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65 아틀라스

SM-65 Atlas
B-65/SM-65/CGM-16/HGM-16 아틀라스
Atlas 2E Ballistic Missile.jpg
샌디에이고 항공우주박물관 아틀라스 2E 미사일
함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조사컨베이어 / 제너럴 다이내믹스
원산지미국
크기
높이75피트 10인치(23.11m)
ICBM 구성에서 85ft 6인치(26.06m)
지름10피트(3.0m)
16피트(4.9m)
미사26만 lb (190,900 kg)
단계
연합 로켓
가족아틀라스
실행 기록
상태1965년 4월 은퇴
총출발24
성공13
실패11
제1편1957년 6월 6일
마지막 비행1959년 8월 24일
부스터즈
부스터 수1
전원 공급 기준2
최대 추력300,000파운드힘(1,300kN)
아틀라스 D
총추력360,000lbf(1,600kN
아틀라스 D
추진제RP-1/LOX
1단계
전원 공급 기준1
최대 추력6만파운드힘(270kN)
아틀라스 D
추진제RP-1/LOX
컨베어 X-11 / SM-65 아틀라스
원산지미국
서비스 이력
가동중1959–1964
사용자미국 공군
전쟁냉전
생산이력
제조사콘베어
사양
미사페이로드가 있는 아틀라스 D의 경우 255,950 lb(116,100 kg), Mk 2/3 RV 및 W49 탄두가 있는 아틀라스 D의 경우 260,000 lb(117,900 kg), Mk 4 RV 및 W38 탄두가 있는 아틀라스 E&F의 경우 268,000 lb(121,560 kg)
길이Mk 2 재진입 차량의 경우 75ft 1인치(22.89m), Mk 3의 경우 82ft 6인치(25.15m)
Mk 2 재진입 차량의 경우 16ft 1인치(4.90m), Mk 3의 경우 82ft 6인치(25.15m)
지름10피트 0인치(3.05m)

엔진1× Rocketdyne LR105 로켓 엔진, 215만 lbf(670kN)추력 방으로 1× Rocketdyne XLR89 로켓 엔진(아틀라스 D), 2× Rocketdyne LR101 보조 로켓 엔진 추력(LR105 sustainer 엔진 turbopumps에서 추진제 공급)(4.4kN)의 1,000lbf, 16lbf(730kN)(아틀라스 E&a과 2×LR89 부스터 엔진(독립 turbopumps).융점. F)
57,000lbf(25,000 N) 추력
정확도CEP 4,600ft(1,400m)
참조
SM-65 아틀라스
서비스 이력
가동중1959–1964
생산이력
설계된1953년(XB-65)
생산됨1959–1965
No. 지은350(모든 버전)
최대 구축 레벨 129
(30 D, 27 E, 72 F).
변형아틀라스 A, B/C, D, E/F(ICBM)
SLV-3/3A/3C(NASA 사용)

SM-65 아틀라스는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작전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자 아틀라스 로켓 계열의 첫 멤버다.샌디에이고 키어니 메사에 위치한 조립공장에서 제너럴 다이내믹스 컨베이어 사단이 미 공군을 위해 건설했다.아틀라스는 1959년 10월 가동을 시작했으나 곧 새로운 개발에 의해 ICBM으로 폐기되었고, 1965년까지 이 역할에서 물러났다.

