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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식(心意識)은 (心) · (意) · (識)의 세 낱말을 합친 복합어이다.[1][2][3][4]

  • (心)은 산스크리트어 치타(citta)의 번역어로 질다(質多)라고도 음역하며, 집기(集起)를 뜻한다.
  • (意)는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의 번역어로 말나(末那)라고도 음역하며, 사량(思量)을 뜻한다.
  • (識)은 산스크리트어 비즈냐나(vijñāna)의 번역어로 비야남(毘若南)이라고도 음역하며, 요별(了別)을 뜻한다.

집기(集起)는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마음작용(심소법)을 비롯한 (身) · (口) · (意)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키는 측면 또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사량(思量)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과거, 즉 이전까지 쌓은 원인을 바탕으로 현재의 인식 대상 또는 마음작용 대상에 대해 이모저모로 생각하고 헤아리는 측면 또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다. 요별(了別)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사량(思量)을 바탕으로 현재의 인식 대상 또는 마음작용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파란색이 소리가 아니라 색깔인줄 알며 나아가 노란색이 아니라 파란색인줄 아는 것을 말한다.[1][2][3][4][5]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心) · (意) · (識)의 측면 또는 능력에 대한 사상인 심의식 사상(心意識思想)에서의 견해 차이는 부파불교대승불교를 구별짓는 주요 사상적 측면들 중의 하나이다.[6]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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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은 산스크리트어 치타(citta)의 번역어로 '신 · 구 · 의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킨다'는 뜻의 집기(集起)를 뜻하고, (意)는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의 번역어로 '과거에 쌓은 원인, 즉 업에 바탕하여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思量)을 뜻하며, (識)은 산스크리트어 비즈냐나(vijñāna)의 번역어로 '대상을 안다'는 뜻의 요별(了別)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야! 이 OST 정말 아름다운데! 어떤 가수가 불렀을까? 음원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보고 음원구입처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야겠다"라고 할 때, 그 OST가 아름답다고 아는 것은 요별(了別),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요별작용 또는 요별능력이고, 가수가 누군지 그리고 음원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사량(思量),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사량작용 또는 사량능력이고, 검색과 다운로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즉, 의지를 가지는 것)과 실제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인터넷 검색을 행하고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 것은 집기(集起),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집기작용 또는 집기능력이다.[7]

크게 보면, 심의식(心意識), 즉 (心) · (意) · (識)은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관련된 것이므로, 심의식(心意識)이라고 통칭하여 칭할 때나 (心) · (意) · (識) 개별로 칭할 때나 모두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3][4]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心) · (意) · (識)의 개별에 대하여 이들이 구체적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어떤 면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부파불교대승불교 간에 견해 차이가 있으며, 또한 이렇게 차이가 나는 대승불교의 견해에서도 다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心)이 집기(集起)를 뜻하고, (意)가 사량(思量)을 뜻하고, (識)이 요별(了別)을 뜻한다는 것에는 부파불교대승불교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에 집기, 사량, 요별의 작용 또는 측면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에는 모두가 견해를 같이 하지만,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어떤 작용 또는 측면을 집기라고 하고 사량이라고 하고 요별이라고 하는 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2]

심: 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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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기(集起)는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心)의 산스크리트어 원어인 치타(citt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 치타(citta)의 어원인 치트(cit)는 '생각하다, 이해하다'의 뜻이지만, 다시 이것은 '쌓다'라는 뜻의 치(ci)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본래의 어원에 따라 '집기(集起)'라고 번역한 것이다.[4]

집기(集起)라는 한자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쌓고 일으킨다'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마음작용(심소법)을 비롯한 (身) · (口) · (意) 3업(三業)을 쌓고 일으킨다는 것을 말한다. 달리 말하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몸과 말과 마음을 사용하여 원인을 쌓으며 또한 이렇게 쌓은 원인을 바탕으로 행위를 일으키는 능력 혹은 측면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능력과 그 작용을 통칭하여 집기(集起)라고 한다.[1][2][4][5]

의: 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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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思量)은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意)의 산스크리트어 원어인 마나스(manas)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 마나스(manas)의 어근인 만(man)은 '생각하다'의 뜻으로 이에 따라 '사량(思量)'이라 번역한 것이다.[4]

사량(思量)이라는 한자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생각하고 헤아린다'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전찰나의근(意根), 즉 바로 직전까지 집기(集起)했던 행위의 총체, 즉 바로 직전까지의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 즉 바로 직전까지 축적된 모든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인식 대상 또는 마음작용 대상에 대해 이모저모로 생각하고 헤아리는 능력 또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능력과 그 작용을 통칭하여 사량(思量)이라고 한다.[1][2][4][5]

식: 요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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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별(了別)은 심의식(心意識) 가운데 (識)의 산스크리트어 원어인 비즈냐나(vijñāna)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 비즈냐나(vijñāna)는 '다르게 알다'라는 뜻의 비즈냐(vijñā)에서 유래한 낱말로 이에 따라 '요별(了別)'이라 번역한 것이다.[4]

요별(了別)이라는 한자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분명하게 분별한다'로, 대상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인식(認識: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8])하는 것을 말한다. 즉 요별(了別)은 대상을 아는 것, 즉 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사량(思量: 생각하고 헤아림)을 바탕으로 현재의 인식 대상 또는 마음작용 대상에 대해 아는 능력 또는 측면 또는 분별하는 능력 또는 측면, 즉 지식의 능력 또는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1][2][4][5]

예를 들어,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파란색이 소리가 아니라 색깔인 줄 아는 능력과 파란색이 노란색과는 다른 색깔인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예로는, 색깔이 아니라 소리인 줄 아는 능력과 와는 다른 소리(음정, 음높이)인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능력과 그 작용을 통칭하여 요별(了別: 아는 것, 지식)이라고 한다.

