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퍼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

Corpus Aristotelicum
소피스트적 반박의 끝과 물리학의 시작은 벡커의 1831년판 184쪽에 있다.

코퍼스 아리스토텔레스중세 원고전송을 통해 고대로부터 살아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집이다. 이 문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이 분실되거나 의도적으로 파괴된 것과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 내에서 나온 기술적인 철학적 논술이다. 이들에 대한 언급은 임마누엘 벡커의 19세기 판의 조직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는 이들 작품의 고대 분류에 기초한다.

기존 작업 개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존하는 작품들은 코퍼스 아리스토텔레스주의 5가지 범주에 따라 세분된다. 이 모든 작품들이 진품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의 견해에 대한 그들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다르다. 몇몇은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교"의 산물로 간주되어 그의 지시나 감독하에 편찬된다. (코르푸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유일하게 현대적으로 추가된 아테네헌법도 그렇게 간주되어 왔다.) On Colors와 같은 다른 작품들은 Lyceum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들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램파스쿠스테오프라스토스스트라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다마스커스의 니콜라오스에 의해, 플란티스 같은 교리나 내용의 유사점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을 얻었다. 여기서 생략된 마지막 범주에는 중세 야자수, 점성술마법의 글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의 관계가 순전히 공상적이고 자기 선전적인 것이다.

몇몇 논문에서 말뭉치에 있는 다른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러한 참고자료에 기초하여, 일부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저술에 대해 가능한 연대순을 제시했다. 를 들어, W.D. 로스는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연대기를 제안했다. 범주, 주제, 소피리스티 엘렌치, 분석, 형이상학 Δ, 물리적 작품, 윤리학, 나머지 형이상학.[1] 그러나 많은 현대 학자들은 단순히 증거의 부족에 근거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의 연대순을 결정하려는 그러한 시도에 회의적이다.[2]

내향성 및 내향성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에서 유래한 구별에 따르면, 그의 글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것은 "외향적"과 "내향적"[3]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대중을 위해 의도한 작품들(엑소틱)과 리슘 과정/학교 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의도된 더 기술적인 작품들(에소틱)[4]의 구별이라고 이해했다. 현대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후자를 아리스토텔레스 고유의 (비양식) 강의 노트(또는 어떤 경우에는 그의 학생들이 쓸 수 있는 노트)로 가정한다.[5] 그러나 한 고전학자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한다. 5세기 신포화학자 암모니우스 헤르미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체가 의도적으로 외설적인 것으로서 "그런 이유로 선량한 사람들이 더욱 마음을 뻗칠 수 있는 반면, 부주의로 잃어버린 공허한 마음은 이런 문장과 마주치면 무명들에 의해 날아가 버릴 것"[6]이라고 쓰고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의 목록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156개의 책으로 구성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을 저명한 철학자들삶과 의견들에 열거하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작품들을 총 400여 권의 책으로 나누어 총 445,270줄의 저술로 보고하고 있다.[7]

목록은 다음과 같다.[7]