아틀라스는 긴 준비 시간을 요구해 ICBM 급발진에는 부적합했다.그러나 이는 계획된 우주 발사 요건이 아니었고, 따라서 아틀라스에서 유래한 발사체들은 우주 발사체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1965년 ICBM 사용이 끝나기도 전에 아틀라스는 네 명의 프로젝트 머큐리 우주비행사를 궤도에 올려놓았고, 가장 두드러진 아틀라스 아게나와 아틀라스 센타우르스를 비롯한 성공적인 우주발사체 가족의 토대가 되고 있었다.합병으로 아틀라스 센타우루스 라인이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에 인수되었다.오늘날 ULA는 센타우루스 상단과 새로운 부스터를 결합한 더 큰 아틀라스 V를 지원한다.2001년까지 많은 은퇴한 아틀라스 ICBM을 개량하여 상위 단계와 결합하여 인공위성을 발사하였다.[citation needed]

역사

아틀라스는 최초의 미국 ICBM이자 최초의 대형 액체연료 로켓 중 하나였다.이와 같이, 그것의 초기 개발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으며, 비행 시험에서 문제가 드러나면서 계획이 빠르게 변경되었다.

아틀라스는 1946년 콘베어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사거리 1500~5000마일(2,400~8,000km)의 미사일을 연구하기 위한 육군 공군의 연구 계약이 체결되면서 시작됐다.MX-774 프로젝트는 그리스 신화아틀라스 사와 계약자의 모기업 아틀라스 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당시 가장 작은 핵탄두들은 모두 계획된 장거리 미사일의 최대 이론적 탑재량보다 크기 때문에 1947년 계약이 취소됐지만 육군 공군은 남은 계약 자금을 이용해 거의 완성되지 않은 연구용 차량 3대를 콘베어호가 발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세 번의 비행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했지만, 풍선 탱크와 짐바브웨 로켓 엔진은 유효한 개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1]

1951년 1월 16일 당시 MX-1593으로 불리던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낮은 두 번째 개발 계약이 컨베어에게 수여되었다.1953년 콘베어가 완성한 초기 설계는 결국 용역에 들어간 미사일보다 더 컸다.추정 탄두 중량은 1954년 초 미국의 매우 유리한 핵탄두 실험에 기초해 8000lb(3630kg)에서 3000lb(1360kg)로 낮아졌다.이는 1953년 소련의 조 4 건식 핵연료 열핵무기 실험과 소련 ICBM 프로그램이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CIA의 학습 외에도 이 프로젝트가 극적으로 가속화되는 계기가 됐다.아틀라스는 1954년 5월 14일에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충돌 프로그램이 되었다.[citation needed]

1955년 1월 14일, 10피트(3m) 직경의 미사일로 약 25만 lb (113,400 kg)의 무게에 대한 주요 개발 및 시험 계약이 컨베어에게 수여되었다.[2]아틀라스 개발은 공군 서부개발사단, WDD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었고, 이후 공군 탄도 미사일 사단의 일부였다.탄두, 유도, 추진에 대한 계약은 WDD가 별도로 처리했다.고도로 계측된 아틀라스 미사일을 만거리까지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비행한 것은 1958년 11월 28일이었다.아틀라스 ICBM은 1959년 10월 31일부터 1965년 4월 12일까지 운용 배치됐다.[3]

이 미사일은 원래 XB-65 실험폭격기로 지정되었다. 1955년에 SM-65("전략 미사일 65")로 재설계되었고, 1962년부터 CGM-16이 되었다.이 글자 "C"는 반강화 용기에 보관 중인 로켓인 "커핀" 또는 "컨테이너"를 의미하며, 그것은 개활지에서 인양되고 연료가 공급되어 발사 준비를 했다.아틀라스-F(HGM-16)는 지하에 수직으로 저장했다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뒤 발사됐다.[citation needed]

1965년까지 2세대 타이탄 2호가 작전 상태에 도달하면서 아틀라스는 미사일 시스템으로서 구식이 되었고 군사용에서 단계적으로 제외되었다.퇴역한 아틀라스 D, E, F 미사일의 상당수는 1990년대까지 우주 발사에 사용되었다.[citation needed]

침투성 윤활유 WD-40은 아틀라스 미사일의 외피를 위한 부식 방지 코팅으로 처음 사용되었음을 발견했다.[4]

