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발라즈
John Balaz존 발라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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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수 | |
출생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 | 1950년 11월 24일 |
배팅: 오른쪽 던짐: 오른쪽 | |
MLB 데뷔전 | |
1974년 9월 10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위해 | |
마지막 MLB 출연 | |
1975년 9월 28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위해 | |
MLB 통계 | |
타율 | .241 |
홈런 | 2 |
타선이 강타하다. | 15 |
팀 | |
존 로렌스 발라즈(John Lawrence Ballaz, 1950년 11월 24일 출생)는 전 프로 야구 선수다. 발라즈는 1974년 9월 10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함께 빅리그에 진출했을 때 23살이었다.
경력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발라즈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포인트로마 고등학교에 다녔다. 이후 샌디에이고 시립대에 진학하면서 1970년 아마추어 야구 드래프트 5라운드(전체 108위)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의해 드래프트를 받았다.
3개 리그의 타점을 이끈 뛰어난 마이너리그 타자 발라즈는 1974년 9월 10일 애너하임 스타디움에서 이례적으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 6회말 좌익수 브루스 보크테의 대타로 발표됐다. 캔자스시티가 투구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딕 윌리엄스 감독은 돌아가서 더그아웃 벤치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발라즈에게 루디 메올리의 대타를 맞히기로 결정했다. 3일 뒤 코미스키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좌익수전에 선발 등판해 짐 카트를 상대로 3타수 0안타를 쳤다. 9월 24일 그는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로얄스와의 경기에서 홈런과 4타점으로 큰 경기를 치렀다.
발라즈는 1975년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1시간 10타점, 45경기에서 0.242(120타수 29안타)를 기록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좌익수, 우익수, 지명타자로 30경기 동안 선발 라인업에 있었다.
통산 총점은 59경기, 타율 0.241(162타수 39안타), 홈런 2개, 타점 15개, 득점 14개, 장타율 0.340 등이다.
발라즈는 1974년부터 출전하기 시작해 그해 시즌 14경기에 출전해 42타수 4득점 10안타(싱글 9개, 홈런 1개) 5실점 2볼넷 10탈삼진 1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타율 0.238, 출루율 0.289, 장타율 0.310으로 마무리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1976년 3월 3일, 스프링 트레이닝 중에 에인절스는 구원투수 딕 드라고와 교환하여 발라즈, 딕 샤론, 데이브 마체머를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했다. 발라즈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고, 레드삭스에서 뛰지 않았다. 드라고는 나중에 데니 도일(전 6월 획득)의 이름을 딴 선수로 에인절스에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드삭스는 이틀 후에도 마이너리그 투수 척 로스를 에인절스에 보내 모든 것이 더 합법적으로 보이게 했다.[citation needed]
포스트 메이저 리그 경력
발라즈는 다시는 빅리그 경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1976년 로드아일랜드 레드삭스에서 뛴 뒤 1977년 시즌을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마이너리그 조직으로 갈랐다. 그는 인디오스 데 시우다드 후아레스 클럽에서 뛰는 동안 멕시코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발라즈는 1979년 멕시코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그의 팀이 결승에 진출했을 때 두각을 나타냈다.[1]
발라즈는 현재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아내 보니와 자녀 로렌과 저스틴과 함께 살고 있다.
사실들
발라즈는 캔자스시티 로얄스 투수 폴 스플리토프(로얄스 스타디움, 1974년 9월 24일 ~ )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쳤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인 미네소타 트윈스 빅 앨버리(Anahim Stadium, 1975년 7월 26일 ~ )를 상대로 마지막 홈런을 쳤다.
업적
발라즈는 선수 생활 내내 여러 리그에서 선두를 달렸다.
1971년 아이다호 폭포 에인절스에서 뛰면서 14HR, 51타점으로 파이오니어 리그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어 1973년 살리나스 에인절스에서 뛰면서 28HR, 113타점으로 캘리포니아리그를 이끌었고, 1974년 엘파소 디아블로스 소속으로 뛰면서 111타점으로 텍사스리그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