  • 정의의 4권
  • 시인에 대하여, 세 권의 책
  • 철학에 대하여, 세 권의 책
  • 정치가 중에서는 두 권의 책이 있다.
  • 수사학, 또는 Grylus, 한 권의 책
  • 네린투스, 책 한 권
  • 소피스트 1권
  • 메넥세누스, 책 한 권
  • 사랑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심포지엄, 책 한 권
  • 부(富)의 한 권
  • 철학에 대한 권고, 책 한 권
  • Of the Soul, 책 한 권
  • Of Prayer, 한 권의 책
  • 노블 탄생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즐거움에 대하여, 책 한 권
  • 알렉산더, 혹은 식민지를 위한 간청, 한 권의 책
  • 왕십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On Education 한 권
  • Of the Good, 세 권의 책
  • 플라톤의 법칙에서 발췌한 세 권의 책
  • 공화국의 발췌문, 두 권의 책
  • 가구관리, 1권
  • 우정의 책 한 권
  • 영향을 받았거나 받은 책 한 권
  • 과학의 한 권
  • 논쟁의 여지가 있는 질문에 대해, 두 권의 책
  • 논쟁적 질문의 해결책, 4권
  • 소피스트 디비전스, 4권
  • 콘트라리에 대해 한 권의 책
  • 제네라와 종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필수 속성, 한 권의 책
  • 반박 목적을 위한 인수, 노트북 3개
  • 덕에 관한 명제, 두 권의 책
  • 이의제기, 책 한 권
  • 결정요소가 첨가된 용어 또는 표현의 다양한 의미에 관한 연구
  • 열정 혹은 분노의 책 한 권
  • 윤리 5권
  • 원소에 대하여, 3권
  • Of Science
  • Of 논리적 원칙, 하나의 책
  • 논리분할, 17권
  • 디비전 관련, 한 권의 책
  • 변증법적 질문과 대답에 대해, 두 권의 책
  • Of Motion, 책 한 권
  • 제안, 책 한 권
  •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제안들, 한 권의 책
  • 삼단논법, 한 권의 책
  • 사전 분석, 8권
  • 대후방 분석, 두 권의 책
  • Of Proble
  • Methodics, 8권
  • Of the Great Good, 한 권의 책
  • On the Idea, 한 권의 책
  • 주제 앞에 붙은 정의, 7권
  • 삼단논법 중에서, 두 권의 책
  • 정의가 있는 삼단논법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바람직한 자와 조건의 자, 책 한 권
  • 공통점 서문, 한 권의 책
  • 정의를 비판하는 주제, 두 권의 책
  • 애정이나 자질, 책 한 권
  • 논리적 분할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수학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정의, 13권
  • 반박문, 두 권의 책
  • Of Forcess, 한 권의 책
  • 제안, 책 한 권
  • 자원봉사에 관한 책 한 권
  • On the Beautiful, one book
  • 리퓨테이션 논문, 25권
  • 사랑에 관한 논문, 4권
  • 우정에 관한 논문, 두 권의 책
  • 영혼에 관한 논문, 책 한 권
  • 정치, 책 두 권
  • 테오프라스토스와 같은 정치학 강좌 8권
  • Of Just Actions, 두 권의 책
  • 미술품 수집, 두 권의 책
  • 미사여구의 예술, 두 권의 책
  • 미술, 핸드북, 책 한 권
  • 또 다른 핸드북 모음집, 두 권의 책
  • 방법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테오데테스의 "예술"의 개요, 한 권의 책
  • 시예에 관한 논문, 두 권의 책
  • 수사학적 엔티메스, 한 권의 책
  • Of Degree, 책 한 권
  • 엔티엠의 사단, 책 한 권
  • 어투에 대하여, 두 권의 책
  • Of Taking Counsel, 책 한 권
  • A 컬렉션 또는 컴펜디엄, 두 권의 책
  • 자연에서, 세 권의 책
  • 자연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아르키타스의 철학에 관하여, 세 권의 책
  • Spusippus와 Xenocrates의 철학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티마이우스와 아르키타스 작품에서 추출한 것, 한 권의 책
  • 멜리소스의 글에 대한 답신, 한 권의 책
  • 알카에온의 글에 대한 회답, 한 권의 책
  • 피타고라스에 대한 답신, 한 권의 책
  • 고르기아스의 글에 대한 회답, 한 권의 책
  • 제노파네스의 저술에 대한 회답, 한 권의 책
  • 제노의 글에 대한 회답, 한 권의 책
  • 피타고라스에서는 한 권의 책이 나왔다.
  • 동물에 대하여, 9권의 책
  • 배포의 경우, 8권
  • 배포 선택, 책 한 권
  • 복합 동물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우화의 동물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불임성에 대하여, 한 권의 책
  • 식물에서, 두 권의 책
  • 관상학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의학과 관련된 두 권의 책
  • 유닛에, 책 한 권
  • 폭풍의 예후, 한 권의 책
  • 천문학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광학 관련, 한 권의 책
  • 온 모션, 책 한 권
  • On Music, 한 권의 책
  • 기억력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호메릭 문제 6권
  • 시학, 책 한 권
  • 물리학의 38권
  • 조사된 두 권의 문제집
  • 두 권의 일상적인 지침서
  • 역학, 책 한 권
  • 데모크리토스의 작품에서 따온 문제, 두 권의 책
  • 자석 위에, 책 한 권
  • 아날로그, 책 한 권
  • 기타 노트, 12권
  • 제네라 설명, 14권
  • 클레임 진척, 책 한 권
  • 올림피아에서의 승리자들, 책 한 권
  • 피디아 게임 우승자들, 책 한 권
  • On Music, 한 권의 책
  • 델피에 관하여, 한 권의 책
  • 피디안 우승자 명단 비판, 책 한 권
  • 디오니시아에서의 극적인 승리, 한 권의 책
  • 비극 중, 책 한 권
  • 드라마틱 레코드, 책 한 권
  • 속담, 책 한 권
  • 메스테이블의 법칙, 책 한 권
  • 4대 법학
  • 카테고리, 책 한 권
  • 드 디 디어런티, 한 권의 책
  • 158개 도시 구성,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히 민주적, 과두정치적, 귀족적, 전제주의적
  • 필립에게 보내는 편지
  • 셀리브리아인의 편지
  • 알렉산더에게 보내는 편지, 네 권의 책
  • 안티파이터에게 보내는 편지, 9권
  • 멘토에게, 책 한 권
  • 아리스톤에게, 책 한 권
  • 올림피아스에게, 책 한 권
  • 헤파이스온에게, 한 권의 책
  • 테미스타고라스에게, 한 권의 책
  • 필록세누스에게, 책 한 권
  •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답장으로, 한 권의 책
  • ἁγὲὲ θενββέβββ beginning beginning᾽᾽᾽ (" (" (" (" (" (" ("("Holy One and Chiefest of Gods, far-darting")을 시작하는 구절.
  • 엘렉시아크는 versesα beginningκατ μ μ μ μηςςςς ύα (" ("("정당한 자손을 축복받은 어머니의 딸")을 시작하는 구절이다.