미사일 디테일

아틀라스의 복잡하고 파격적인 디자인은 토르와 타이탄과 같은 로켓 제품군에 비해 디버깅이 어려웠으며, 초기에는 수십 번의 발사 실패가 있었다.수성의 우주비행사 거스 그리솜은 발사 직후 아틀라스 ICBM이 폭발하는 것을 지켜본 뒤 "우리가 정말 그 중 하나를 더 잘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수많은 실패로 아틀라스는 미사일 기술자들에 의해 "군간 탄도 미사일"로 불리게 되었지만 1965년까지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신뢰할 수 있는 발사체였다.아틀라스의 거의 모든 부품은 엔진 연소실에서 탱크 가압 시스템, 비행 제어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시험 비행 중 어느 시점에 고장날 수 있었지만, 컨베어 엔지니어들은 같은 고장이 세 번 이상 반복된 적이 없었고, At의 모든 부품 오작동도 없었다고 자부심을 갖고 언급했다.라스 비행이 결정되었고 해결되었다.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주요 설계 장애물은 불안정한 엔진 추진력이었는데, 이로 인해 아틀라스 미사일 3발이 발사대에서 폭발했다.

압력안정 탱크

아틀라스는 연료에 풍선 탱크를 사용하는 것이 흔치 않았는데, 이는 최소한의 견고한 지지 구조와 함께 매우 얇은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졌다.탱크의 압력은 비행에 필요한 구조적 강성을 제공한다.아틀라스 로켓은 가압하지 않으면 자체 무게로 붕괴될 것이고 연료가 공급되지 않더라도 탱크 안에 5psi(34kPa)의 질소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5]일부 로켓(팔콘 시리즈 등)은 부분적으로 압력 지지 탱크를 사용하지만, 작성 당시 풍선 탱크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방법은 센타우르 고에너지 상부 단계다.그 로켓은 버니어 로켓이라고 불리는 탱크의 측면에 두 개의 작은 추력실이 있었다.이를 통해 지지기 엔진이 셧다운된 후 속도와 조향의 미세한 조정을 할 수 있었다.

'스테이지 앤 반'

아틀라스는 비공식적으로 "단계와 반" 로켓으로 분류되었는데, 중앙 지지기 엔진과 발사 시 모두 시작된 두 개의 부스터 엔진 세트를 각각 추진제 탱크 한 세트에서 끌어냈다.대부분의 다단계 로켓은 다음 단계의 엔진을 발사하기 전에 엔진과 연료 탱크를 동시에 떨어뜨린다.그러나, 아틀라스 미사일이 개발되고 있을 때, 로켓 엔진이 공기로 시동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었다.따라서, 이 결정은 아틀라스의 모든 엔진에 발화시키기로 결정되었다; 버스터 엔진은 폐기될 것이고, 반면 지지기는 계속 연소될 것이다.액체 추진제 로켓의 단계는 통상 추진제 탱크와 엔진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1개 이상의 엔진만 분사하는 것은 '반쪽 단계'에 해당한다.스테이징 시, 부스터 엔진이 꺼지고 일련의 기계 및 유압 메커니즘이 배관 라인을 닫을 것이다.그런 다음 부스터 섹션은 일련의 유압 클램프에 의해 해제되고(폭발성 볼트를 사용한 초기 테스트 모델 Atlas B와 동일) 비산물을 미끄러지게 된다.거기서부터, 버니어와 버니어는 스스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부스터 스테이징은 발사 후 약 2분만에 이루어졌지만 정확한 타이밍은 비행 중인 특정 임무뿐만 아니라 아틀라스의 모델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이 "스테이지 앤 반" 디자인은 초경량 풍선 탱크에 의해 가능해졌다.탱크는 전체 부스터 중량의 아주 작은 퍼센트를 차지해서 궤도로 끌어올리는 것의 질량 벌점이 비행 중 절반을 버리는 데 필요한 기술 벌칙과 질량 벌칙보다 적었다.하지만 아틀라스에 대한 설계 작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고, 콘베어 경쟁사인 마틴은 공기 시작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아틀라스 백업으로 개발된 그들의 타이탄 1 미사일은 기존의 2단계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citation needed]