불교 전통에서의 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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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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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 · (意) · (識)이라는 낱말은 초기불교 경전인 《잡아함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잡아함경》에 수록된 고타마 붓다의 설법에는, 마음(心) · (意) · (識)이라는 3가지 명칭을 사용하여 가리키기도 하고 또한 6식(六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心) · (意) · 의 차별성을 명확히 설명하거나 또는 이들의 차별성이 명확히 드러나 있는 설법이 없기 때문에, 《잡아함경》 자체에 의해서는 그 차이를 분명히 구별 할 수가 없다. 다만, (心) · (意) · (識)의 3가지가 서로 이름은 다르지만 그 본질[體, 性]은 하나라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다.[9]

《잡아합경》에서 (心) · (意) · (識)이라는 낱말이 사용되고 있는 소경(小經)들로는 다음과 같은 경들이 있다.

  • 《잡아함경》 제2권 제35경 〈3정사경(三正士經)〉[10][11]
  • 《잡아함경》 제23권 제604경 〈아육왕경(阿育王經)〉[12][13]
  • 《잡아함경》 제33권 제930경 〈자공경(自恐經)〉[14][15]
  • 《잡아함경》 제39권 제1086경 〈마박경(魔縛經)〉[16][17]

위의 경들 중 〈자공경(自恐經)〉에서는 고타마 붓다는 다음과 같이 심(心) · 의(意) · 식(識)을 언급하고 있다.

佛告摩訶男。汝亦如是。若命終時。不生惡趣。終亦無惡。所以者何。汝已長夜修習念佛.念法.念僧。若命終時。此身若火燒。若棄塚間。風飄日曝。久成塵末。而心意識久遠長夜正信所熏。戒.施.聞.慧所熏。神識上昇。向安樂處。未來生天。 時。摩訶男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고타마 붓다는 마하남에게 말하였다. 너도 그와 같아서, 목숨을 마친 뒤에도 악취(惡趣: 나쁜 곳, 즉 5악취)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오랫동안 염불(念佛: 함, 6념, 8념, 10념의 하나) · 염법(念法: 함, 6념, 8념, 10념의 하나) · 염승(念僧: 승가함, 6념, 8념, 10념의 하나)의 수행을 닦고 익혀왔기[修習] 때문이다. 따라서, 목숨을 마치고 나서 이 몸이 불에 태워지거나 묘지에 버려져서 오랫동안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쪼여 마침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心) · (意) · (識)이 오랜 세월 동안 바른 믿음[正信]에 훈습(薰習)되었고, (戒) · 보시[施] · 들음[聞: 문혜, 유루혜3혜 중 하나] · 지혜[慧, 무루혜]에 훈습되었기 때문에 신식(神識)은 위로 올라가 안락한 곳으로 향해 갈 것이요, 미래에는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 《잡아함경》, 제33권 제930경 〈자공경(自恐經)〉. 한문본 & 한글본

부파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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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논사인 세우(世友)는 《아비달마품류족론》에서 마음[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心云何。謂心意識。

此復云何。謂六識身。即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마음[心]이란 무엇인가? 심의식(心意識)을 말한다.
이것[심의식]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6식[六識身, 6가지 식]을 말한다. [6식, 즉 6가지 식이란] 곧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이다.

— 《아비달마품류족론》, 제1권, 〈1. 변오사품(辯五事品)〉. 한문본 & 한글본

부파불교설일체유부의 교학을 비판적으로 집대성한 세친(世親: 316~396)의 《구사론》에 따르면, (心) · (意) · (識)은 모두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본질은 동일하다.[4] 그리고 부파불교에 따르면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1가지로 단일한 것이만 그 작동 근거에 따라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6식(六識)으로 나뉜다.[18]

즉, 부파불교에서는 각종 마음작용을 쌓고 일으키는 집기(集起)의 작용으로서의 (心)과, 생각하고 헤아리는 사량(思量)의 작용으로서의 (意)와, 대상을 인식하는 요별(了別) 즉 앎 또는 분별의 작용으로서의 (識)의 각각이 모두 마음(즉 심왕, 즉 심법) 즉 6식의 한 측면 또는 상태일 뿐이라고 보았다.[2][4]

그리고 부파불교에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心) · (意) · (識)에 대해 해석하기도 한다.