벡커 수

코퍼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대한 참조의 표준 형태인 벡커 번호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is Opera edidit Academy Regia Borussica, 1831–1870)의 완결작 중 프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판에 사용된 페이지 번호에 기초한다. 그들은 그 판의 편집자인 고전적인 언어학자 아우구스트 임마누엘 벡커 (1785–1871)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따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베케르 숫자에 의한 작품

다음 목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대한 참조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는 벡커 번호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작품은 - 베커의 판이 출판된 후 발견된 아테네헌법을 제외하고 - 그리고 단편들을 제외하고 - 나열되어 있다.

제목은 개정 옥스포드 번역이 정한 기준에 따라 주어진다.[8] 아직도 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라틴어 제목도 주어진다.


[*]진위는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취소선일반적으로 가짜라고 동의한다.
벡커
번호를 붙이다
라틴어 이름
논리학
오르가논
1a 분류 범고리아과
16a 해석 시 드 디 디어런티
24a 사전 분석 프리메라 분석
71a 후방 분석 애널리틱카 포레토르카
100a 주제 토피카
164a 소피스트적 반박에 대하여 드 소피리스티스 엘렌키스
물리학 (자연철학)
184a 물리학 물리
268a 하늘에 맹세코 데 카엘로
314a 온 제너레이션 및 부패 드 제너레이션 외 부패
338a 기상학 운석학
391a 온 더 유니버스 드문도
402a 온 더 소울 데 애니마
파르바 내추럴리아 ("작은 물리치료")
436a 센스 앤 센시빌리아 데 센수 외 센시빌리부스
449b On Memory 드 암레비아 외 리멤버시아
453b On Sleep 드 솜노 에 비야티아
458a On Dreams 데 인섬니아
462b 절전 모드에서의 점괘 섬넘당 데 점괘
464b 길이와 짧음
인생의
드 세로딘 외 브레비타이트 비타에
467b 청춘, 노년, 인생
그리고 죽음과 호흡
드 주벤투테 외 세네크테, 드 드 드
비타 엣 모테, 드 호흡
481a 온 숨 드 스피르투
486a 동물의 역사 역사 동물원
639a 동물의 일부 데 파르티버스 아나키움
698a 동물의 움직임 데 모투 애니멀리움
704a 동물의 진화 데 인스펙투 애니멀리움
715a 제너레이션 오브 애니멀스 데 제너레이션 아말리움
791a On Colors 드 컬러리버스
800a 들은 것에 대하여 오디오빌리부스
805a 관상학 관상동물
815a On Plants 드 플란티스
830a 들은 놀라운 일들에 대해 미라빌리부스 아우스컬레이션버스
847a 역학 기계공
859a 문제* 문제성*
968a 분할할 수 없는 선에 드 리니스 인세카빌리부스
973a 상황 및 이름
바람의
벤토룸 시투스
974a 멜리소스, 제노파네스,
그리고 고르기아스
드멜리스소, 크세노판, 고르지아
형이상학
980a 형이상학 은유시카
윤리와 정치
1094a 니코마체 윤리학 에티카 니코마차
1181a 대윤리* 마그나 모랄리아*
1214a 유데미안 윤리학 에티카 유데혈증
1249a 덕행과 악에 대하여 드 베르투티부스와 비티리스 리벨루스
1252a 정치 폴리티카
1343a 경제학* 오이코노미카*
수사학 및 시인학
1354a 수사학 아르스 레토리차
1420a 알렉산더에게 전하는 수사 레토리카 애드 알렉산드럼
1447a 시학 아르스 시티카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에는 벡커 숫자가 부족하다.

