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 두마이 익스프레스 침몰 10

Sinking of MV Dumai Express 10
MV 두마이 익스프레스 침몰 10
MV Dumai Express 15.jpg
MV 두마이 익스프레스 15, 사고 선박으로 자매선적
날짜2009년 11월 22일; 12년(2009-11-22)
시간09:28 - 09:55(UTC+7)
위치인도네시아 리아우 제도 카리문 리젠시 이유 케실 해안가
원인
  • 갑판에 다량의 물이 존재하게 하는 상부구조물의 구조적 결함
결과
  • 리아우 제도 카리문 부근에서 침몰
  • 254명의 생존자 발견
  • 42구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 33명 실종 및 추정 사망
죽음42 확정
실종33 (1998년 사망)

두마이 익스프레스 10호 침몰 사건은 2009년 11월 22일 오전 리아우 제도 카리문 리젠시 이유 케실섬 인근에서 30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악천후로 침몰하면서 발생했다. 목격자들은 거대한 파도가 여객선에 반복적으로 부딪혀 배의 우현 쪽이 갈라졌다고 보고했다. 뒤이어 갑판으로 상당한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오전 9시 55분이 되자 여객선은 완전히 물에 잠겼다.[1][2]

수색 구조 요원들이 그 지역에 배치되었다. 250명 이상의 생존자가 발견되었다. 그 후 며칠 동안 42구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33구의 시신이 여전히 실종되었다. 실종자로 등재된 이들은 이번 사고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고는 2009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두 번째 대형 여객선 참사다. 앞서 서술라웨시 마제네에서는 악천후 속에 300여 명을 태운 여객선이 전복돼 300여 명이 참사로 숨졌다.[3]

사고는 교통안전위원회에서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상층부의 여객선 앞벽이 파도의 위력을 상쇄할 만큼 튼튼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도는 여객선에 반복적으로 부딪혔고, 그 결과 전면 벽이 손상되었다. 파도에 금이 가면서 물이 간신히 본갑판으로 들어왔다. 파도는 여객선에 반복적으로 부딪혔고, 결국 갑판이 침수되었다. 갑판이 물에 잠기면서 여객선은 뜨는 능력을 상실했다.[3]

싱킹

두마이 익스프레스 10호카리문 리젠시에서 경유하여 리아우 바탐시에서 두마이까지 정기 여객선을 운항했다. 일일 서비스였고 여행은 보통 7~8시간 정도 걸렸다. 그 여객선은 3개의 갑판과 최소 250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수용했다. 2009년 11월 22일, 현지시간 08시 5분(UTC+7)에 여객선은 승객과 승무원 329명을 태우고 세쿠팡 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했다. 당시의 날씨는 여전히 양호한 상태였다.[3]

여객선은 26노트의 속도로 순항하고 있었다. 이후 페리호는 현지시간 8시 23분 카랑반텡(Karang Banteng)이라는 지역에 도착했고, 선장은 그 후 페리호의 헤딩을 변경했다. 08시 44분, 여객선은 니파섬에 도착했다. 몇 분 뒤 니파섬을 지나자 날씨가 나빠지고 파도가 높아져 약 2.5~4m로 추정된다. 풍속이 22노트에 달했다. 나룻배 주인은 선장에게 두마이로 계속 가라고 말했다.[3]

현지 시각 09시 28분 거대한 파도가 여객선을 쾅쾅 내리치자 선원들은 다리 근처에서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승무원은 선장으로부터 소리의 기원을 확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승무원들은 앞벽에 균열이 생겼고 물이 승객 구역으로 밀려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이를 알아차린 승객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선장에게 관찰력을 높였다. 그러자 선장은 뱃머리를 바꿔 이유 케실 섬으로 페리를 돌렸다.[3]

거대한 파도가 앞쪽에서 반복적으로 여객선을 덮쳐 여객선 구역으로 많은 양의 물이 들어왔다. 에어컨 샤프트에서 물이 갑판으로 들어왔다. 물이 많아 배가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미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선장은 여객선을 세우기로 하고 승객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여객선이 더 가라앉자 벽에 난 균열이 터지고 곧바로 다량의 물이 승객 구역으로 돌진해 들어갔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나왔다.[3]

