂如謂行謂出。
若有因若有起若有是處。若有是事。若如理所引了別。若不如理所引了別。若非如理所引。非不如理所引了別。
여섯 가지 식신[六識身]이 있으니, 이른바 안식과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 및 의식이다.
안식(眼識)은 오직 파란색[靑色]만을 요별(了別)할 뿐이며 ‘이것은 파란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意識] 또한 파란색을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파란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파란색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파란색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마치 파란색과 같아서 노란색ㆍ붉은색ㆍ흰색 등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이식(耳識)은 오직 소리[聲]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소리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소리를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소리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소리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소리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비식(鼻識)은 오직 냄새[香]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냄새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냄새를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냄새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냄새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냄새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설식(舌識)은 오직 맛[味]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맛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맛을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맛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맛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맛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신식(身識)은 오직 감촉[觸]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감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감촉을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감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감촉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감촉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의식(意識)은 [색 · 성 · 향 · 미 · 촉의 5경을 확정적으로 요별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법(法, 즉 법경, 즉 정신적 대상)도 [불확정적으로도 또는 확정적으로도, 틀리게 또는 바르게] 요별한다.
이를테면 혹은 ‘나(我)’라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내것[我所]이라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아주 없다[斷]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항상 있다[常]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인(因)이 없다고 부정하기도 하고, 혹은 작용[作]이 없다고 부정하기도 하며 혹은 다시 손감(損減)시키기도 한다.
혹은 높다[尊]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뛰어나다[勝]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으뜸[上]이라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제일[第一]이라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청정(淸淨)하다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해탈(解脫)하였다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벗어났다[出離]고 집착하기도 한다.
또는 미혹하고 의심하고 망설이기도 하며, 또는 탐내고 성내고 오만하고 어리석기도 하며, 또는 거칠다 하고 괴롭다[苦]하고 막힌다[障]고 하며, 또는 고요하다[靜]하고 미묘하다[妙]하고 여읜다[離]고 하며, 또는 질병과 같다 하고 종기와 같다 하고 화살과 같다 하고 괴롭히고 해치는 것[惱害]과 같다 하며, 또는 무상(無常)하다 하고 괴롭다 하고 공(空)하다 하고 나라는 것이 없다[無我]고도 한다.
또는 인(因)에 대하여는 원인이라 하고 쌓임[集]이라 하고 생김[生]이라 하고 연(緣)이라고 하며, 또는 멸(滅)에 대하여는 사라진다 하고 고요하다[靜]하고 미묘하다[妙]하고 여읜다[離]하며, 도(道)에 대하여는 길이라 하고 여(如)라고 하고 행(行)이라 하고 벗어난다[出]고 한다.
또는 인(因)이 있다고 하고 일어남[起]이 있다고 하며, 또는 이런 도리가 있다고 하고, 또는 이러한 일이 있다고 하며, 또는 이치대로 이끈 바[如理所引]를 요별하고, 또는 이치대로 이끌지 않은 것을 요별하며, 또는 이치대로 이끈 바가 아닌 것과 이치대로 이끌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을 요별한다.
심려결탁·추탁·추구탁
편집심려(審慮)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살피고 생각하다'로 심사숙고(深思熟考: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하다)를 뜻한다. 《구사론》에 따르면 심려(審慮)는 결탁(決度: 확인 판단)과 함께,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건 악견(惡見: 잘못된 견해)이건 모든 견(見: 견해)의 마음작용의 본질[性] 또는 공능(功能)을 이룬다.[27][28] 결탁(決度, 산스크리트어: saṃtīraṇa)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판단하고[決] 헤아린다[度]'인데,[29] 불교에서는 '확인 판단'의 뜻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어,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과는 차이가 있다.