아테네의 헌법

1890년 대영박물관이 획득한 파피루스 roll에서 1891년 처음 편집되었기 때문아테네 헌법(그리스어, 아테나이오n 디테니티아어, 라틴어, 아테니엔시움 레스퍼블라)은 벡커 판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표준 참조는 섹션(및 하위섹션) 번호에 의해 이루어진다.

조각

발렌틴 로즈가 편집한 벡커 판 5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잃어버린 작품 중 살아남은 단편들이 수록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벡커 숫자에 의해 인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숫자에 따라 인용된다. 로즈의 아리스토텔레스 단편 초판은 아리스토텔레스 유사문자(1863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로즈는 이 모든 것이 가짜라고 생각했다. The numeration of the fragments in a revised edition by Rose, published in the Teubner series, Aristotelis qui ferebantur librorum fragmenta, Leipzig, 1886, is still commonly used (indicated by R3), although there is a more current edition with a different numeration by Olof Gigon (published in 1987 as a new vol. 3 in Walter de Gruyter's reprint of 베케르 판)과 에카르트 슈트럼프의 새로운 드 그루터 판이 준비 중이다.Gruyter판)이 준비 중이다.[9]

영어 번역의 파편을 선택하려면 W. D. Ross, Select Fragments (Oxford 1952년) 및 Jonathan Barnes (ed.), The Complete Works of A리스토텔레스: 수정 옥스포드 번역, 제2권, 프린스턴 1984, 페이지 2384–2465. 허친슨과 존슨(2015)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트렉틱투스 단편들에 대한 새로운 번역이 존재한다.[10]

단편적으로만 살아남은 작품으로는 On 철학(On the Good), Eudemus(On the Soul), On Justice(On Justice), On Good Birth(On Good Birth) 등이 있다. 가상의 작품인 온 아이디어아프로디시아스의 알렉산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대한 논평에서 인용한 인용구로 살아남는다. 대화 내용은 리처드 루돌프 왈저, 아리스토텔리스 디오보룸 파편, usum strainum(Florence 1934년) 및 레나토 로렌티(Renato Laurenti, Aristotele: I frammenti dei dialoghi (2권), 나폴리: 1987년 루이지 로프레도

저자의 역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Diogenes Laertius)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성기에 있는 라이스움 도서관은 많은 종류의 책들을 구성했다:그들의 이름으로 원로들이 저술한 작품들, 원로들과 젊은이들이 저술한 작품들, 불확실한 서명들, 연구 주제에 대해 다른 작가들이 쓴 작품 사본들, 불특정 형식의 연구 결과들. 이 같은 도서관은 테오프라스토스 아래 계속되어,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이상 기고자가 아니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같은 유형의 더 많은 작품을 획득하고 있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죽음으로, 우리는 도서관이 네레우스에게 안전하게 가려져 200년 동안 사라진다고 믿게 된다. 갑자기 그것이 다시 나타나듯이, 세 명의 편집자와 한 강력한 귀족의 보살핌을 받고, 안드로니쿠스에 의해 새로운 리커션으로 출판되고, 벡커 페이지로서 바로 오늘 우리에게 내려온다. 역설은 내려가는 후퇴가 아테네의 도서관과 거의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가짜로 판명된 작품의 포함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가 특별히 저술한 책만을 포함하고 있다. 테오프라스토스나 다른 사람의 작품도 없고 다른 모든 책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구조된 도서관이 구조가 필요한 도서관이 될 수는 없다.[topic note 1]

리슘의 연구

최근 아테네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발견은 리슘이라는 공원이 있었고 그 기초 중 하나가 직사각형 도서관 모양에 맞는다는 것을 증명했다.[11] 그리스 정부에 따르면, 그 장소는 사실 여전히 공원(또는 정원)이었으며, 그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의 출처를 조사한 결과, 소유, 임대, 점유 등 법적 지위와 관계없이, 그 곳에 '친구들'(필로이)과 설립을 '친구들의 학교'(지부)라고 불렀던 조직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2] 이것은 그 자신의 이름, 즉 내명이었다. 학교 소속의 관계가 "완전히 비공식적"이라는 뜻이었다. 페리파테티코이(Peripatetikoi)라는 이름은 익명으로, 산책로에 거주했던 사람들, 또는 페리파토이(Peripatoi)가 있다.[13]