여객선에는 주로 메인 데크(주여객 구역), 하부 데크, 상부 데크(VIP 구역) 등 3개의 데크가 있었다. 처음에는 물이 메인 데크를 범람시켰지만, 나중에는 하부 데크도 범람시킬 수 있었다. 당황한 승객들이 문으로 달려들면서 엄청난 빌드업을 일으켰다. 이 증축으로 여객선 상장이 악화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뱃머리 침몰로 인양된 여객선 선미(뒷면)로 달려갔다. 여객선이 심하게 나열되자 많은 사람들이 기어서 좌석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아래 갑판 앞쪽에 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목록 각도와 많은 양의 물로 인해 탈출하지 못했다. 몇 명의 아이들이 공황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손을 놓았었다. 몇몇 승객들은 탈출하기 위해 옆 창문을 부수었고 다른 승객들은 선원들이 구명보트에 바람을 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물에 뛰어들었다. 악천후로 대피하는 데 큰 지장을 [3]초래했다

09시 55분 두마이 익스프레스 10호가 완전히 물에 잠겨 침몰했다.[3]

수색구조

현지시간 10시 30분쯤 관계자들의 첫 신고가 접수됐다. 인도네시아 국가수색구조청은 즉각 경비함정 5척을 이 지역에 배치했다.[4] 여객선을 비롯한 어선들이 구조작업에 동참했고 180명의 생존자가 구조대에 의해 1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시에도 59명이 여전히 실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4] 그 지역의 악천후로 인해 대피가 더뎠다.[5] 두마이에 위기 센터가 설치되었다.[6] 11월 22일 저녁, 18구의 시신이 바다에서 수습되었다. 시신 중에는 영아 2명도 포함돼 있었다. 261호는 바다에서 구조될 수 있었다.[7] 11월 22일 현재, 사망자 수는 22명이다.[8]

11월 23일 인도네시아 국립수색구조국은 30명이 사망하고[9] 수십명이 실종되었다고 보고했다.[10] 전사자 중에는 PT의 수장이기도 한 여객선 사장 보웅이 있었다. 페리를 운영한 회사인 레스타리 인도마스 바하리.[11] 승객들은 그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가 도움을 청하던 승객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주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12] 카리문의 중앙 위기 센터는 수백 개의 시체 가방을 준비했었다. 카리문 리젠시 누르딘 바시룬 섭정관의 집은 생존자들의 임시 거처이자 위기 센터로 사용되었으며,[9] 군함 3척 등 14척의 함정과 헬기가 현지에 파견되었다.[13] 그러나 이 지역의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은 상태였다. 거대한 파도가 수색과 구조 작업을 방해했다. 수색구조선의 프로펠러가 이 지역에서 높은 파도에 부딪혀 파손됐다.[14] 관리들은 카리문 지역 병원과 카리문 항구에서 시신 봉지 몇 개가 추가로 회수되었다고 말했다.[13] 생존자 수는 255명으로 수정되었다.[12] 한 구의 시신은 리아우로 송환되었다.[15]

11월 25일, 관계자들은 4척의 군함을 포함한 21척의 선박을 이 지역에 배치했다. 인도네시아 해군인도네시아 세관은 수색 및 구조 작업에 동참했다. 수색과 구조작업은 여전히 거친 파도로 인해 방해를 받았으며,[16] 14구의 시신이 두마이로 송환되고 105명의 생존자가 바탐으로 송환되었다.[17] 관계자들은 5구의 시신이 바다에서 수습되었다고 말했다.[3]

11월 28일 인도네시아 국립수색구조청에 의해 수색 및 구조작업이 중단되었다.[18] 관계자들은 수술 중 40구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35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말했다.[3]

인양

수색구조작업이 중단되자 실종자 친지들은 관계자들에게 구조작업을 재개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실종자 대부분이 안에 갇힌 것으로 보고 구조대원들에게 침몰한 여객선의 잔해를 찾고 더 많은 시신을 수색해 줄 것을 요청했다.[18] 그 후 구조대원들은 잔해 위치를 찾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 지역에는 음파 탐지기를 장착한 비행기와 배들이 배치되었다.[3]

