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대외 관계

Foreign relations of Indonesia
2019년 8월 9일 푸트라자야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 외교관계는 "자유롭고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고수해 왔으며, 그 규모와 위치에 걸맞은 지역 문제에 역할을 하고자 하지만 강대국 간의 갈등에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수카르노 대통령 임기 동안 인도네시아의 대외 관계는 반둥회의, 비동맹운동의 그 후의 창립과 서구 열강에 대한 대립적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새롭게 독립한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로 특징지어졌습니다.수카르노가 NEKOLIM(신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1]이라고 칭한 것에 대한 반대와 CONEFO에 대한 믿음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1965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수카르노와 좌파 세력을 축출한 후, 수하르토 대통령이 수카르노 시대 후반을 특징짓는 반서방, 반미적 자세에서 벗어나면서 인도네시아 외교 정책은 "신질서" 정부 하에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1998년 수하르토의 축출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하르토의 독자적이고 온건한 외교정책의 광범위한 윤곽을 유지해 왔습니다.국내 문제에 대한 선점이 역대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막지 못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1975년 12월 이웃 동티모르 침공, 이후합병과 점령, 1999년 독립 국민투표, 그리고 로 인한 폭력사태로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경색되었습니다.인도네시아는 1967년 설립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창립회원국이자 동남아시아 최대 국가로서 아세안을 외교정책과 전망의 초석으로 삼고 있습니다.21세기 수하르토 정권에서 비교적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 변모한 인도네시아는 오늘날 [2]아세안에서의 리더십을 통해 역내 협력과 발전, 민주주의, 안보,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현재 이스라엘은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인도네시아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지 않은 유일한 유엔 회원국입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둘러싼 캄보디아-태국 분쟁에서 인도네시아는 가까스로 평화 중재자 역할을 했습니다.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회원국들은 미얀마 정부가 정치체제를 개방하고 다른 개혁들을 보다 [2]신속하게 도입하도록 독려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지리적, 인구학적 규모, 증가하는 능력, 외교적 이니셔티브 등을 고려하여 학자들은 인도네시아를 아시아 태평양의 [3]중강국 중 하나로 분류해 왔습니다.

역사문제

인도네시아의 외교정책은 역사적 맥락, 지리적 위치, 국익, 리더십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다음은 인도네시아 외교정책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개요입니다.