(心)으로 번역되는 치타(citta)에는 치트라(citra, 種種)의 뜻이 있는데, 이것은 마음(6식, 즉 심왕, 즉 심법)에는 닦고 닦지 않음에 의해  · 불선 · 무기 등 여러 단계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종종(種種)의 뜻에서는 마음(心)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종(種種)의 뜻의 마음, 즉 (心)은 현행하는 마음 즉 현행하는 인식의 근거가 되는 전찰나의근(意根)이 되어 현행하는 마음의 소의지(所依止: 의지되는 자)가 되는데, 이러한 의근(意根)의 뜻에서는 마음(意)라고 부른다. 그리고 현행하는 마음 즉 현행하는 인식은 의근(意根)의 뜻의 마음, 즉 (意)를 의지하여 현재에 나타나므로 능의지(能依止: 의지하는 자)가 되는데, 이러한 현행(現行)의 뜻에서는 마음(識)이라고 부른다.[2][4]

대승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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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에서는 (心) · (意) · (識)이 모두 마음(즉 심왕, 즉 심법) 즉 6식의 한 측면 또는 상태일 뿐이라는 부파불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승불교에서는 (識)은 부파불교에서 파악한 제6식인 의식(意識)에 해당하지만 (意)와 (心)은 마음의 더 깊은 층으로 6식, 즉 전5식과 제6식의 다른 측면 또는 상태가 아니라 각각 제7식과 제8식으로 별도로 설정하여야 한다고 본다.[2]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이 1가지로 단일하며 (心: 집기) · (意: 사량) · (識: 요별)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는 부파불교와 의견을 같이하지만,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6식으로 나누는 부파불교와는 달리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8식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승불교에서는 제6식은 부파불교에서 사용하는 동일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의식(意識)이라 명명하지만, 제7식인 (意)와 제8식인 (心)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름을 부여하여 각각 말나식아뢰야식이라 명명한다.[2]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부파불교에서는 마음 ·  · 또는 6식이라고 할 때, 본래부터 6가지의 서로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마음은 본래 1가지로 단일한 것이지만 시각청각이 서로 다르듯이 그 인식의 종류에는 차별이 있는데 그 차별에 따라 6식으로 나누는 것이 편리하기에 그렇게 분류하는 것일 뿐이라고 본다. 즉  ·  · 또는 6식(體)가 하나라고 본다.[18][19] 이러한 이유로 설일체유부5위 75법법체계에서 심법(心法)은 6식을 하나로 묶은 1가지의 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에는 마음 ·  · 또는 8식(體)가 하나라는 심체일설(心體一說) 또는 식체일설(識體一說)의 견해와  ·  · 또는 8식 각각에는 별도의 (體)가 있다는 심체별설(心體別說) 또는 식체별설(識體別說)의 견해가 있다. 전자의 심체일설 또는 식체일설안혜 계통의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의 견해이고, 후자의 심체별설 또는 식체별설호법 계통의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와 중국의 법상종의 견해이다.[20][21] 이러한 이유로 유식유가행파(정확히 말하면, 유상유식파)와 법상종5위 100법법체계에서 심법(心法)은 8식에 해당하는 8가지의 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식유가행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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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에서는 제8식인 아뢰야식의 종자(種子)를 적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인연이 갖추어지면 적집된 의 종자가 현행의 상태로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러한 능력은 종종(種種)과 집기(集起)의 뜻으로서의 (心)과 부합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제7식인 말나식은 종자(種子)를 적집하는 능력을 가진 아뢰야식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헤아림을 가져 아뢰야식을 '나[我]'로 집착하는 아집(我執)을 가진다고 보았으며, 말나식의 이러한 성격은 사량(思量: 생각하고 헤아림)의 뜻으로서의 (意)와 부합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6식, 즉 전5식의식(意識)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므로 요별의 뜻으로서의 (識)과 부합한다고 보았다.[2]

이와 같이 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법상종에서는 아뢰야식(心)에, 말나식(意)에, 전5식과 제6 의식(意識)을 합한 6식(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2]

달리 말하면, 유식유가행파에서는 (識)이란 시각기관 · 청각기관 · 후각기관 · 미각기관 · 촉각기관 · 사고력을 매개로 하는 6가지 인식기능, 즉 6식(六識)을 말한다. 그리고 (意)는 이 6가지의 인식기능에 수반되는 자아의식을 의미하는데, 이 자아의식을 말나식(末那識)이라 한다. 마지막의 (心)은 보편적인 인식기능의 근저에 있는 잠재의식을 의미하는데, 이 잠재의식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한다.[22]

그리고, 유식유가행파에서는 (心)도 (意)도 모두 보편적인 인식기능, 즉 넓은 의미의 (識)의 일부로 본다. 넓은 의미의 (識) 개념에서, 6가지 인식기능 즉 6식(六識)과 자아의식말나식(末那識)은 잠재의식아뢰야식(阿賴耶識)에 대하여 '현재화된 식, 현행하는 식 또는 현세적인 식'이라는 의미에서 현행식(現行識, pravṛtti-vijñāna)이라 불리거나[23] '아뢰야식이 전변하여 현재 나타나 있는 식'이라는 의미에서 전식(轉識)이라 불린다.[24] "유식(唯識)"이라는 낱말에서의 (識)은 잠재의식이 현재화된다는 것과, 현재화된 6식(六識)의 현행하는 인식과 작용뿐 아니라 그 근저에 있는 자아의식이나 잠재의식을 모두 포괄하여 (識)이라고 한 것인데, 이러한 점은 유식학의 특징적인 사항이다.[22]

수의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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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혜원(慧遠: 523~592))은 《대승기신론의소(大乘起信論義疏)》에서 유식유가행파와는 다소 다른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데, 그는 제8식인 아뢰야식(心)에 해당하며, 업식(業識) · 전식(轉識) · 현식(現識) · 지식(智識) · 상속식(相續識)의 5의(五意)가 제7식인 말나식을 이루고 이 말나식(意)에 해당하며, 전5식과 제6 의식(意識)을 합한 6식(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25][26][27]