현지 시각으로 12월 2일 16시, 페리 잔해는 인도네시아 군함 KRI Pulau Romang에 의해 위치되었다.[19] 잔해는 수심 40m로 침몰 지점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었다.[20] 잠수부들이 그 지역으로 보내졌다. 그들은 그 잔해에서 두 구의 시신을 가까스로 더 회수해, 사망자 수가 42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33명은 여전히 행방불명이었다. 희생자들의 친척 몇 명이 당국에 침몰한 여객선을 되찾아 달라고 요청했다.[21][22]

승객과 승무원

여객선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의 수가 혼선을 빚었다.[23] 인도네시아 보건 관계자는 이 배에 291명이 탑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여객선의 용량이 273명이지만, 과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24] 요한 나피투풀루 선장은 여객선이 과밀하다는 사실을 부인했으며 출발 당시 폭풍에 대한 경고는 없었다고 밝혔다.[25] 승객 명단은 228명의 승객이 여객선에 탑승하고 있다고 밝혔다.[26] 이후 조사 결과 여객선에도 승차권이 없는 승객들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3] 유아 20명과 어린이 7명이 탑승한 것으로 확인됐다.[3] 관계자들은 1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으며, 나중에 329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최종 탑승시켰다고 말했다.[3]

경찰이 범죄 수사에 착수했다. 11월 24일, 교통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들은 과부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과부하 문제를 책임진 공무원들이 해고되거나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항만 관계자들이 승객들로부터 돈을 받아 승객들이 거의 최대 용량에 가까운 여객선에 탑승할 수 있도록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NTSC 회원들은 침몰 사건이 인도네시아 해운법원에 넘겨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27]

조사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여객선 운항과 승무원 성과, 여객선 설계 및 시공 등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3]

상부구조물의 균열

복수의 목격자들은 강한 거친 파도에 의해 형성된 균열을 통해 물이 승객 구역으로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조사관들은 다리 근처에 균열이 생겼다고 말했다. 잔해를 확인한 잠수부들은 상부구조물 전면벽에 균열이 생긴 것을 확인했다. 본갑판 교량부에는 배수구가 없어 물이 범람했다. 본갑판이 범람하면서 자유로운 표면 효과로 여객선이 뜨는 능력을 상실했다. 활도 가라앉기 시작했고 여객선은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했다.[3]

건설 인부들은 이 여객선의 상부 구조물의 전면 벽면이 8개의 섬유 층으로 된 섬유 두께의 FRP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활의 벽은 몇 개의 튼튼한 블록으로 보강되었다. 조사관들이 실시한 계산에 따르면 이 블록들이 상부 구조의 구조적 무결성을 지탱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조사관들은 상부 구조가 FRP 재료로 지어졌기 때문에, 상부 구조가 하중에 영향을 주기 쉽다고 말했다. 침몰하기 전에는 여객선이 약 26노트의 속도로 운항하고 있었다. 파도를 거슬러 이동하던 중이었으므로, 그 파도의 힘은 상부 구조를 찢을 정도로 강력했다. 목격자는 벽 뒤에 놓여 있던 텔레비전이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위력이 강했음을 확인했다.[3]

조사자들은 일반적으로 섬유 층에 수지와 촉매가 동반된다고 말했다. 수지와 촉매의 비율이 높으면 상부구조는 부서지기 쉽다. 잔해 검사 결과 섬유에 있는 촉매가 수지 양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 조사단이 확인한 결과 두께 4㎜의 전면벽은 쉽게 깨질 수 있었다.[3]

페리안의 물

조사관들은 두마이 익스프레스 10의 전망 갑판이 열린 갑판이며, 보루로 둘러쌓인 점에 주목했다. 이 때문에 물이 곧바로 갑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갑판 안에 갇혔다. 파도에 의한 지속적인 충격은 벽을 약화시킨다. 벽의 약한 구조가 구멍의 형성을 야기했다. 에어컨 샤프트로 물이 새면서 주요 승객 구역 앞부분이 침수됐고, 이후 샤프트 근처에 있던 화물칸 출입구에 가까스로 닿았다. 뚜껑이 방수가 되지 않아 곧바로 화물칸으로 물이 새어 들어왔다.[3]