그 친구들은 "협동적인"(코이노니아)에서 살았다.[14] 그들은 함께 식사를 했고 도서관과 박물관을 포함한 시설을 함께 책임졌다. 그들은 아무도 지불하지 않았고 누구에게서도 급여를 받지 않았다. 설립비용은 부유한 후원자들이 부담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이 친구였던 시절에는 재정적인 걱정이 없었다. 이러한 모든 비공식적인 일들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젊은 남자"(네아니스코이)나 "어른들"(프레부테로이)로 간주되었다.[15]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지위에서 시작하여 영국 학자들에 의해 "학교의 약탈자"라고 묘사되었다.[topic note 2] 이 규칙은 학교의 일상적인 운영은 포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돌보기 위해 해상 시계와 동등한 것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즉, 10일마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아치원 "주임"을 임명했다.

친구들의 사업은 단지 현존하는 지식의 교육이 아니었다. 물리학의 처음 몇 단락에서 표현되듯이, 그들은 그리스 교육에서 완전히 새로운 목표였던 지식의 원리, 즉 요소를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 연구는 구체적인 「분야」(메토도이)로 나뉜다. 먼저 그들은 현존하는 지식을 대표하는 저술 작품을 수집했다. 이어 면접과 표본추출을 통해 현장자료를 수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장 노동자들을 파견하고, 그들을 군사 원정과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과학자다. 알렉산더가 학교의 친구로서 민족적, 정치적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확실히 새로운 다문화 세계 제국을 만드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에서 가장 큰 가치가 있었다. 그의 군대는 군사 역사학 부대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군대였다. 그는 수천 명의 병사를 군무 외에 견본 채취 임무를 맡겼다고 한다.[16]

연구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는 모든 정보를 분석하여 "원소"(스토이시아), "원인"(아이티아), "제1원칙"(아카이)의 "과학적 지식"(episteme)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말뭉치에서 살아남은 새로운 형태의 문서로 쓰여졌다.[17]: 3 이전의 관점에 대한 간략한 조사를 시작으로, 기하학적 표현과 유사한 스타일로 정의와 결론에 착수했다. 그리고 나서 그 서류들은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그들의 저술가, 분석가, 기고자, 기고자, 그들이 추천되었는지, 혹은 교정되었는지, 그리고 누구에 의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는 이러한 것들을 "노트북"(하이폼네마타)이라고 부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비범한 숫자"를 썼다고 말했다.

도서관의 문제

협동조합에서 사립으로 전환

스트라보에 따르면 [18]리셉의 친구 코리스쿠스의 아들인 느레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테오프라스토스의 도서관(비블리오테케)을 상속했다"[19]고 말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서관을 학교와 함께 유산으로 받았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스트라보가 아는 한 최초의 책 수집가였다. 분명 원로들은 자기들만의 도서관을 소유하고 있었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의 주요 문제점은 첫째, 아리스토텔레스 휘하의 저명한 철학자들삶과 의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의지가 믿을 수 있게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도서관에 관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더구나 아테네의 메티티나 외국인 거주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베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도서관을 가지고 학교를 소유하거나 법적인 절차에 의해 아무에게도 맡길 수 없었을 것이다.[20] 설령 메티티(meticatie)가 아니더라도 시유재산인 토지와 건물을 처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topic note 3] 다른 친구들도 역시 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날에 발효된 법률에 따르면, 그 누구도 그 학교를 누구에게도 소유하거나 유배할 수 없었다. 그 도시는 그것을 소유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가 자신의 개인 도서관을 추가로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첫째, 개인 소유는 학교의 정신에 있지 않았고 둘째, 테오프라스토스 이후의 학교의 운명은 그 도서관이 사실상 학교 도서관이었음을 시사한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인들에게 짧은 반란을 일으켰다. 학교로 시선을 돌린 그들은 사형을 면하기 위해 망명길에 오른 아리스토텔레스를 뒤쫓았다. 그는 유배 중에 죽었다. 몇 년 안에 아테네는 다시 카산더가 지배하는 마케도니아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테네의 새로운 부영지인 팔레룸의 데메트리오스의 권위를 받으며 학교로 돌아왔는데, 그 학교의 친구로 테오프라스토스의 전 학생이었다. 학교는 전보다 훨씬 더 커졌지만, 데메트리오스는 행정부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D.L은 오직 테오프라스토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은 후 친구인 팔레룸의 데메트리오스의 개입으로 자신의 정원의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고만 말한다. 분명히 D.L은 그의 출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의미는 "그의 친구"가 아니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호의가 아니었다. "친구"는 그 학교의 동료다. 정원이 두 개도 없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자신의 재산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광범위한 유언장에는 정원을 포함한 자신의 재산으로서의 학교의 재산 처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그 친구들의 이름을 짓고 그들이 그 소유권이 공동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기를 원한다. 데메트리오스는 단순히 마스터가 학교와 그 자산을 소유하도록 하는 다른 학교들에 만연한 법률적 관례를 제정했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유언에 담긴 바로 그 재산의 처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코이노니아를 회복하려는 시도다.[21] 정원, 산책로, 그리고 정원 주변의 건물들은 그들이 문학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재산을 사용한다면, 공통적으로 열 명의 지명된 친구들을 찾아가도록 되어 있다.[topic note 4] 이것은 임시 소유권이다. 만약 그 조항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재산은 법에 의해 누군가, 아마도 학교의 소유주 또는 소유주에게 돌아가야 한다. 소유주로서의 테오프라스토스의 총 재산은 훨씬 더 컸다. 에레수스의 가족 소유지와 스태지라의 아리스토텔레스 재산은 개별적인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히파르쿠스가 관리하는 신탁자금도 소유하고 있었다. 후자는 박물관과 다른 건물들을 재건하는데 그것들을 사용하기 위해 결합되었다. 그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자신의 소유물에도 노예가 있었다. 그들은 석방되거나 친구들에게 주어졌다. 그에게는 자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그 건물을 유지한 4년 동안 더 많은 보상을 해 주었다.