신라의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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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원효(元曉: 617~686)는 《기신론소(起信論疏)》에서 5의(五意) 중 업식(業識) · 전식(轉識) · 현식(現識)이 제8식인 아뢰야식을 이루고 이 아뢰야식(心)에 해당하며, 5의(五意) 중 지식(智識)이 제7식인 말나식을 이루고 이 말나식(意)에 해당하며, 5의(五意) 중 마지막 상속식(相續識)이 제6식인 의식(意識)을 이루고 이 제6 의식전5식과 제6 의식(意識)을 통칭하는 (識)의 일부를 이룬다고 보았다.[25]

당의 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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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법장(法藏: 643~712)은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에서 5의(五意) 중 업식(業識) · 전식(轉識) · 현식(現識)이 제8식인 아뢰야식을 이루고 이 아뢰야식(心)에 해당하며, 5의(五意) 중 나머지 지식(智識) · 상속식(相續識)이 제6식인 의식(意識)을 이루고 이 제6 의식전5식과 제6 의식(意識)을 통칭하는 (識)의 일부를 이룬다고 보았다. 그리고 법장은 제7식인 말나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25]

세친과 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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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승불교권의 이러한 견해들과는 상이한 견해로서, 대승불교의 주요 논사들 중 한 명인 세친(世親: 316~396)의 《불성론(佛性論)》의 진제(眞諦)의 한역본의 제3권에서는 전5식과 제6 의식(意識)을 합한 6식(六識)을 (心)에 해당시키고, 아타나식(阿陀那識) 즉 집지식(執持識)을 (意)에 해당시키고, 아뢰야식(識)에 해당시키고 있다.[2][25] 지론종, 진제(眞諦) 계통의 섭론종, 그리고 천태종 등에서는 아타나식말나식의 별명인 것으로 보았으며, 현장(玄奘) 계통의 법상종에서는 아타나식아뢰야식의 별명인 것으로 보았다.[28][29][30]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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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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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K.650, T.99). 《잡아함경(雜阿含經)》.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50(18-707), T.99(2-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수산 (2007). 《아비달마불교의 심소법 연구》. 한국선학회. 
  • 오형근. 〈유식학과 인간성 - (3) 심의식(心意識)사상의 개요〉. 《월간불광 (125호)》. 불광출판사. 2014년 3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0월 3일에 확인함.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황욱 (1999). 《무착[Asaṅga]의 유식학설 연구》. 동국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 
  • (중국어)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T.99). 《잡아함경(雜阿含經)》. 대정신수대장경. T2, No. 99,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원휘(圓暉) (T.1823). 《구사론송소론본(俱舍論頌疏論本)》. 대정신수대장경. T41, No. 1823, CBETA.  |title=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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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운허, "心意識(심의식)". 2012년 10월 3일에 확인
    "心意識(심의식): 심(心)은 범어 질다(質多)의 번역, 집기(集起)의 뜻. 의(意)는 범어 말나(末那)의 번역, 사량(思量)의 뜻. 식(識)은 범어 비야남(毘若南)의 번역, 요별(了別)의 뜻. 구사종에서는 심왕(心王)에 6식(識)을 세우고 심왕의 작용에 대하여 그 이름을 달리 함. (1) 심(心). 온갖 심리 작용을 집합하여 인기(引起)하므로 집기의 뜻이 있음. (2) 의(意). 여러 가지 대경을 헤아리고 생각하므로 사량의 뜻이 있음. (3) 식(識). 대경을 요별(了別)하는 뜻이 있으므로 식이라 함. 이 세 가지는 모두 6식의 다른 이름이라 함. 유식종에서는 8식을 통틀어 심ㆍ의ㆍ식의 세 뜻이 있다 함. 제8식은 온갖 종자를 모았고, 또 종자로 하여금 활동케 하므로 심(心)이라 하고, 제7식은 대경을 항상 살펴 사량하는 뜻이 수승하므로 사량이라 하고, 전(前) 6식은 자기 앞의 대경을 잘 식별(識別)하는 작용이 수승하므로 식이라 이름한다 함. ⇒식(識)ㆍ심식(心識)"
