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아내 “유방암” 듣자마자…의사 남편이 바로 찾은 ‘길’

  • 카드 발행 일시2025.03.13

호모 트레커스

호모 트레커스를 내 관심에도 추가해드렸어요.

항암 치료 후 새로 난 머리를 잘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머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짧게 자르고만 있죠. 샴푸도 화학처리를 안 한 것으로 1주일에 한 번만 하고, 다른 날은 물로만 감아요.

지난 1일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469m) 둘레길 4코스 중간 궁내정 쉼터.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이유경(59) 순천향대 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가 말했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던 그는 40대 초반에 유방암에 걸렸다. 수술과 항암 치료 후 완치 판정을 받고 나서 일상이 달라졌다. 먼저 오랜 세월 자신을 지배하던 식탐을 떨쳐냈다. 암에 걸리기 전 그는 늘 오늘은 뭘 먹을까를 떠올렸다고 한다. “한 끼를 부실하게 먹는다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스타일 있잖아요.” 이젠 걷기가 우선이다. 그렇다고 맛집을 아주 끊은 건 아니다.

“오늘은 어디를 걷고 맛있는 걸 먹을까 생각하죠. 시장을 갈 때도 아파트 화단 사이를 지나 걷는 게 좋아요. 병원에서도 점심 이후엔 근처 중앙공원을 돌아 들어가죠. 하루 정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길 땐, 집 앞 수리산 봉우리를 하나씩 넘기도 해요. 조용히 산길을 걷고 있을 때 해방감 같은 게 느껴져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 속도에 맞춰 걷고, 혼자 걸으면서 명상하고. (암에 걸리기 전) 내가 이렇게 하루 5시간 이상 산을 걸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지난 1일 경기도 군포 수리산 4코스를 걷고 난 후 휴식을 취하는 김진국(왼쪽)·이유경 부부. 김영주 기자

지난 1일 경기도 군포 수리산 4코스를 걷고 난 후 휴식을 취하는 김진국(왼쪽)·이유경 부부. 김영주 기자

식탐하는 의사에서 걷기예찬 의사가 되기까지 같은 병원(신장내과)에 근무하는 남편 김진국 교수의 도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