  • 기본 원칙:인도네시아의 외교정책은 평화공존, 상호존중, 타국 [4]내정불간섭을 강조하는 판카실라 건국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서뉴기니.뉴기니의 서쪽 지역은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고 "서이리안"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인도네시아가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을 때, 네덜란드는 서이리안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했지만, 인도네시아는 그것을 주장했습니다.유엔은 1963년 서이리안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하는 것을 감독했습니다.이 지역은 1969년 자유선택법으로 알려진 유엔의 [5]승인을 받은 국민투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비동맹운동: 인도네시아는 1945년 네덜란드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후 비동맹운동(NAM)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NAM은 냉전 기간 동안 어떤 주요 강대국과도 동조하지 않기로 결정한 국가들의 모임으로, 중립적 입장을 지지하고 개발도상국 [6]간의 협력을 촉진했습니다.
  • 지역 리더십: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1967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창립회원국 중 하나로 동남아의 [7]평화·안정·경제통합을 위한 지역구상에 적극 참여해 왔습니다.
  • "자유롭고 적극적인" 외교 정책:1950년대와 1960년대 수카르노 대통령의 지도 아래 인도네시아는 "자유롭고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이 정책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주장하고 국제기구에 참여하고 탈식민화 운동을 지원하며 개발도상국의 [8]권리를 옹호함으로써 국제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포스트 수하르토 시대: 1998년 수하르토 대통령의 퇴진 이후 인도네시아는 정치·경제적 개혁을 경험했습니다.이 시기에는 경제발전, 지역협력, 민주주의 증진에 초점을 맞춘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변화했습니다.인도네시아는 [9]대외관계에서도 보다 실용적인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 동티모르: 1975년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직후 인도네시아가 이 지역을 침공하여 점령했습니다.점령은 24년 동안 지속되었고 광범위한 인권 유린, 폭력 그리고 동티모르 사람들의 저항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국제 사회는 점령을 크게 비난했습니다.여러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인도네시아에 탈퇴 압력을 가했습니다.1999년 인도네시아는 정치적 지위를 결정하기 위해 유엔이 후원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동티모르 국민 대다수는 독립에 찬성해 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조직한 광범위한 폭력과 파괴로 이어졌습니다.호주가 이끄는 국제 평화유지군이 질서를 회복했습니다.동티모르는 마침내 [10]2002년에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 영토 보전:인도네시아는 영토 보전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으며, 주권에 대한 어떠한 위협에도 단호한 입장을 보여왔습니다.남중국해를 비롯한 다양한 영유권 분쟁에 연루돼 외교적 [11]협상 등 평화적 수단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 왔습니다.
  • 대테러 및 해상안보:인도네시아는 테러와의 전쟁과 해상 안전 보장을 위해 지역 및 국제 협력국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습니다.과거 테러 공격의 영향을 받아 정보 공유, 국경 통제,[12] 대테러 노력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 경제외교:세계 4위의 인구와 경제 성장으로 인도네시아는 외국인 투자 유치, 무역 관계 증진, 타국과의 경제적 유대 강화를 위한 경제 외교에 주력해 왔습니다.경제 성장과 발전을 [13]촉진하기 위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과의 파트너십을 추구해 왔습니다.
  •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인도네시아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매우 취약한 국가로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그것은 지속 가능한 개발, 산림 보호, 그리고 온실가스 [14]배출 감소를 위한 강력한 옹호자였습니다.
  • 세계 및 지역 다자주의:인도네시아는 유엔(UN), 세계무역기구(WTO),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다양한 다자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다자간 대화와 [15]지역협력 증진을 통해 세계평화와 안보,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상당한 국제회원권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1967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함께 창립 회원국이었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16]에 참여한 것은 인도네시아의 현대 외교정책의 초석입니다. 이후로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도 아세안에 가입했습니다.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해방 이후 아세안은 공동의 경제·사회·문화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되었으나, 1994년 미국을 포함한 22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이 설립되면서 이러한 아세안의 양상은 확대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남자카르타 케바요란 바루의 잘란 시싱사만가라자 70A호에 위치한 아세안 사무국의 소재지이기도 합니다.인도네시아 주재 공관 근무 외에도, 자카르타 주재 외국 대사관과 공관의 수는 아세안에 인가되어 있습니다.아세안 본부는 동남아시아의 외교 중심지로서 자카르타의 위상을 높여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도네시아의 지속적인 국내 문제는 아세안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고 결과적으로 조직 내 영향력을 감소시켰습니다.그러나 1998년 Reformasi의 혼란에서 201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사회에 이르는 정치·경제적 변혁 이후 인도네시아는 2011년 ASEAN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면서 역내 외교무대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인도네시아는 아세안에 대한 전 세계의 지지와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무게감과 국제적인 정당성, 그리고 세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인도네시아는 아세안이 경제개발과 협력을 촉진하고 안보, 평화, 아세안의 안정을 증진하며 동남아시아 지역을 [2]분쟁과 거리를 두는 등 국제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인접한 아세안 회원국 3개국과 인도네시아의 양국 관계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적절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상호 불신과 의심을 초래하여 양국간 및 지역간 협력을 저해하게 될 것입니다.아세안 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자처할 수도 있는 인도네시아의 부상 시대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부상은 낙관적인 의미로 봐야 합니다.첫째, 인도네시아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외교 정책의 전반적인 기조는 주로 자유주의적이고 수용적입니다.인도네시아 민주정부의 공고화는 아세안에서 핵심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둘째, ASEAN의 제도적 네트워크는 지역 엘리트들 간의 참여와 정기적인 만남을 지속시켜 상호 이해와 개인적인 유대를 심화시킬 [17]것입니다.

비정렬 이동(NAM)

인도네시아 또한 NAM의 설립자 중 하나였으며, 의회에서 온건한 입장을 취해왔습니다.1992~95년 NAM 회장으로서 NAM의 입장을 남북 대결의 수사에서 벗어나 발전 분야에서 남북 협력의 확대를 주장했습니다.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비동맹 운동의 주요 지도자이며, 전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도자입니다.

