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번즈 (장관, 1796년 태어남
Thomas Burns (minister, born 1796)토마스 번즈(1796년 – 1871년 1월 23일)[1]는 뉴질랜드 오타고 지방의 저명한 초기 유럽 정착민이자 종교 지도자였다.
초년기
번즈는 1796년 4월 스코틀랜드 에어셔 주 모클라인에서 시인 로버트 번즈의 동생이었던 길버트 번즈의 아들로 세례를 받았다. 어린 시절에 토마스는 해딩턴 문법학교를 거쳐 에든버러 대학을 다녔고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26년 발랑트래의 교구 장관으로 서품되었고, 1830년 에든버러 주재 성공회 목사의 딸 클레멘티나 그랜트와 결혼했다. 이 부부는 클레멘티나의 삼촌이 장로교 목사로 있던 몽크톤에 살았다.[2]
두네딘으로 이동
47세의 나이에 번즈는 스코틀랜드 교회로부터 자유 교회 분리 운동에 참여하였다. 뉴질랜드의 자유교회 정착을 위한 제안은 번즈의 관심을 얻었고, 그는 1843년 6월 뉴에든버러 계획(오타고 계획보다 늦음)의 장관직을 제의받았다. 번즈와 윌리엄 카길은 1845년 5월 정착촌을 홍보하기 위해 평신도회를 설립했다.[2]
1847년 11월 27일, 번즈와 239명의 정착민들은 그리녹에서 필립 랭을 타고 항해했다. 그 중 그의 아내, 다섯 딸, 그리고 한 아들 아서 존 번즈가 있었다. 그들은 1848년 4월 15일 두네딘의 새로운 정착지에 도착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농사 기술을 알고 자랐으며, 아버지가 에어셔에 살던 집을 따서 그랜트 브레이라고 이름 붙인 오타고 하버의 안데르손스 만에 농장을 세웠다.[3]
그는 새 정착 초기에는 엄격하지만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확고하고 독실한 교회 신자인 번즈는 새로운 정착지의 초석으로 강력한 장로교 교회를 만들었다. 1866년 오타고와 남랜드의 시노드(Synod of Otago and Southland) 설치를 주재하였고, 두네딘, 클루샤, 남랜드의 장로(長老)를 세웠다. 교육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그는 1860년대 동안 오타고 남자 고등학교와 오타고 여자 고등학교 설립을 도왔고, 1869년부터 1871년 1월 23일 사망할 때까지 초대 총리로 재직했던 오타고 대학교의 창립 위원회에서 활동했다.[4][5]
죽음
그는 두네딘 남부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그의 아내 클레멘티나는 7년 동안 그를 살아남았다.[2]
참조
- ^ 리드, A. H. (1956) 얼리 두네딘. 웰링턴 : A.H. & A.W. 리드.
- ^ Jump up to: a b c Brooking, Tom. "Burns, Thomas". Dictionary of New Zealand Biography. Ministry for Culture and Heritage. Retrieved 19 April 2014.
- ^ West, Jonathan (Jonathan Lewis) (March 2018). The face of nature : an environmental history of the Otago Peninsula. Dunedin, New Zealand. p. 168. ISBN 978-1927322383. OCLC 994517936.
- ^ King, Michael (2003). Penguin History of New Zealand. p. 209. ISBN 0-14-301867-1.
- ^ 모렐, W.P. (1969년) 오타고 대학: 100년 역사. 더네딘: 오타고 대학 출판부, 페이지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