  2. 星雲, "心意識". 2012년 10월 3일에 확인
    "心意識:  指心、意、識三者。心為梵語 citta 之意譯,音譯作質多,即集起之義。意為梵語 manas 之意譯,音譯作末那,即思量之義。識為梵語 vijñāna 之意譯,音譯作毘若南,即了別之義。大略言之,心是主體意與識是心作用之兩面。有關此詞之語意,大小乘論典有種種不同之說法。
     據俱舍宗,心、意、識三者為六識之異名,其體實為同一。即心(心王)能集起各種精神作用或業,故稱為心;心能思惟量度,故稱為意;心能了知識別,故稱為識。或謂心有種種差別(從梵語 citta 所導出之種種義)之義、意有起識所依止(所依止)之義、識有依託於意而起(能依止)之義。
     據大乘之解釋,心、意、識三者各別。唯識宗主張第八阿賴耶識能積集種子,故稱為心;第七末那識能思量起我執,故稱為意;前六識能認識對象,故稱為識。據大乘起信論載,阿賴耶識為心,五意為意,六識為識;其所異於唯識等說者,以意有五種別名,其餘說法均同。此外,佛性論卷三分別以六識心配於心,阿陀那識配於意,阿賴耶識配於識,亦異前述諸說。〔入楞伽經卷七、解深密經卷二、大毘婆沙論卷七十二、俱舍論卷四、瑜伽師地論卷六十二、成唯識論卷五、成實論卷五〕 p1407"
  3.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c15 - T29n1558_p0021c24. 심(心)·의(意)·식(識)
    "別之相。如是已說諸心心所品類不同俱生異相。然心心所於契經中隨義建立種種名想。今當辯此名義差別。頌曰。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
    論曰。集起故名心。思量故名意。了別故名識。復有釋言。淨不淨界種種差別故名為心。即此為他作所依止故名為意。作能依止故名為識。故心意識三名所詮。義雖有異而體是一。"
  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88-189 / 1397. 심(心)·의(意)·식(識)
    "이와 같이 온갖 심과 심소의 품류의 동일하지 않음과 동시생기[俱生]의 관계와 그 이상(異相)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그런데 심과 심소에 대해 계경 중에서는 그 뜻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명칭과 개념[名想]을 설정하고 있다. 이제 여기서 마땅히 이러한 명칭의 뜻의 차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心)·의(意)·식(識)은 그 본질이 동일하며
      심과 심소는 유소의(有所依)로도
      유소연(有所緣)으로도, 유행상(有行相)으로도,
      상응(相應)으로도 일컬어지니, 뜻에 다섯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
    논하여 말하겠다. 집기(集起)하기 때문에 '심(心)'이라 이름한 것이고, 사량(思量)하기 때문에 '의(意)'라고 이름한 것이며, 요별(了別)하기 때문에 '식(識)'이라고 이름한 것이다.89) 다시 어떤 이는 해석하여 말하기를, "정(淨)과 부정(不淨)의 계(界)에 여러 가지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심'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며,90) 이러한 '심'은 다른 것의 소의지(所依止)가 되기 때문에 '의'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며, 능의지(能依止)가 되기 때문에 '식'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91) 그렇기 때문에 심·의·식의 세 가지 명칭은 비록 그것이 드러내는 뜻은 다를지라도 그 본질은 동일하다"고 하였다.
    89) 심(心, citta)의 어원 cit는 생각하다, 이해하다의 뜻이지만, 그것은 다시 ci(쌓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집기'라고 번역한 것이다. 곧 마음은 신(身)·구(口)·의(意) 3업을 집기한다. 의(意, manas)는 어근 man(생각하다)에 근거하여 '사량'으로 번역한 것이고, 식(識, vijñāna)는 vi-√jñā (다르게 알다)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요별'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90) 여기서 정(淨)·부정(不淨)이란 선·불선을 말한다. 즉 마음에는 닦고 닦지 않음에 의해 선·불선·무기 등 여러 단계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citta로 이름한 것으로, 이는 citra(種種)에 근거한 경부(經部) 혹은 유가사(瑜伽師)의 해석이다.
    91) 소의지가 된다고 함은 현행식의 근거가 되는 전찰나의 의근(意根)을 말하며, 능의지가 된다고 함은의 근에 근거하는 현행의 의식(意識)을 말한다. 즉 본론 권제1에서 의근을 분별하면서 과거로 낙사한 무간멸(無間滅)의 의(意)가 다음 찰나 의식의 소의지가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이를 근거로 해석한 것이다."
  5. 원휘(圓暉) & T.1823, 제4권. p. T41n1823_p0843c01 - T41n1823_p0843c12. 심(心)·의(意)·식(識)
    "從此第四。明眾名別者。論云。然心心所。於契經中。隨義建立種種名相。今當辨此名義差別。頌曰。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釋曰。心意識體一者。集起名心 謂能集起三業事也。思量名意。了別名識 復有釋言。淨不淨界。種種差別。故名為心(淨者善也。不淨者惡也。界者體也)。即此為他。作所依止。故名為意
      即此者即此心也。將所依義。釋意也。作能依止。故名為識 識能依意也。據上兩解。是心意識三。名義雖異。其體一也。"