《구사론》에서는 심려결탁(審慮決度)이 곧 견(見: 견해)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보다 정확히는,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을 견(見: 견해)이라 이름한다[審慮為先決度名見]"고 말하고 있다. 상좌부의 아비담마에서는 심려를 조사하는 마음(팔리어: santīraṇacitta, investigating conssciousness)라고 하고 결탁을 결정하는 마음(팔리어: votthapanacitta, determining consciousness)이라 한다.[25][26] 그리고, 6식(六識) 중 전5식은 '심려한 후 결탁하는 능력', 즉 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 능력은 6식 중에서 오직 제6의식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여, 전5식과 제6의식을 분별하고 있다.[27][28] 정확히 말하자면, 세친은 《구사론》에서 '제6의식만이 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데, 이런 표현은 마음과 마음작용의 이론, 즉 심 · 심소(心 · 心所) 이론에 어긋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세친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何故世間正見唯意識相應。以五識俱生慧不能決度故。
審慮為先決度名見。五識俱慧無如是能。以無分別是故非見。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정견(世間正見)은 오로지 의식(意識, 즉 제6의식)과 상응(相應)하는 것이라고 한 것인가? 5식(五識)과 구생(俱生, 함께 일어남)하는 혜(慧)는 능히 결탁(決度)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審慮為先決度]'을 일컬어 견(見)이라고 한다. 그런데 5식과 구생[俱, 함께 일어남]하는 혜(慧)는 이와 같은 공능[能]이 없으니, 무분별(無分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5식과 상응하는 혜는] 견(見)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사론》과 《성유식론》에서는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審慮為先決度]'을 추탁(推度: 추리 판단, 추리하여 판단함) 또는 추구탁(推求度: 추리하고 탐구하여 판단함)이라고도 말하고 있다.[30][31][32][33][34] 추탁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추측하다, 미루어 짐작하다 헤아리다'인데,[35] 불교 용어로서의 추탁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편,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모두 견(見: 견해)이 혜(慧: 판단, 지혜)의 특수한 경우, 즉 따로 명칭을 붙일만한 일부인 것으로 본다. 즉, 혜(慧)가 더 광범위한 개념인 것으로 본다.[32][33][34][36]
6식과 8식
편집부파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6식, 즉 6가지의 식(識)으로 나뉜다고 보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6식 외에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2가지 식(識)이 더 있으며 따라서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8식(八識), 즉 8가지의 식(識)으로 나뉜다고 보았다.[4][37][38]
법체계에서의 6식
편집5온
편집5온(五蘊)의 법체계에서, 6식은 색온 ·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 가운데 식온(識蘊)에 해당한다.[39][40]
원래 행온은 수온(지각) · 상온(표상)의 마음작용을 포함한 모든 마음작용과 또한 제6의식만의 대상인 법경을 포괄하는 요소이다. 다만, 수온 · 상온의 작용력이 강력하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5온 중의 2요소로 별도로 세운 것이다.[41] 따라서, 행온의 일부와 수온과 상온을 합한 것이 6식의 작용, 즉 마음작용에 해당한다.
색온은 전5식의 불확정적인 인식과 제6의식의 확정적인 인식의 대상인 5경에 해당한다. 따라서, 색온과 행온의 일부로서의 법경을 합한 것이 6식의 인식대상 또는 활동대상인 6경에 해당한다.
12처
편집12처(十二處)의 법체계에서, 6식은 안처 · 이처 · 비처 · 설처 · 신처 · 의처의 6내처 또는 6근 가운데 의처(意處)에 해당한다.[42]
그리고, 6내처 중 의처를 제외한 나머지 5처(五處), 즉 안처 · 이처 · 비처 · 설처 · 신처는 모두 의처 즉 6식이 물질적 사물(5경)을 요별할 때 사용되는 소의(所依: 발동근거, 인식기관, 작용기관)로서의 5근(五根)에 해당한다. 제6의식의 소의(所依)인 의근(意根)은 의처 즉 6식에 포함되어 있다. 의식 즉 제6의식에 대해 말할 때, 특별히 의근과 분리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아닌 한 의식 즉 제6의식은 의근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6외처, 즉 색처 · 성처 · 향처 · 미처 · 촉처 · 법처는 6식의 인식대상 또는 활동대상인 6경에 해당한다.
18계
편집18계(十八界)의 법체계에서, 6식은 안식계 · 이식계 · 비식계 · 설식계 · 신식계 · 의식계 · 의계의 7심계(七心界)에 해당한다.[43] 7심계는 단순히 7계(七界)라고도 하며 의처(意處)라고도 한다.[44]
7심계 중 의계는 의근(意根)을 말한다. 즉, 18계의 법체계는 6식 중 의식 즉 제6의식을 '의식계와 의계' 즉 '의식(제6의식)과 의근'으로 특별히 나누어서 다루고 있는 그런 법체계이다. 말하자면, 안식계 · 이식계 · 비식계 · 설식계 · 신식계는 각각 6식 중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에 해당하고, 의식계 · 의계는 6식 중 의식 즉 제6의식에 해당한다.
안계 · 이계 · 비계 · 설계 · 신계의 5계는 전5식의 소의인 5근(五根)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5계에 의계를 합한 6계는 6식의 소의인 6근(六根)에 해당한다.
색계 · 성계 · 향계 · 미계 · 촉계 · 법계의 6계는 6식의 인식대상 또는 활동대상인 6경(六境)에 해당한다.
