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대처
Maurice Thatcher모리스 대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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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의원 켄터키 5구역 출신 | |
재직중 1923년 3월 4일 – 1933년 3월 3일 | |
선행자 | 찰스 F.오그덴 |
성공자 | 윌리엄 보리스 그레고리 |
파나마 운하 구역 5군 주지사 | |
재직중 1910년 5월 13일 – 1913년 8월 8일 | |
임명자 |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
선행자 | 조셉 클레이 스타일 블랙번 |
성공자 | 리처드 리 메트칼프 |
개인내역 | |
태어난 | 모리스 허드슨 대처 1870년 8월 15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 |
죽은 | 1973년 1월 6일 워싱턴 | (102)
정당 | 공화당 |
서명 | |
모리스 허드슨 대처(Maurice Hudson Thatcher, 1870년 8월 15일 ~ 1973년 1월 6일)는 미국 하원의원이었다.대처는 1922년 켄터키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그는 1933년까지 복무했다.
전기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대처의 가족은 1874년 켄터키주 버틀러 카운티로 이주해 모건타운 인근에 정착했다.대처는 농업, 신문, 군청 등에서 일했다.1892년 버틀러 카운티의 순회 법원 사무원으로 선출되었고, 1893년 1월 1일부터 1896년 사임할 때까지 재직했다.그는 켄터키주 프랭크포트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898년에 변호사 자격을 얻어 프랭크포트에서 법학을 시작했다.대처는 1898–1900년 켄터키 주 법무차관보였다가 1900년에 켄터키 주 루이빌로 이사했다.그는 1901년부터 1906년까지 켄터키 서부지구의 미국 검사 보조였고 켄터키 1908-1910년에는 주 검사 및 검사관이었다.
대처는 1909년부터 1913년까지 이스미안 운하 위원회의 일원이자 운하 구역의 주지사였다.대처는 위원회의 최장수이자 마지막 생존 멤버였다.
의회 임기 동안 그는 몇몇 켄터키 랜드마크와 공원, 즉 링컨의 출생지인 매머드 동굴 국립공원, 재커리 테일러 국립묘지의 통행을 지도했다.1932년, 그는 미국 상원의원 선거에 알벤 바클리를 물리치려는 시도로 의원직을 포기했다.
대처는 1939년부터 미국 워싱턴 D.C.의 Gorgas Memorial Institute of Troposal and Preventional Medicine, Inc., Washington D.C.의 종합 자문위원에서 일하다가 1948년에 부통령이 되었는데, 이 직책은 그가 명예 대통령이 되었을 때 1969년까지 재임했던 직책이다.1962년 파나마 운하의 양쪽을 연결하는 최초의 다리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대처 페리 다리.1979년 공식적으로 미주대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레거시
2017년 기준으로 103세 249일 동안 살았던 엘리자베스 호일리 가스케에 이어 102세 144일 동안 미국 의회에 몸담은 두 번째로 긴 장수다.
참조
- United States Congress. "Maurice Thatcher (id: T000142)". Biographical Directory of the United States Congress.
- Johnson, E. Polk (1912). A History of Kentucky and Kentuckians: The Leaders and Representative Men in Commerce, Industry and Modern Activities. Lewis Publishing Company. pp. 906–908. Retrieved 2008-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