엔진

부스터 엔진은 두 개의 큰 추력실로 구성되었다.Atlas A/B/C에서 하나의 터보펌프 어셈블리가 두 부스터 엔진에 동력을 공급했다.아틀라스 D에서 부스터 엔진은 별도의 펌프 어셈블리를 가지고 있었다.아틀라스 E/F에서는 각 부스터 터보펌프에도 자체 가스 발전기가 설치되었다.이후 우주발사체 아틀라스의 변형된 우주발사체들은 공통의 가스 발생기에 의해 구동되는 각 부스터 엔진에 쌍둥이 터보펌프가 장착된 MA-5 추진 시스템을 사용했다.부스터는 지지기 엔진보다 더 강력했고 처음 2분 동안 대부분의 리프팅을 했다.피치 및 요 컨트롤 외에도 버니어 고장 시 롤 컨트롤을 수행할 수 있다.모든 아틀라스 변종에서 서포터 엔진은 자체 터보펌프와 가스발전기를 갖춘 단일 추력실 및 2개의 소형 압력식 버니어 엔진으로 구성되었다.버니어는 롤링 컨트롤과 최종 속도 트림을 제공했다.5개의 추력실 모두의 총 해수면 추력은 표준 아틀라스 D의 경우 36만 lbf (1,600 kN)이었다.아틀라스 E/F는 37만 5천 파운드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다.이들 3개 엔진 아틀라스 에스(Atlas Es)와 fs(Fs)의 총 해수면 추력은f 38만9000파운드(약 1730kN)였다.[citation needed]아틀라스의 발사기 변형 모델들은 종종 엔진의 성능이 향상되었다.[citation needed]

안내

아틀라스 미사일 A~D는 무선지도를 사용했는데, 이 미사일은 관성계통으로부터 무선으로 지상국으로 정보를 전송했고, 그 대가로 코스 보정 정보를 받았다.아틀라스 E와 F는 완전히 자율적인 관성 유도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유도 컴퓨터가 미사일 내부에 설치될 정도로 소형화되기 전까지는 지상 유도 컴퓨터는 미사일 시스템의 핵심 부품이었다.아이작 L. 아우어바흐는 아틀라스 ICBM용 버로우스 유도 컴퓨터를 설계했다.버러우스 유도 컴퓨터는 최초의 트랜지스터 컴퓨터 중 하나이다.18비트 명령어를 이용해 24비트 데이터를 처리했다.이 지상 컴퓨터들 중 총 17대가 배달되었다.이 같은 지상 컴퓨터들은 나중에 아틀라스-에이블, 프로젝트 머큐리, 그리고 다른 초기 우주선에 사용되었다.[6]

탄두

아틀라스 D의 탄두는 원래 W49 열핵무기를 탑재한 G.E. Mk 2 "열제거원" 재진입 차량(RV)으로 무게 3,700파운드(1,680kg), 수율 1.44메가톤(Mt)이었다.W49는 후에 Mk 3의 축열 RV에 배치되었고, 합계 무게는 2,420파운드(1,100 kg)이었다.아틀라스 E와 F는 수율 3.75 Mt의 W38 열핵 탄두가 들어 있는 AVCO Mk 4 RV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탄두는 공기 폭발 또는 접촉 폭발을 위해 연료로 사용되었다.Mk 4 RV는 Mk 4 RV의 레이더 시그니처를 복제한 mylar 풍선 형태의 침투 보조 장치도 배치했다.Mk 4 플러스 W-38의 합계 중량은 4,050 lb (1,840 kg)이었다.아틀라스 미사일의 탄두는 1945년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된 폭탄보다 100배 이상 강력했다.[citation needed]