5위 75법
편집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6식은 심법(心法)에 해당한다.[45]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는 6식 즉 마음을 심(心) 또는 심법(心法)이라고 하며, 마음의 여러 작용 즉 마음작용을 통칭하여 심소(心所) 또는 심소법(心所法)이라고 한다.[45]
의식 즉 제6의식의 대상인 법경은 심소법과 불상응행법과 무위법을 합한 것이다.
그리고 전5식의 소의인 5근과 그 인식대상 또는 작용대상인 5경과 무표색을 합하여 색(色) 또는 색법(色法: 물질)이라고 한다. 무표색은 6식 즉 마음이 5경에 대해 작용할 때 생성되는 정신적 물질로, 실제로는 의식 즉 제6의식의 대상인 법경에 속한 것이지만 5경과 관련된 것이므로 가설적으로 색법(色法: 물질)에 포함시켜서 생각한다.
5위 100법
편집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6식은 심법(心法)에 속한 8식 중 말나식와 아뢰야식을 제외한 나머지 6가지의 식에 해당한다.[45]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는 8식 즉 마음을 심(心) 또는 심법(心法)이라고 하는데, 심법 중 의식 즉 제6의식과 말나식 그리고 아뢰야식을 통칭하여 후3식(後三識)이라고 한다. 그리고, 8식 즉 마음의 여러 작용, 즉 마음작용들을 통칭하여 심소(心所) 또는 심소법(心所法)이라고 한다.[45]
제6의식 또는 후3식의 대상인 법경(法境)은 심소법과 심불상응행법과 무위법을 합한 것이다. 한편,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의 소산이라고 보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법경(法境)은 일체의 법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46]
그리고 전5식의 소의인 5근과 그 인식대상 또는 작용대상인 5경과 법처소섭색을 합하여 색(色) 또는 색법(色法: 물질)이라고 한다. 법처소섭색은 실제로는 후3식의 대상인 법경에 속한 것이지만 5경과 관련된 것이므로 가설적으로 색법(色法: 물질)에 포함시켜서 생각한다.[47]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고익진 (1989). 《한국 고대 불교 사상사》. 동국대학교 출판부.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권오민 (2000). 〈아비달마불교의 새로운 인식을 위한 시론〉. 《한국불교학》 제27집판.
-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49(25-149), T.1542(26-692).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제바설마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7, T.1539). 《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47 (25-1), T.1539 (26-531).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 대정신수대장경. T26, No. 1542, CBETA.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연수(延壽) (T.2016). 《종경록(宗鏡錄)》.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제바설마 조, 현장 한역 (T.1539). 《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 대정신수대장경. T26, No. 1539, CBETA.
|title=
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 가 나 운허, "六識(육식)". 2012년 10월 8일에 확인.
- ↑ 권오민 2003, 67쪽.
- ↑ 가 나 다 星雲, "六識". 2012년 10월 8일에 확인.
- ↑ 운허, "八識(팔식)". 2012년 10월 29일에 확인.
- ↑ 星雲, "八識". 2012년 10월 29일에 확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188-189 / 1397쪽.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T29n1558_p0021c18 - T29n1558_p0021c24.
- ↑ 가 나 권오민 2003, 45–49쪽.
- ↑ 가 나 권오민 2000, 133–135쪽.
- ↑ 가 나 고익진 1989, 143–144쪽.
- ↑ 가 나 다 라 권오민 2003, 67–69쪽.
- ↑ 星雲, "六識". 2012년 10월 29일에 확인.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49 / 448. 식(識)
"식(識)은 무엇인가? 6식신(識身)이니, 안식(眼識)에서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이다."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c23 - T26n1542_p0700c24. 식(識)
"識云何。謂六識身。即眼識乃至意識。" - ↑ 가 나 다 라 마 바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03 - T26n1542_p0701a05. 안식(眼識)
"眼識云何。謂眼及色為緣生眼識。如是眼為增上。色為所緣。於眼所識色。諸已正當了別。是名眼識。耳鼻舌身意識亦爾。" - ↑ 가 나 다 라 마 바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50 / 448. 안식(眼識)
"안식(眼識)은 무엇인가? 눈이 빛깔을 반연하여 안식이 생기는데 이와 같은 눈을 증상(增上)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의 대상[所緣]으로 삼아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하여 이미·지금·막·앞으로 요별(了別)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식’이라 한다.
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도 또한 그러하다." - ↑ 운허, "前五識(전오식)". 2012년 10월 8일에 확인.
- ↑ 星雲, "五識". 2012년 10월 8일에 확인.