이슬람 협력 기구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인구를 가지고 있고 OIC의 회원국입니다.그것은 외교 정책 결정에 있어서 이슬람 연대의 이익을 신중하게 고려하지만 일반적으로 OIC에서 온건함을 위해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인도네시아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포럼의 강력한 지지자였습니다.주로 1994년 인도네시아 회의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의 노력을 통해 APEC 회원국들은 2010년까지 역내 자유무역을 산업화 경제권과 2020년까지 개발도상국에 실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경제 대국으로서, 인도네시아는 G20개발도상국 8개국(D-8)과 같은 다른 경제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주요 20개국(G20) 경제

2008년, 인도네시아는 G20의 회원국으로 승인되었는데,[18] 이는 이 그룹에서 유일한 아세안 회원국입니다.인도네시아는 세계 [18]경제의 85%를 차지하는 세계적인 경제강국에 가입함으로써 아세안 국가들의 대변자로서, G20 [19]개발도상국의 대표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2022년 G20 정상회의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IGGI 및 CGI

1966년 이후 인도네시아는 국제 공여국, 특히 미국, 서유럽, 호주, 일본과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Group on Indonesia, IGGI)와 그 후임인 인도네시아 협의체(CGI, Consultative Group on Indonesia)의 회의를 통해 환영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그것은 상당한 외국의 경제적 지원을 조정했습니다.티모르의 문제와 인도네시아가 경제 개혁을 꺼리는 것은 때때로 기부자들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1992년 IGGI 원조 조정 그룹은 모임을 중단하고 조정 활동은 CGI를 통해 세계은행에 의해 마련된 회의로 옮겨졌습니다.CGI는 2007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제적으로 조직된 원조 조정 프로그램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제안하면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국제분쟁

인도네시아에는 수많은 외딴 섬들이 있는데,[20] 그 중 일부 섬에는 북쪽의 말라카 해협에서 정기적으로 선박을 공격하는 수많은 해적 집단들과 호주와 필리핀 [21]해역을 관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불법 조업 선원들이 살고 있습니다.인도네시아 수역 자체가 수많은 [22]외국 선박들의 불법 조업 행위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이웃 국가들과 현재적이고 역사적인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수교

인도네시아의 국가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나라 날짜[23]
1 이집트 1947년6월10일[24]
2 필리핀 1949년11월24일[25]
3 미얀마 1949년12월27일[26]
4 미국 1949년12월28일[27]
5 이탈리아 1949년12월29일[28]
6 벨기에 1949년12월[29]
7 호주. 1949
8 영국 1950년1월13일[30]
9 노르웨이 1950년1월25일
10 체코 1950년2월2일
11 러시아 1950년2월3일
12 덴마크 1950년2월15일
13 루마니아 1950년2월20일
14 태국. 1950년3월7일[31]
성좌 1950년3월13일[32]
15 이라크 1950년3월27일
16 중국 1950년4월13일
17 파키스탄 1950년6월[33]
18 프랑스. 1950년9월
19 이란 1950[34]
20 레바논 1950[35]
21 사우디아라비아 1950[36]
22 스웨덴 1950
23 시리아 1950
24 터키 1950
25 인디아 1951년3월3일[37]
26 포르투갈 1951년10월19일[38]
27 조던 1951년10월22일
28 스위스 1951년11월2일[39][40]
29 룩셈부르크 1952년1월8일[41]
30 독일. 1952년6월25일[42]
31 스리랑카 1952년8월6일[43]
32 캐나다 1953년3월3일[44]
33 멕시코 1953년4월6일
34 브라질 1953년4월[45]
35 핀란드 1954년9월6일[46]
36 세르비아 1954년11월4일
37 오스트리아 1954
38 아프가니스탄 1955년4월24일[47]
39 헝가리 1955년6월26일[48]
40 폴란드 1955년9월19일[49]
41 베트남 1955년12월30일[50]
42 아르헨티나 1956년6월30일
43 불가리아 1956년9월20일[51]
44 몽골 1956년12월22일[52]
45 라오스 1957년8월30일[53]
46 말레이시아 1957년8월31일[54]
47 그리스 1958년2월23일[55]
48 스페인 1958년2월[56]
49 일본 1958년4월
50 뉴질랜드 1958년6월28일
51 캄보디아 1959년2월13일[57]
52 베네수엘라 1959년10월10일
53 가나 1959[58]
54 쿠바 1960년1월22일
55 소말리아 1960년 12월 21일[59]
56 네팔 1960년 12월 25일[60]
57 모로코 1960[61]
58 수단 1960
59 튀니지 1960[62]
60 에티오피아 1961[63]
61 예멘 1962년4월21일[64]
62 알제리 1963[65]
63 볼리비아 1963
64 콩고 민주 공화국 1963[66]
65 기니 1963[67]
66 북한 1964년4월16일[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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