승무원의 전문성 부족

선장이 두마이로의 여행을 중단했더라면 재앙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사관들은 선장이 당시 날씨가 여객선이 운항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만큼 충분히 경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추가 조사 결과 그는 기내 비상사태에 대한 정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함장이 육지에 있는 당국에 [3]조난 신호를 보냈어야 했어

생존자들로부터 수집된 증언은 승무원들의 조율이 없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군중 통제가 허술했고 공황도 억제되지 않았다. 비상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승무원의 지침은 없었다. 이 때문에 승객 여러 명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움직였다. 몇몇 승객들은 창문을 부수기 시작했고 다른 승객들은 즉시 바다로 뛰어들었다.[3]

선원들도 여객선에 대한 피해 관리 작업을 했어야 했다. 생존자들은 선원들이 물의 양을 줄이려고 시도하거나 최소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사관들은 승무원들이 그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승무원들은 로스터 시간이 길어서 응급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회사로부터 제대로 된 감독을 받지 못했으며 회사에서 제대로 된 규제를 시행하지 못했다.[3]

참고 항목

참조

  1. ^ Cassidy, Katie (22 November 2009). "Indonesia Ferry Sinking: 240 Rescued". Sky New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3 November 2009. Retrieved 23 November 2009.
  2. ^ "How Tragic The Dumai Express 10 Tragedy was". Kompas. 23 November 2009.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6 November 2009. Retrieved 23 November 2009.
  3. ^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Final Report" (PDF) (in Indonesian). NTSC. Retrieved 10 July 2018.
  4. ^ a b "Kapal Dumai Express 10 Tenggelam, 59 Penumpang Hilang". Tempo. 22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5. ^ Maghrifie, Lusi Catur (22 November 2009). "Evakuasi Kapal Dumai Ekspres Terkendala Cuaca Buruk".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6. ^ Haruddin Tanjung, Banda (22 November 2009). "Kapal Tenggelam di Kepri, Polisi Dirikan Posko".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7. ^ Diputra, Rizka (22 November 2009). "Korban Tewas Dumai Exspress X Jadi 18 Orang".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8. ^ Diputra, Rizka (22 November 2009). "Korban Dumai Express Bertambah Jadi 22 Orang".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9. ^ a b "Korban Dumai Express Bertambah Jadi 30 Orang". Okezone. 23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10. ^ Haruddin Tanjung, Banda (22 November 2009). "Puluhan Korban Kapal Dumai Expres Masih Dicari".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11. ^ "Operator KM Dumai Express Ikut Tewas". Kompas. 23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12. ^ a b "255 Korban Dumai Express Selamat". Tribun News. 24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13. ^ a b "Cuaca Buruk Halangi Pencarian Korban Dumai Express". Antara News. 23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14. ^ "Cuaca Persulit Pencarian Korban". JPNN. 24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15. ^ "Satu Korban Dumai Express Tiba di Riau". Okezone. 24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16. ^ "Data Tak Akurat Sulitkan Pencarian". JPNN. 25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17. ^ Haruddin Tanjung, Banda (24 November 2009). "Disambut Isak Tangis, 14 Jenazah Sampai di Dumai".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18. ^ a b Haruddin Tanjung, Banda (30 November 2009). "Pencarian Korban Dumai Express Dihentikan".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19. ^ Hidayat, Taufik (4 December 2009). "Bangkai Kapal Fery Dumai Ekspres Ditemukan".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20. ^ "Bangkai Kapal Dumai Ekspres Ditemukan". Liputan6. 4 Dec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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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Hundreds rescued after Indonesia ferry sinks". BBC News. 22 November 2009. Retrieved 23 November 2009.
  25. ^ Arshad, Arlina. "Hundreds rescued as 29 die in Indonesia ferry sinking". Agence France-Press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4 January 2013. Retrieved 23 November 2009.
  26. ^ Haruddin Tanjung, Banda (22 November 2009). "Kapal Bawa 228 Penumpang Tenggelam di Kepri". Okezone. Retrieved 10 July 2018.
  27. ^ "Diduga Ada Transaksi Liar, Kapal Overload". JPNN. 24 November 2009. Retrieved 10 July 2018.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