- ↑ 운허, "第六識(제육식)". 2012년 10월 8일에 확인.
- ↑ 권오민 2003, 69–81쪽.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350-351 / 583쪽.
- ↑ 가 나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38.
Mind-door adverting consciousness (manodvārāvajjanacitta): This type of consciousness can arise either in a cognitive process occurring at the five sense doors or in a process occurring at the mind door. In each case, it performs a different function. When it occurs in a five-door process, it is called votthapanacitta, “determining consciousness.” Its function then is to determine, or define, the object that has been cognized by sense consciousness. In the five-door process, determining consciousness follows the investigating consciousness. After the investigating consciousness has examined the object, the determining consciousness discriminates it.
In a mind-door process — a cognitive process that occurs through the internal ideation faculty — this same type of consciousness performs another function. Its function then is to advert to the object appearing at the mind door. In such a role, this citta is known as “the mind-door adverting consciousness.” - ↑ 가 나 대림 스님 · 각묵 스님 공동 번역 및 주해(2008)《아비담마 길라잡이》 상권. 초기불전연구원 pp.133~134. {}와 따옴표는 편집자가 추가.
3. 의문전향(意門轉向)의 마음(mano-dvāra-āvajjana-citta): 이 마음{제6식의 분위}은 오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과 意門{의근이라는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4장 §§6-13 참조)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이 둘에서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 오문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면 결정하는 마음(votthapana-citta)이라 부른다.(3 장 §8 해설 11을 참조할 것) 이것의 역할은 '감각의 알음알이[前五識]'가 알아차린 대상을 결정하고 정의하는 것이다. 오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에서 이 '결정하는 마음{결탁 = 제6의식의 분위}'은 '조사하는 마음{심려 = 제6식의 분위}' 바로 다음에 일어난다. '조사하는 마음{심려 = 제6식의 분위}'이 대상을 검사하고 나면 '결정하는 마음{결탁 = 제6의식의 분위}'이 그것을 분간하는 것이다.
의문{의근이라는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 즉 내면의 마노{의근}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에서 이 마음은 다른 역할을 한다. 여기서의 역할은 '마노{의근}의 문[意門]'에 나타난 대상으로 전향하는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문 전향의 마음{제6식의 분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노{의근}의 대문으로 향하는 마음'은 '마노의 알음알이[意識]{제6의식의 분위}'이다.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권. p. T29n1558_p0010c16 - T29n1558_p0010c20. 견(見)
"何故世間正見唯意識相應。以五識俱生慧不能決度故。審慮為先決度名見。五識俱慧無如是能。以無分別是故非見。准此所餘染無染慧及諸餘法非見應知。"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권. p. 86 / 1397. 견(見)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의 정견은 오로지 의식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 것인가? 5식과 구생(俱生)하는 혜는 능히 결탁(決度)하지 않기 때문이다.78) 이를테면 먼저 심려(審慮, 심사숙고의 뜻)하고 결탁하는 것을 일컬어 '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5식과 구생하는 혜는 이와 같은 공능이 없으니, 무분별[→ 불확정적인 인식을 말함, 반야바라밀의 무분별지가 아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5식상응의 혜는] 비견(非見)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준하여 그 밖의 염오하거나 염오하지 않은 혜와, 아울러 그 밖의 온갖 법도 비견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79)
78) 자성분별만을 본질로 하는 전5식과 상응하는 선혜(善慧)를 어떻게 세간의 정견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뜻의 물음. 여기서 '결탁(決度, saṃtīraṇa)'은 확인 판단의 뜻이다.