  6. 오형근, "유식학과 인간성 - (3) 심의식(心意識)사상의 개요". 2012년 10월 3일에 확인
    "다시 말하면 소승불교에서 대체로 심의식의 체성을 동일하다고 본 것에 대하여 대승불교의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에서는 다르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에는 심체(心體)의 동일설과 심체의 구별설을 말하는 심체일설(心體一說)과 심체별설(心體別說)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이상과 같이 심의식의 사상은 원시불교에서 시작하고 소승불교에서 더욱 발전하며 대승불교에 들어와서는 유식학적인 팔식사상의 발달에 기초가 된다. 즉 심(心)은 아라야식이라고 하고, 의(意)는 말나식(末那識)이라 하며, 식(識)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등 육식(六識)이라 하는 등 심의식을 각각 팔식(八識)에 배정하여 대승적인 유식사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7. 권오민 2003, 67–69쪽.
  8. "인식(認識)",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0월 18일에 확인.
  9. 수산 2007, 2. 초기불교의 심의식쪽
    "주체인 심왕 즉 심에는 대개 세 가지 다른 이름이 있다. 아함경전에서 심을 心 · 意 · 識이라는 세 가지 이름을 사용하고3) 六識을 설하고 있지만, 심 · 의 · 식에 대한 차별성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심 · 의 · 식의 세 가지가 이름은 다르지만 그 체는 하나라는 것이 아함의 교설이다.4)
    3) 『雜阿含經』 2(『大正藏』 1권, 8상).
    “此心此意此識 常思惟…”
    4) 金東華, 『唯識哲學』(서울: 寶蓮閣, 1980), 57면."
  10.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2권 제35경 〈삼정사경(三正士經)〉. p. T02n0099_p0008a07 - T02n0099_p0008a18. 심의식(心意識)
    "爾時。世尊知彼心中所念。而為教誡。比丘。此心.此意.此識。當思惟此。莫思惟此。斷此欲.斷此色。身作證具足住。比丘。寧有色。若常.不變易.正住不。比丘白佛。不也。世尊。 佛告比丘。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正住不。 比丘白佛。不也。世尊。 佛告比丘。善哉。善哉。色是無常.變易之法。厭.離欲.滅.寂沒。如是色從本以來。一切無常.苦.變易法。如是知已。緣彼色生諸漏害.熾然.憂惱皆悉斷滅。斷滅已。無所著。無所著已。安樂住。安樂住已。得般涅槃。受.想.行.識亦復如是。"
  11.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2권 제35경 〈삼정사경(三正士經)〉. p. 40 / 2145. 심의식(心意識)
    "그 때 세존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곧 훈계하여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 마음[心]과 이 뜻[意]과 이 의식[識]으로 마땅히 이렇게 사유하고, 이렇게 사유하지는 말며, 이 탐욕을 끊고, 이 색을 끊으며, 몸으로 완전히 진리를 증득하여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들아, 과연 항상하고 변하거나 바뀌지 않으며 바르게 머무르는 색이 있는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색은 무상하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바르게 머무를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색은 무상하며 변하고 바뀌는 법(法)으로서 싫어하고, 탐욕을 떠나며, 없애고, 고요하게 하며, 사라지게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색은 본래부터 그 일체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이렇게 알고 나면 그 색으로 말미암아 생겼던 모든 번뇌의 해로움과 불꽃, 근심과 번민은 모두 끊어져 없어진다. 그것이 끊어져 없어진 뒤에는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게 된 뒤에는 안락하게 머무르게 되며, 안락하게 머무른 뒤에는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된다.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12.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23권 제604경 〈아육왕경(阿育王經)〉. p. T02n0099_p0164b12 - T02n0099_p0164b18. 심의식(心意識)
    "比丘以偈答曰。   我心得解脫  無明大黑闇
      斷除諸有蓋  以殺煩惱賊
      慧日今已出  鑒察心意識
      明了見生死  今者愍人時
      隨順修聖法  我今此身骸
      任爾之所為  無復有吝惜"
  13.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23권 제604경 〈아육왕경(阿育王經)〉. p. 909 / 2145. 심의식(心意識)
    "비구는 게송으로 대답한다.
      내 마음 이미
      무명(無明)의 대암흑을 벗어나 해탈하였네
      온갖 유(有)의 덮개[蓋]를 끊어 사라지게 하였고
      그에 따라 [온갖] 번뇌의 도적이 [모두] 죽어버렸네.