R-7과의 비교

R-7 셈요르카는 소련 최초의 ICBM으로, 고도에서 대형 액체연료 엔진에 점화되지 않기 위해 발사 전 모든 엔진을 유사하게 시동했다.그러나 R-7에는 중앙 지지대 구간이 있어 측면에 4개의 부스터가 부착되어 있었다.대형 측면 부스터는 값비싼 발사대를 사용해야 했고 사일로에서 로켓 발사를 막았다.아틀라스호처럼 극저온 액체산소를 사용하는 것은 미사일이 무한정 비행준비 상태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의도된 목적(군사)에 크게 쓸모가 없었고, 우주발사체로 유사하게 개발되어 처음에는 스푸트니크보스토크를 궤도로 운반했다.소유즈 로켓은 R-7의 후손으로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7]

미사일 버전

SM-65A 아틀라스

콘베어 X-11/SM-65A 아틀라스/아틀라스 A는 1957년 6월 11일 처음 비행한 아틀라스 미사일의 첫 번째 실물 크기 시제품이었다.[8]구조와 추진 시스템을 검증하기 위해 고안된 시험 모델이었고, 유지장치 엔진이나 분리 가능한 단계가 없었다.처음 세 번의 아틀라스 A 발사는 원뿔형 추력실이 장착된 초기 로켓디네 엔진 설계를 사용했으며 13만 5천 파운드의 추력만 사용했다.4차 아틀라스 테스트에 의해, 그들은 종 모양의 추력실과 15만 파운드의 추력을 가진 개선된 엔진 설계로 대체되었다.

1957–1958년에 실시된 8번의 아틀라스 A 시험 비행이 있었고, 그 중 4편이 성공적이었다.모두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것으로, 발사 12단지 또는 발사 14단지가 있다.[8]

SM-65B 아틀라스

아틀라스 B ICBM 발사

콘베어 X-12/SM-65B는 아틀라스 로켓 프로그램의 특징인 스테이지와 하프 시스템을 도입한 두 번째 프로토타입 버전이었다.이 버전은 6,325마일(10,180km)을 비행했을 때 대륙간 비행거리라고 여겨질 수 있는 비행거리를 달성한 최초의 미국 로켓이었다.[9]

아틀라스 B호는 1958년 7월 19일에 처음 비행되었다. 10편의 비행 중 9편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서 아틀라스의 아틀라스의 궤도 이남 시험 비행이었으며, 5번의 성공적인 임무와 4번의 실패가 있었고, 다른 비행은 SCORE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았다.모든 발사는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 11, 13, 14단지에서 실시되었다.[8]

SM-65C 아틀라스

SM-65C Atlas 또는 Atlas C는 세 번째 원형 Atlas 버전이었고, 개선되고 가벼운 무게의 구성품을 가진 보다 정교한 모델이었다. 더 큰 LOX 탱크와 더 작은 연료 탱크였다.1958년 12월 24일 첫 비행기로, 최종 개발 버전이었다.당초 아틀라스-에이블 로켓의 1단계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1959년 9월 24일 정적 시험 중 폭발에 이어 아틀라스 D에 유리하게 폐기됐다.[citation needed]6편의 비행이 이루어졌는데, 아틀라스의 모든 아궤도 이남 탄도 시험 비행은 3번의 시험이 성공했고, 3번의 실패가 있었다.[citation needed]모든 발사는 발사 12단지에 있는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실시되었다.[citation needed]

SM-65D 아틀라스

SM-65D 아틀라스, 즉 아틀라스 D는 아틀라스 미사일의 첫 운용 버전이자 1959년에 첫 선을 보인 모든 아틀라스 우주 발사대의 기반이었다.[10]아틀라스 D의 무게는 255,950파운드(11만6,100kg)로 (부하 없이) 빈 중량은 11,894파운드(5,395kg)에 불과했고, 나머지 95.35%는 추진제였다.6,720 lb(3,048 kg) 부스터 엔진을 떨어뜨리고 페어링을 하면 건조 중량이 5,174 lb(2,347 kg)로 줄어들어 차량 초기 총 중량의 2.02%에 불과했다(여전히 페이로드 제외).이 매우 낮은 건조 중량은 아틀라스 D에 최대 9,000마일(1만4,500km)의 범위를 주거나, 상단을 요구하지 않고 탑재량을 궤도에 올려놓았다.[11]그것은 1959년 4월 14일에 처음 비행했다.

