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콜포

William Colepaugh
윌리엄 콜포
William-colepaugh.jpg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로 망명
태어난(1918-03-25)1918년 3월 25일
죽은2005년 3월 16일 (2005-03-16) (86세)
직업유능한 선원, 비밀 요원
배우자돌로레스 캄페티
상위 항목윌리엄 C.와 하벨 G. (슈미트) 콜포

윌리엄 커티스 콜포(William Curtis Colepaugh, 1918년 3월 25일 - 2005년 3월 16일)는 1943년 미 해군 예비군에서 제대한 후 1944년 나치 독일로 망명했던 미국인이다. 리스본에서 멈춰선 송환선에 타고 있던 승무원이 독일 영사관에서 망명하는 동안 콜포우는 독일 영사관에 머물렀다.[1] 콜포우는 뉴저지주 파인 비치에 있는 파라거트 제독 아카데미에 다녔었다.[2]

비밀 요원

콜포우는 독일인이 점령한 헤이그에 있는 첩보학교에서 광범위한 총기스파이 훈련을 받았다. 그는 사실상 독일어를 하지 않았다.[2] 독일 요원 에리히 김펠과 함께 U-1230에 의해 미국으로 이송되어 1944년 11월 29일 메인핸콕 포인트에 착륙했다. 그들의 임무인 '엘스터 작전("Magpie")은 연합군의 전쟁 노력에 대한 기술적 정보를 수집하여 그들이 만들 것으로 기대되는 라디오를 이용하여 독일로 그것을 다시 전송하는 것이었다.

콜포와 김펠은 함께 보스턴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갔다. 곧, 콜포우는 그들이 가져온 화폐 중 4만 8천 달러를 가져갔고 지역 여성들과 함께 파티를 하고 흥겹게 한 달을 보냈다.[2] 한 달도 안 돼 1500달러를 쓴 콜포우는 오랜 학교 친구를 찾아가 면책특권을 바라며 FBI에 자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2] FBI는 이미 메인 해안선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U보트가 근처에 있었다는 의미)에서 캐나다 선박이 침몰한 사건과 현지 주민들의 의심스러운 목격담에 대한 보고에 이어 두 명의 독일 요원을 수색하고 있었다. FBI는 콜포우를 심문했고, 그로 인해 그들은 김펠을 추적할 수 있었다.

붙잡힌 뒤 법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미군 당국에 넘겨졌다. 1945년 2월, 그들음모제82조 전쟁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군사위원회 앞에 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선고받았지만, 이것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김펠은 1955년에 가석방되었고 [3]콜포우는 1960년에 가석방되었다.

지난 해

출소 후 콜포우는 필라델피아 인근 펜실베이니아 프로이센의 킹으로 옮겨 인쇄소에서 일했다. 이후 감옥에서 자신이 배운 사물함, 책상, 기타 금속 사무용품을 판매하는 소매업을 소유하고 운영했다. 결혼하여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였고, 보이 스카우트에서 자원봉사를 하여 로터리 회원이 되었다.[2] 그는 2005년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4]

김펠과 콜포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도착한 마지막 독일 스파이로 추정된다.[2]

참고 항목

참조

  1. ^ DAVID KAHN (14 July 2000). Hitler's Spies: German Military Intelligence In World War II. Perseus Books Group. pp. 24–. ISBN 978-0-306-80949-1.
  2. ^ a b c d e f Willing, Richard (February 27, 2002). "The Nazi spy next door". USA Today. Retrieved March 11, 2011.
  3. ^ 김펠, 에리히 요원 146; 미국의 나치 스파이에 대한 실화. 2002년 성 마틴의 출판사; 1957년 "스파이온 퓌르 도이칠란트"의 재판사. 165쪽. ISBN 0-312-30797-7
  4. ^ 밀러, 로버트 A. 미국 나치 스파이의 실화: 윌리엄 커티스 콜포. 트래포드 출판사, 2013년 228쪽 313쪽 ISBN 1-466-98219-5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