      지혜[慧]의 해가 이제 완전히 솟아올라
      심(心)·의(意)·식(識)의 거울에 밝게 비치니[鑒察]
      생사(生死)를 분명히 알고[明了] 분명히 보게 되었다[明見]
      [이렇게 할 일을 마쳤으니] 지금은 다른 사람을 가엾이 여길[愍] 때이다.

      [지혜와 자비의] 성스러운 무루법[聖法]을 그대로 따라 닦으며
      나는 이제 내 이 몸뚱이를
      네가 원하는 대로 너에게 맡겨두고
      다시는 아끼거나 아까워하지 않으리."
  14.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33권 제930경 〈자공경(自恐經)〉. p. T02n0099_p0237c02 - T02n0099_p0237c08. 심의식(心意識)
    "佛告摩訶男。汝亦如是。若命終時。不生惡趣。終亦無惡。所以者何。汝已長夜修習念佛.念法.念僧。若命終時。此身若火燒。若棄塚間。風飄日曝。久成塵末。而心意識久遠長夜正信所熏。戒.施.聞.慧所熏。神識上昇。向安樂處。未來生天。 時。摩訶男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15.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33권 제930경 〈자공경(自恐經)〉. p. 1324 / 2145. 심의식(心意識)
    "부처님께서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너도 그와 같아서, 목숨을 마친 뒤에도 악취(惡趣: 나쁜 곳, 즉 5악취)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오랫동안 염불(念佛) · 염법(念法) · 염승(念僧)의 수행을 닦고 익혀왔기[修習] 때문이다. 따라서, 목숨을 마치고 나서 이 몸이 불에 태워지거나 묘지에 버려져서 오랫동안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쪼여 마침내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심(心)·의(意)·식(識)이 오랜 세월 동안 바른 믿음[正信]에 훈습(薰習)되었고, 계(戒)·보시[施]·들음[聞]·지혜[慧]에 훈습되었기 때문에 신식(神識)은 위로 올라가 안락한 곳으로 향해 갈 것이요, 미래에는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 때 마하남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16.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39권 제1086경 〈마박경(魔縛經)〉. pp. T02n0099_p0284c28 - T02n0099_p0285a15. 심의식(心意識)
    "如是我聞。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爾時。世尊夜起經行。至於後夜。洗足入室。斂身正坐。專心繫念。 時。魔波旬作是念。今沙門瞿曇於王舍城迦蘭陀竹園。夜起經行。於後夜時。洗足入室。正身端坐。繫念禪思。我今當往。為作嬈亂。即化作年少。住於佛前。而說偈言。   我心於空中  執長繩罥下
      政欲縛沙門  不令汝得脫
    爾時。世尊作是念。惡魔波旬欲作嬈亂。即說偈言。
      我說於世間  五欲意第六
      於彼永已離  一切苦已斷
      我已離彼欲  心意識亦滅
      波旬我知汝  速於此滅去
    時。魔波旬作是念。沙門已知我心。慚愧憂慼。即沒不現。"
  17.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39권 제1086경 〈마박경(魔縛經)〉. p. 1600-1602 / 2145. 심의식(心意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있는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밤에 일어나 거니시다가[經行], 새벽이 되자 발을 씻고 방에 들어가 몸을 추스리고 단정히 앉아 전일(專一)한 마음으로 생각을 모으셨다. 그 때 악마 파순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사문 구담은 왕사성에 있는 가란다죽원에서 밤에 일어나 거닐다가 새벽이 되자 발을 씻고, 방에 들어가 몸을 추스리고 단정히 앉아 생각을 모으고 선정에 들어 있다. 내가 지금 저곳에 가서 교란[嬈亂]시키리라.' 그는 곧 젊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부처님 앞에 서서 게송으로 말했다.
      저 허공[空]에서 움직이는7) 내 마음의
      긴 올가미를 가지고 내려와
      그대 사문을 단단히 묶어[縛]
      그대 벗어나지[脫] 못하게 하리.
    그 때 세존께서는, '이는 틀림없이 악마 파순이 교란[嬈亂]시키려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시고, 곧 게송을 설하셨다.
      나는 세상의 5욕(五欲: 5경에 대한 탐욕)과
      제6의식[意第六]을 늘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영원히 여의었기에
      온갖 괴로움[苦]이 이미 끊어졌노라.
      나는 이미 저 5욕[欲]을 벗어났고
      심(心)·의(意)·식(識)까지도 사라졌노라.
      파순아, 나는 너를 아노니
      여기에서 어서 썩 사라지거라[滅去].
    그러자 악마 파순은 '사문 구담이 벌써 내 마음을 알고 있구나' 하고, 부끄럽고[慚愧] 근심[憂慼]스러워하면서 이내 사라지더니 나타나지 않았다.
    7) 감각능력[根]과 감각대상[境]에 관련된 감각영역에서 일어나는 체험적 현상을 비유한 것임."
  18. 권오민 2003, 67쪽.
  19. "오형근. 《월간불광》, 〈유식학과 인간성: (3) 심의식(心意識)사상의 개요 Archived 2014년 3월 17일 - 웨이백 머신〉. 불광출판사.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소승불교시대에 저술된 품류족론(品類足論)과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등에 의하면 『심(心)은 곧 의(意)이며, 의(意)는 또 식(識)으로서 그 체성(體性)은 서로 같으며 이름만 다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소승불교시대에는 심의식(心意識)이라는 명칭이 서로 표현만 다를 뿐 그 체성은 동일한 것으로 보았으며 동시에 이러한 심의식 사상이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체 소승사상을 통해 본다면 인간의 심성은 그 체성이 각기 다르며 활동도 다르게 한다는 학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인간의 심체(心體)는 유일한 것이며 그 활동하는 작용만 다를 뿐이라고 주장한 학설이 대부분이었다. 그 대표적인 학설은 소승불교를 최종적으로 종합하여 정리하였다는 세친론사(世親, AD. 4세기)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잘 나타나 있다.