공군은 미국에 중간 또는 비상 ICBM 능력을 제공하기 위해 1959년 9월 제576전략미사일중대 704전략미사일비행단 작전통제 하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AFB에 SM-65D 아틀라스 미사일 3기를 개방형 발사대에 배치했다.원소에 완전히 노출된 3기의 미사일은 갠트리 크레인에 의해 정비되었다.미사일 한 발은 항상 작전상 경계태세에 있었다.그들은 1964년 5월 1일까지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citation needed]

SM-65E 아틀라스

SM-65E Atlas 또는 Atlas-E는 아틀라스 미사일의 첫 번째 3 엔진 작동 변종이었으며, 두 개의 부스터 추력실을 독립된 터보펌프 세트가 있는 별도의 엔진으로 분할하여 얻은 세 번째 엔진이었다.1960년 10월 11일에 처음 비행했으며, 1961년 9월부터 1965년 3월까지 작전용 ICBM으로 배치되었다.[12]

아틀라스 E의 주요한 개선점은 지상 관제 설비의 필요성을 없애주는 새로운 전면적 시스템이었다.미사일은 더 이상 중앙유도통제시설에 묶이지 않았기 때문에, 발사대는 1 × 9라고 불리던 구성으로 더 넓게 분산될 수 있었는데, 그 구성으로 편대에 배정된 9개의 미사일에 대해 각각 1개의 미사일 사일로가 하나의 발사장에 위치하였다.[citation needed]

아틀라스-E 발사는 케이프 캐너벌 공군기지, 발사 11단지와 13단지, 반덴버그 AFB 작전 사일로 시험시설 반덴버그 공군기지, 반덴버그 AFB 발사 576단지와 반덴버그 AFB 우주발사 3단지에서 실시되었다.[8]

SM-65F 아틀라스

SM-65F 아틀라스, 즉 아틀라스-F는 아틀라스 미사일의 최종 운용 변종이었다.1961년 8월 8일에 처음 비행했으며, 1962년 9월부터 1965년 4월 사이에 작전용 ICBM으로 배치되었다.


아틀라스 F는 본질적으로 아틀라스 E의 빠른 발사 버전으로, 지하 콘크리트와 강철 사일로 내부의 수직 위치에 저장되도록 개조되었다.그것은 다른 베이싱 모드(F의 경우 지하 사일로)와 연료 관리 시스템과 관련된 인터페이스를 제외하고 E 버전과 거의 동일했다.[13]미사일은 저장되었을 때 엘리베이터의 꼭대기에 앉았다.경계 태세를 갖추면 미사일 내부에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RP-1(케로젠) 액체연료를 연료로 주입했다.발사 결정이 내려지면 액체산소로 연료를 채웠다.액체 산소 연료 주입이 완료되면 엘리베이터가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citation needed]

이 보관 방법은 아틀라스 F를 약 10분 만에 발사할 수 있게 하여 아틀라스 D와 아틀라스 E를 약 5분 동안 절약할 수 있게 되었는데, 둘 다 수평으로 저장되어 연료가 공급되기 전에 수직 위치로 올려야 했다.[citation needed]

아틀라스-F 발사는 케이프 캐너벌 공군기지, 발사 11단지와 13단지, OSTF-2의 반덴버그 공군기지, 반덴버그 AFB 발사 576단지와 반덴버그 AFB 우주발사 3단지에서 실시되었다.[8]

작전배치

SM-65 Atlas 배치 사이트: SM-65D(빨간색), SM-65E(보라색), SM-65F(검은색)

전략공군사령부는 1959년부터 1962년까지 11개 작전 아틀라스 ICBM 편대를 배치했다.미사일 3종인 아틀라스 D, E, F 시리즈는 각각 배치되었고 점진적으로 더 안전한 발사대를 기반으로 했다.