넬레우스의 도서관의 부재

유언장에는 다소 특이한 유산이 하나 더 들어 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이든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의 것이든, 아니면 모든 친구들의 것이든 코퍼스의 본질과 관계가 있다. 저자의 문제, 혹은 오히려 그 부족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 없다. 그 주제에 관한 고대 자료들은 일관성이 없다. 일반적인 학문적 합의도 없고 합의된 증거의 우위도 없다.

그 유언은 "내가 넬레우스에게 주는 나의 도서관 전체" 번역에 관련된다. 학교의 핵심은 모든 연구 결과와 분석 논문(노트북)을 수록한 도서관이었다. 그것 없이는 친구들은 학교가 알려진 주제에 대해 현재 혹은 의미 있는 강의를 만들 수 없었다. 다른 모든 학교 재산은 공통적으로 친구들에게 재분배되고 있었다(외국인 소유자는 아마도 그들의 관리를 위해, 노예와 미성년자는 개별적인 보호자를 받은 것을 제외한다). 그러나 그 없이는 그 학교의 심장은 아날로인 공유재산이 될 수 없었다.우리는 그 상황에 대해 접근한다. 어떤 설명도 고대의 출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온건파들은 거의 보편적으로 한 가지 설명을 되찾는데, 비록 이상하게도 그 설명이 어디에서도 제시되지 않았지만, 네레우스가 대대의 의도된 후계자였다는 것이다. 그 법은 여전히 학교에 대한 재산권을 가진 보호자를 필요로 했다.[22]

묵시적인 기대가 무엇이든, 네레우스는 스콜피아가 되지 않았다. 대신 램파쿠스의 스트라토는 그렇게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그 자리를 어떻게 혹은 왜 얻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나 그에 대한 네레우스의 감정에 대한 어떤 진술도 추측을 불러 일으키지 않고 있다.[topic note 5] 그리고 나서 스트라보는 보편적으로 학교에 대한 향수 행위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도서관이 공동 재산으로 공유될 것이라는 양해 하에 도서관을 받았다. 그 대신 "네레우스는 그것을 스켈피스로 가져다가 그의 후계자들에게 유산으로 바쳤다, 책을 가둔 일반인들은 ...." 그 결과 스트라보에 의하면 학교는 "... 소수의 ...만을 제외하고는 전혀 책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그저 평범한 명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할 뿐이다...」 상세한 내용이나 동기는 제시되지 않는다. 추측이 난무하다.[topic note 6] 모든 작가는 할 말이 있고, 판단력도 있다.[topic note 7] 이 향수가 없었다면 오늘날 알려진 바와 같이 말뭉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의식하고 있다.

