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부
Sima Fu사마부 司馬孚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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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핑왕자(安平王子) | |||||||||
테뉴어 | 266–272 | ||||||||
태어난 | 180[1] 허난 현 | ||||||||
죽은 | 272년(92세)[1] | ||||||||
배우자 | 리부인 | ||||||||
이슈 디테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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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 사마 가문 | ||||||||
아버지 | 사마방 |
사마푸(도움말·인포)(180–272) 의례명 슈다는 중국 진나라의 황태자 겸 정치가였다.[1] 그는 일찍이 삼국시대 조위국 관리를 지냈으며, 손자인 사마연(우황제)이 266년 위나라 왕위를 빼앗고 진나라를 세웠다. 지즈통젠의 저자인 사마광은 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인생
사마푸는 동한 말경 (184–220)c. 링황제 때 수도의 인던트를 지낸 사마팡의 여덟 아들 중 셋째 아들이다. 그는 글을 잘 읽고, 관리로서 매우 유능하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대하기로 유명하다. 조조의 절친이기도 했다.
사마푸의 둘째 형 사마이는 삼국시대(220~280년)에 조위국(朝衛國)에서 권좌에 올라 24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위나라의 섭정이자 사실상의 통치자가 되었다. 사마의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사마시와 사마오가 그의 뒤를 이어 위나라의 섭정이자 사실상의 통치자가 되었다. 위정 때 사마푸는 비교적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 조루이 때 문필의 현(尚尚)을 지냈고, 조방, 조마오, 조환 때 대감(大監)과 대감(大監)을 지냈다. 또한 위나라의 라이벌 국가인 슈한과 동우와의 일부 전투에서는 군사 지휘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266년 사마오의 아들 사마연이 마지막 위황제 조환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퇴위시키도록 강요하여 위정권을 종식시켰다. 사마연은 진나라를 세우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사마푸는 위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진나라에 의해 교체된 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260년 위황제 조마오가 사마오로부터 권력을 되찾기 위한 쿠데타 실패로 암살당했을 때, 사마후는 조마오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린 몇 안 되는 위관 중의 한 사람이었다. 266년 사마옌이 진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후, 안핑왕자로 발돋움한 손주 사마푸 등 친족에게 귀족 칭호를 수여하였다. 사마푸는 그의 부덕에 대해 "나는, 그리고 언제나 위(衛)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272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진정부에서 태자(太子, "대감")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적어도 9명의 아들과 14명의 손자를 남겨 두고 생존했다.
참고 항목
- 삼국지
참조
- 인용구
- ^ a b c 데 크레스피니(2007년), 페이지 746.
- 참고 문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