서비스 이력

사용 중인 아틀라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연도별 수: CGM-16D 아틀라스 대륙간 탄도 미사일 할당:

  • 1959: 6
  • 1960: 12
  • 1961: 32
  • 1962: 32
  • 1963: 28
  • 1964: 13

CGM-16E 아틀라스 대륙간 탄도 미사일 할당:

  • 1961: 32
  • 1962: 32
  • 1963: 33
  • 1964: 30

HGM-16F 아틀라스 대륙간 탄도 미사일 할당:

  • 1961: 1
  • 1962: 80
  • 1963: 79
  • 1964: 75

Atlas-D 배치

아틀라스-D ICBM은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AFB의 반강화 '코핀' 벙커에서 발사됐다.

1959년 9월 1차 작전 아틀라스 ICBM 편대는 지상 발사대에 배치된 SM-65D 아틀라스 미사일 6기를 탑재한 와이오밍주 F.E. 워렌 AFB에서 작전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아틀라스 D 3개 대대와 와이오밍 주 F.E. 워렌 AFB 인근 2개 대대, 네브라스카 주 오프트 AFB에 1개 대대는 지상 발사대에 근거해 1평방인치(34kPa)에 불과한 과압에 대한 폭발 방지를 제공했다.이러한 단위는 다음과 같다.

프란시스 E. 워렌 AFB, 와이오밍 주 (1960년 9월 2일 – 1964년 7월 1일)
제564 전략 미사일 편대(미사일 6기)
565 전략미사일 편대(미사일 9기)
오프넛 AFB, 네브라스카 (1961년 3월 30일 – 1964년 10월 1일)
제549 전략미사일 편대(미사일 9기)

워렌의 564번째 SMS의 첫 번째 부지는 6개의 발사대로 구성되었고, 두 개의 발사 작전 건물로 통제되었고, 중앙 안내 통제 시설 주변에 모여 있었다.이를 3 × 2 구성이라고 불렀는데, 각각 3개의 미사일로 이루어진 2개의 발사 단지가 1개 중대를 구성했다.[citation needed]

제565차 SMS 워렌 제2부지와 제549차 SMS의 경우 네브라스카주 오푸트 AFB의 미사일은 3 x 3의 구성으로, 발사 단지는 발사대 3기와 복합 유도제어/발사시설 1기가, 3개 단지는 1개 비행단을 구성했다.이들 후기 현장에서 결합된 유도 및 제어 설비는 부분 지하실에서 107 X 121 ft(33 X 37 m)로 측정했다.강력한 핵탄두 1개가 다수의 발사장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발사 단지를 20~30마일(30~50㎞) 간격으로 분산하는 분산 기술도 채용됐다.[citation needed]

Atlas-E 배치

SM-65E 아틀라스는 최대 25psi(170kPa)의 과압으로부터 미사일을 보호하는 수평 "반미하드" 또는 "코핀" 설비를 기반으로 했다.이 배치에서 미사일, 지지 시설 및 발사 작업 건물은 지하에 묻힌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에 수용되었다. 오직 지붕만 지상 위로 돌출되어 있었다.이러한 단위는 다음과 같다.[citation needed]

워싱턴의 페어차일드 공군 기지 (1961년 9월 28일 – 1965년 2월 17일)
567 전략미사일 편대, (9기)
포브스 AFB, 캔자스 (1961년 10월 10일 – 1965년 1월 4일)
548 전략미사일 편대, (9기)
프란시스 E. 워렌 AFB, 와이오밍 주 (1961년 11월 20일 – 1965년 1월 4일)
566 전략미사일 편대(미사일 9기)