스트라보의 일화는 넬레우스가 책을 처분한 것에 대한 유일한 고대의 권위자가 아니다. 나우크라티스의 아테나이우스는 의 작품인 디프노소피스타에서 손님들이 과거의 유명한 문학상 (700명 이상의) 인물인 연회 시리즈를 상상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이 함께 메뉴와 궤변의 스니펫을 제공받도록 하여 주인공인 로랑티우스("로렌스")를 소유한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고대 그리스 서적의 도서관은 ...와 같은 소장품에 뛰어난 모든 사람을 능가한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사서인 Nelius는, 필라델피아스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의 시골 사람 Ptelmusus가 그것들을 모두 사서 아테네와 로도스에서 수집한 모든 것과 함께 자신의 아름다운 알렉산드리아로 운반했다고 말한다.[23]

논리 규칙(아리스토틀의 바로 그 규칙)에 따르면, 두 가지 회계 모두 법정 증언에 대한 미국의 법 원칙이 요구하는 대로 "진실, 전체 진실, 오직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쉬운 해결책은 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고, 많은 작가들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남은 해법은 이 두 가지를 부분적으로 참으로 받아들여 알렉산드리아 전통과 스케시안 전통의 차이점에 대한 예측적 설명을 위한 기회의 창을 만드는 것이다.

텍스트의 이중 전통

모호한 이름, 코퍼스 아리스토텔레스텔레스

온건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체"를 뜻하는 뉴 라틴어코퍼스 아리스토텔레스체인데, 벡커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프러시아 아카데미는 1831년판을 아리스토텔레스 그라이스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는데,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아리스텔레스)가 주범이다. 대부분의 라틴어 및 뉴 라틴어 책 제목에서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오페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과 같은 일반적 사례에 속한다. 개별 작품들은 벡커에 의해 그렇게 이름 지어지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도 말뭉치의 종류는 아니다.

19세기 후반 겔러, 윈델밴드 등 독일 철학사학자들의 노트에 말뭉치 구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24]: 40 암시적으로 그들은 벡커를 의미했지만, 그들이 새로운 원고를 썼을 때에도 베커는 전혀 모르는 이집트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굴되고 있었다. 적어도 몇 천년 동안 다른 누구라도: 아테네의 헌법([topic note 8]아리스토틀. 기원전 330년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이 쓴 158개의 정치학 중 하나로 확인되었다. 그것은 "노트북"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추상적인 논문이 아니라 기간과 날짜를 기재한 역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벡커에 근거한 말뭉치에 대한 아이디어에 그것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거절했다. 그 날짜는 꽤 오래된 것으로, 대다수의 관점은 알렉산드리아 증명서로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것은 그곳의 도서관과 학교에서 나온 유일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예다.[topic note 9]

베케리안 말뭉치와 같은 신빙성을 지닌 아테네 헌법의 수용은 말뭉치의 의미에 일정한 애매함을 부여한다. 만약 벡커에 있는 작품들만이 되려면, 마치 벡커에 있는 작품들이 어떤 작품보다 진실한 것처럼 "원래 말뭉치"와 같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구절들이 가능하다. 벡커에 있는 작품들 조차도 의심할 여지 없이 진품이다.

다음 논리적 단계는 용어의 정의를 수정하여 라틴어 말뭉치가 아니라 일부 특수 용어로 사용되도록 시도하는 것이다.

코퍼스 아리스토텔리쿠스는 중세 원고전송을 통해 고대로부터 살아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들에 대한 언급은 임마누엘 벡커의 19세기 왕립 프러시아 아카데미 판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작품들의 고대 분류에 기초하고 있다.[25]

이 구절은 베커의 수집을 의미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있지만, 아리스토텔리카를 추가로 의미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으로 번역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모든 조각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귀속된 모든 작품들을 의미해야 한다. 조지 그롯이 말했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캐논을 구성하려고 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어떤 작품도 구성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다르다. 우리는 그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하고, 동시에 증거의 문제가 더 결함이 있고, 더 불확실하고, 더 모순된다는 것을 발견한다.[26]: 27

"카논"이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베를린 판"을 의미했다. 그는 어떤 아리스토텔레스 기업에도 전혀 결백하다. 말뭉치 대신 '캐논'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지금 그런 의미는 벡커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의 번역적 해결책은 "Bekker pages"에서처럼 Bekker의 이름을 짓는 것이다. 권위자로서 벡커의 이러한 격상은 그 이름을 둘러싼 확신의 아우라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원천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Bekker 앞의 종이 흔적

확인될 수 있는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진품을 모두 인쇄하기로 결심한 벡커는 풍성한 종이 자국을 뒤돌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topic note 10] 그는 도서관의 이름과 접속 번호로 일상적으로 식별되는 102개의 필사본(MSS)에서 발견된 원고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 책에 사용하기 위해 그는 MS에게 각각 문자 코드를 주었다. 이것들은 각주에 나타난다. 이 판본의 앞면 자료에는 MSS 목록이 포함되어 있다. 로마의 바티칸 도서관, 베네치아에 있는 비블리오테카 마르시아나, 국립 비블리오테프랑스(구 파리 왕립 도서관), 비엔나에 있는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 등 그의 도서관이 비교적 적다. 전형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많은 작품을 출판하는 유명한 MSS에 포함되어 있다.[27]

벡커는 가능한 모든 MSS를 찾지는 않았다. MSS의 수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활자스크류 프레스를 결합한 요하네스 구텐베르그의 인쇄 프레스 ca. 1440이 발명되기 전에는 카피스트에 의해 책 복제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그것을 떠맡을 여유가 있는 기관에서는 어디서나 계속되었다.