    아비달마구사론에 의하면 『심의식의 3가지 이름은 그 표현의 뜻이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그 체성은 유일하다<心意識三名 所 異 而體是一>』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여 소승불교는 우리 인간의 심체(心體)를 하나로 본 것이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
  20. 星雲, "".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識: 梵語 vijñāna,巴利語 viññāna。音譯作毘闍那、毘若南。vijñāna 為 vi(分析、分割)與 jñāna(知)之合成語,乃謂分析、分類對象而後認知之作用。雖至後世時,心(梵 citta,巴同)、意(梵 mano,巴同)、識三語彙分別使用,然於初期時皆混合使用。依唯識宗之解釋,吾人能識別、了別外境,乃因識對外境之作用所顯現,故於此狀態之識稱為表識、記識(梵 vijñapti,音譯作毘若底)。
     於大、小乘佛教皆立有六識說。六識各以眼、耳、鼻、舌、身、意等六根為所依,對色、聲、香、味、觸、法等六境,產生見、聞、嗅、味、觸、知之了別作用,此即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等六種心識。喻如「六窗一猿」,六識之體為一,而起作用之門戶則六,概係六識說最初之意義。六識中,第六之意識稱為第六識,後世更賦予六識、意識、分別事識、四住識、攀緣識、巡舊識、波浪識、人我識、煩惱障識、分段死識等十名,稱為六識十名。
     除以上六識外,唯識宗另舉末那識與阿賴耶識(即阿梨耶識),成立八識說。其中從眼識至身識之五識(與六識說相同),總稱為前五識。至第六意識,稱為前六識。至第七末那識(即第七識,或單稱七識),稱為前七識(或單稱七識)。前七識以阿賴耶識為所依,而緣各境轉起,故稱為七轉識或轉識。而前六識能清晰識別對象,故稱為了別境識。第七末那識稱思量識,第八阿賴耶識稱異熟識。據護法之唯識說,八識中第六與第七識具有執著虛妄之對象為我或為法之遍計性,故稱「六七能遍計」。而前五識與第八阿賴耶識因無我、法之執著,故稱此為「五八無執」。復次,印度之無相唯識派認為八識之體性皆同,故主張八識體一之說。但有相唯識派唯識宗則謂其體性各別,而主張八識體別說;且二識乃至八識同時並起,同時轉起(俱轉),稱為八識俱轉。然而,小乘有部宗等不主張二識並起,異於前說。
     攝論宗(真諦所創)於八識外另立第九阿摩羅識(菴摩羅識),成立九識說。阿摩羅識別名無垢識、真如識、真識,即所謂淨識,依此而言,第八阿梨耶識被解作妄識或真妄和合識。地論宗、天台宗亦有人主張此說。
     真言宗立十識,即於八識之外別立二種:(一)多一識心,為生滅門之所依,相當於了知差別現象界之後得智。(二)一一識心,為真如門之所依,相當於體悟平等一如真理之根本智。
     據真諦譯之世親所著攝論釋卷五謂,因阿梨耶識變異所生之識,共有:身識、身者識、受者識、應受識、正受識、世識、數識、處識、言說識、自他差別識與善惡兩道生死識等十一種差別。於此,「顯識論」舉出顯識與分別識二種,其中因阿梨耶識所顯現之顯識復分為:身識、塵識、用識、世識、器識、數識、四種言說識、自他異識與善惡生死識等九識;而分別識為虛妄分別之主體,又可分成有身者識與受者識二種,其看法大致與真諦所說相符。
     又楞伽經卷一說三識,即:(一)真識,相當於阿摩羅識,或相當於阿梨耶識。(二)現識,相當於顯現萬法之阿賴耶識,或阿陀那識(即末那識)。(三)分別事識,即七轉識,或前六識。然真識之說僅見於楞伽經,而不見於梵本及其他譯本。按智吉祥賢之楞伽經註謂,現識為前五識,分別事識則為第六意識。
     據大乘起信論所說,由於阿梨耶識中之根本無明在阿梨耶識上起動妄念,以至認識對象而生起執著心,其相狀可分為:(一)業識,起動業作之始相。(二)轉識,因業識作用,所生見照的主觀作用之相。(三)現識,轉識成為客觀之境所現之相。(四)智識,執著現識為實在之相。(五)相續識,對現識執著不斷之相。上記五種識總稱為五意,或五識;相當於三細六粗中之前五者。此外,依無明能起動阿梨耶識,而展開迷界之相狀,如風吹大海成浪,故喻稱為識浪。〔雜阿含經卷三十六、大毘婆沙論卷九、卷二十三、俱舍論卷二、卷九、釋摩訶衍論卷二、大乘義章卷三、成唯識論述記卷五末、俱舍論光記卷四、宗鏡錄卷五十、十住心論卷十〕(參閱「末那識」1941、「阿摩羅識」3671、「阿賴耶識」3676)"
  21. "오형근. 《월간불광》, 〈유식학과 인간성: (3) 심의식(心意識)사상의 개요 Archived 2014년 3월 17일 - 웨이백 머신〉. 불광출판사.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이상과 같이 세친론사는 심의식을 매우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정신 활동의 내용을 종래의 이론보다 훨씬 깊고 넓게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심의식 사상은 대승불교에 이어지면서 유식학에서는 소승적인 사상을 대폭 개혁하고 또 그 사상을 대승적으로 크게 증보 하였다.
    그리고 심의식을 각각 분리시켜 오늘날의 팔식사상으로 조직화하였던 것이다. 유식학에서 심의식 사상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는 경전과 논전의 예를 들면 해심밀경(解心密經)의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을 비롯하여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아비달마집론(阿비達磨集論) 등 여러 경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경론에 의하면 심(心)과 의(意)와 식(識) 등은 그 활동과 역할하는 작용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체성도 각기 다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소승불교에서 대체로 심의식의 체성을 동일하다고 본 것에 대하여 대승불교의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에서는 다르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에는 심체(心體)의 동일설과 심체의 구별설을 말하는 심체일설(心體一說)과 심체별설(心體別說)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22. 황욱 1999, 5쪽.
  23. 星雲, "現行". 2012년 10월 11일에 확인.
  24. 星雲, "轉識". 2012년 10월 11일에 확인.
  25. 星雲, "五意". 2012년 10월 4일에 확인.
  26. 운허, "五意(오의)". 2012년 10월 4일에 확인.
  27. 곽철환 2003, "오의(五意)". 2012년 10월 4일에 확인.
  28. 곽철환 2003, "아타나식(阿陀那識)". 2012년 10월 4일에 확인.
  29. 운허, "阿陀那識(아타나식)". 2012년 10월 4일에 확인.
  30. 星雲, "阿陀那識". 2012년 10월 4일에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