79) 유신견 등의 5견 이외 탐 등과 상응하는 혜나 의식상응의 혜를 제외한 그 밖의 혜, 안근을 제외한 이근(耳根) 등의 모든 근과 일체의 무부무기의 혜, 무학의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그리고 혜 이외 그 밖의 법계소섭법(法界所攝法)은 심려 결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이 아니라는 뜻.(『현종론』 권제4, 한글대장경200, p. 83 참조)" - ↑ "決度", 《존 한자사전》. 2012년 11월 2일에 확인.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b24 - T29n1558_p0134c02. 추탁(推度)
"論曰。慧有二種。有漏無漏。唯無漏慧立以聖名。此聖慧中八忍非智性。自所斷疑未已斷故。可見性攝。推度性故。盡與無生二智。非見性。已息求心不推度故。所餘皆通智見二性。已斷自疑推度性故。諸有漏慧皆智性攝。於中唯六亦是見性。謂五染污見世正見為六。如是所說聖有漏慧皆擇法故並慧性攝。"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 1172 / 1397. 추탁(推度)
"논하여 말하겠다. 혜(慧)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유루혜와 무루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오로지 무루혜에만 '성(聖)'이라는 명칭을 설정하는데, 이러한 성혜 중에서 8인(忍)은 지(智)의 성질이 아니니, 끊어야 할 스스로의 의심[疑]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3) 그러나 '견'의 성질에는 포섭될 수 있으니, 추리 판단[推度]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진지와 무생지의 두 가지는 '견'의 성질이 아니니, 이미 추구하려고 하는 마음이 종식되어 추리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의 성혜는 모두 '지'와 '견'의 두 가지 성질과 통하니, 이미 스스로의 의심을 끊었으며, 추리 판단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4) 온갖 유루혜는 모두 '지'의 성질에 포섭되지만, 그 중에서 오로지 여섯 가지만은 역시 또한 '견'의 성질이기도 하니, 이를테면 다섯 가지의 염오견과 세속정견의 여섯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5) 그리고 이상에서 설한 성혜와 유루혜는 모두 다 택법(擇法)이기 때문에 아울러 '혜'의 성질에 포섭된다.
3) 8인은 그것에 의해 끊어지는 의(疑)와 구생하여 그것을 끊으려고 하는 단계로서, 아직 '의'의 득에 장애되기 때문에 능히 결단(決斷)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인'은 일찍이 관찰한 적이 없었던 4제의 이치를 지금 비로소 관찰하는 것으로, 아직 되풀이하여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지(智)는 아니지만, 이 역시 추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見)'의 성질이다.
4) 앞서 언급한 8인과 진지·무생지를 제외한 그 밖의 유학의 8지(智)와 무학의 정견은 모두 추리 판단의 '견'이자 결단의 '지'이다.
5) 다섯 가지 염오견이란 유신견·변집견·사견·견취·계금취로서, 이것이 '견'을 본질로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9 주22) 참조."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1c11 - T31n1585_p0032a01. 견(見)과 혜(慧)의 관계
"云何惡見。於諸諦理顛倒推求度染慧為性。能障善見招苦為業。謂惡見者多受苦故。此見行相差別有五。一薩迦耶見。... 二邊執見。... 三邪見。... 四見取。... 五戒禁取。...."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p. 308-310 / 583. 견(見)과 혜(慧)의 관계
"무엇이 ‘악견(惡見)심소’138)인가? 모든 진리와 논리에 대해서 뒤바뀌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잡염의 혜를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고통을 초래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악견은 고통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 악견의 행상(行相)은 구별하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 ... 둘째는 변견(邊見) ... 셋째는 사견(邪見) ... 넷째는 견취견(見取見) ... 다섯째는 계금취견(戒禁取見)[... 이다]." - ↑ 가 나 황욱 1999, 61. 견(見)과 혜(慧)의 관계쪽
"‘見’은 모든 진리와 논리에 대하여 그릇되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雜染의 慧로써 그 體를 삼으며, 능히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고통을 초래하는 것으로써 業을 삼는다." - ↑ "推度", 《네이버 중국어사전》. 2012년 11월 2일에 확인.
- ↑ 권오민 2003, 192-197. 견(見)과 혜(慧)의 관계쪽"6수면설은 다시 그 중의 '견'을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계금취戒禁取·견취見取의 다섯 가지로 분별함으로써 10수면으로 발전한다. '견見(drsti)'이란 의식의 모든 순간에 나타나는 보편적 작용(즉 대지법) 중 '혜'로 분류되는 판단작용을 말하지만, 여기서의 '견'은 물론 그릇된 견해 즉 염오혜染汚慧를 말한다. 즉 그릇된 견해 역시 확인 판단된 것이기 때문이다."
- ↑ 星雲, "心意識". 2012년 10월 8일에 확인.
- ↑ 연수(延壽) & T.2016, "제55권. T48n2016_p0736c22 - T48n2016_p0736c2
"識論云。心意識。一法異名。對數名心。能生名意。分別名識。又前起為心。次起為意。後了為識。 - ↑ 星雲, "心". 2012년 9월 7일에 확인.
- ↑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5온,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41 / 1397쪽.
- ↑ 星雲, "十二處". 2012년 9월 20일에 확인.
- ↑ 운허, "七心界(칠심계)". 2012년 9월 4일에 확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30 / 1397쪽.
- ↑ 가 나 다 라 운허, "色(색)". 2012년 9월 13일에 확인.
- ↑ 운허, "法境(법경)". 2012년 10월 29일에 확인.
- ↑ 운허, "法處所攝色(법처소섭색)". 2012년 10월 29일에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