15세기에 MSS가 책으로 대체되면서 복사 속도가 느려졌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일부 MSS 제작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도 집필 서적 형태로 계속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MSS는 그들이 있는 곳에 남겨졌다. 벡커 이후, 이전에 고려되지 않았던 많은 MSS가 나타났다. 그들의 출판은 진행 중이다.[topic note 11] 그들에 근거하여, 가짜로 여겨지는 작품들은 현재 진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배심원단은 항상 외출하고 있지 않다.

사본의 기일은 기한을 정하여 기한을 정하여 구한다. 대부분의 아리스토텔레스 MSS는 수세기 동안 유럽의 여러 각본에서 13-15년 사이에 베껴졌다. 텍스트의 순서는 리센션으로, 다양한 위치에 있는 많은 복사본에 의해 유도될 수 있다. 리시브란 단순히 텍스트가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특정 오류 집합(오류, 오자 또는 변형 텍스트)과 같은 모든 특유한 것이다. 유사점이나 차이점은 각각 대문자로 지정된 MSS의 가족을 정의하는 비교 방법에 의해 계통의 재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가족도 역시 후퇴다. 그것의 첫 번째 멤버는 원래 멤버다. 일반적으로 지금은 원본을 구할 수 없지만, 그 존재와 날짜는 다른 유형의 역사 및 텍스트 증거로부터 추정될 수 있다.

변칙적인 고고학적 발견을 제외한 모든 MSS는 가장 최근에 1000년 이후로 베꼈다. 역사적으로나 내부적인 단서들은 1000년 전의 지난 3세기 동안의 기원들과 비잔틴 제국의 영토, 즉 동로마제국 하에서 있었던 그리스어 사용 세계를 가리킨다. 십자군들은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힘을 꺾어 사라센들 앞에 무력하게 남겨두었는데, 이 경우 오스만 투르크인이 된 중앙아시아 평원의 터키어 연사들이었다. 그들은 곧 아나톨리아를 식민지로 만들어 그곳의 도시 중심지를 점령하고 그리스로 탈출한 그리스어 사용자들을 대체했다. 그리스 MSS를 베끼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후세에 전승해야 할 임무는 유럽으로 넘어갔다. (오늘날 터키인들은 고대유물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또 다른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 등 초기 열성적인 고대 유물 파괴 후 남쪽으로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라센들은 일찍이 아나톨리아의 로마 정복자들을 사로잡았던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와 같은 마법에 물든 것 같았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랍어로 번역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일한 원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으로 쓴 MSS는 1천년기 전반부터 빠져 있다. 옥시린쿠스파피리 빌라의 현장은 말뭉치 전통 밖에서 파편이 발견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한편 코멘터리, 즉 말뭉치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그 공백을 메우는 인용문과 패러프레이즈를 공급한다.레마타, 즉 발췌한 은 말뭉치에 너무 가까워서 베커 숫자를 배정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말뭉치가 로마 제국 초기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좋은 증거다. 말뭉치는 일반적으로 로마 공화국 후기에 기원전 1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로도스의 안드로니쿠스의 단일 후퇴에 기인한다. 안드로니쿠스 작품의 진단은 본문을 논문으로 나눈 것과 일부 논문의 이름, 논문의 순서와 그룹화다. 그 진단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작품도 즉시 "비논리적"이거나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의심된다. 즉, 말뭉치의 것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것도 아니다(맞거나 틀리다).

아펠리콘의 후퇴

스트라보가 쓴 이야기에서, 네레우스가 스켈피스에게 보낸 책들을 -- 대낮에 수 천명의 마차들과 배들의 함대에 있는, 아테네나 스켈피스의 관리들의 이의나 통지 없이 -- 역사는 그가 그 책들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더 이상 그를 알지 못한다. 분명히 그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이 통로를 받아들이려면 친척들이 유언으로 받은 재산 처분(장부)을 받은 직후 그가 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