Atlas-F 배치

SM-65F 아틀라스 6개 중대는 지하 사일로에 수직으로 저장한 최초의 ICBM이었다.고강도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거대한 사일로는 최대 100 psi(690 kPa)의 과압으로부터 미사일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됐다.[citation needed]

ICBM으로서의 은퇴

1963년 초 고체연료LGM-30 미니트맨이 가동된 후, 아틀라스는 급속히 구식이 되었다.1964년 10월까지 모든 아틀라스 D 미사일은 단계적으로 폐기되었고, 1965년 4월에 아틀라스 E/F가 그 뒤를 이었다.모든 버전의 약 350개의 아틀라스 ICBM이 구축되었으며, 최고 배치 수준은 129(30D, 27E, 72F)이다.비교적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아틀라스는 많은 새로운 미사일 기술의 입증장소 역할을 했다.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의 발전이 후기 모든 ICBM 프로그램의 기반을 닦은 조직, 정책, 절차를 발생시켰다는 점이다.

1965년 운용 중인 ICBM 서비스에서 물러난 뒤 ICBM을 개조해 40년 가까이 우주발사체 부스터로 사용했다.

Atlas-A에서 -C까지 출시 기록

1965년 아틀라스의 발사 그래프는 USAF 타이탄 II와 함께 고장이 강조(핑크)된 달마다 누적되며 NASA는 수성과 제미니 프로젝트(파란색)에 ICBM 부스터를 사용한다.아폴로-토턴의 역사와 전망 또한 보여졌다.
(SM-65A)
날짜
시간
(GMT)
패드 직렬 아포지 결과
1957-06-11 19:37 LC-14 4A 2km(1.2mi) 실패
1957-09-25 19:57 LC-14 6A 3km(1.9mi) 실패
1957-12-17 17:39 LC-14 12A 120km(75mi) 성공
1958-01-10 15:48 LC-12 10A 120km(75mi) 성공
1958-02-07 19:37 LC-14 13A 120km(75mi) 실패
1958-02-20 17:46 LC-12 11A 90km(56mi) 실패
1958-04-05 17:01 LC-14 15A 100km(62mi) 성공
1958-06-03 21:28 LC-12 16A 120km(75mi) 성공
(SM-65B)
날짜
시간
(GMT)
패드 직렬 아포지 결과 언급
1958-07-19 17:36 LC-11 3B 10km(6.2mi) 실패
1958-08-02 22:16 LC-13 4B 900km (190mi) 성공
1958-08-29 04:30 LC-11 5B 900km (190mi) 성공
1958-09-14 05:24 LC-14 8B 900km (190mi) 성공
1958-09-18 21:27 LC-13 6B 100km(62mi) 실패
1958-11-18 04:00 LC-11 9B 800km(500mi) 실패
1958-11-29 02:27 LC-14 12B 900km (190mi) 성공 1차 전거리 시험비행
1958-12-18 22:02 LC-11 10B 해당 없음 성공 SCORE 위성 배치
185km (185mi) x x로
1484km(922mi) x 32.3° 궤도
1959-01-16 04:00 LC-14 13B 100km(62mi) 실패
1959-02-04 08:01 LC-11 11B 900km (190mi) 성공
(SM-65C)
날짜
시간
(GMT)
직렬 아포지 결과
1958-12-24 04:45 3C 900km (190mi) 성공
1959-01-27 23:34 4C 900km (190mi) 실패
1959-02-20 05:38 5C 100km(62mi) 실패
1959-03-19 00:59 7C 200km(120mi) 실패
1959-07-21 05:22 8C 900km (190mi) 성공
1959-08-24 15:53 11C 900km (190mi) 성공

생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