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로이드 헨더슨

Harold Lloyd Henderson

해롤드 로이드 헨더슨(Harold Lloyd Henderson, 1907년 - 1993년 1월 18일) 목사는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 장로교 목사 및 정치인이었다.

삶과 일

H. 로이드 헨더슨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프리랜드에서 태어났으며, 프리랜드, 서머사이드, 샬럿타운프린스 오브 웨일스 칼리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몬트리올맥길 대학장로교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1942년에 학업을 마쳤다.

1943년 1월 14일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고향 노회에게 서품을 받고, 마니토바 포르타게프레리에의 제1장로교회 목사가 되었다.그는 1981년 명예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은퇴했다.노회, 시노드 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캐나다 총회에서 장로교 교회 헌의장을 자주 지냈다.

교회와 시청(그들은 나란히 있다)에 가까운 헨더슨은 1947년부터 1966년까지 마니토바주 포티지 프레리의 시장,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다시 시장을 지냈다.그는 정치부와 관련된 여러 위원회에서 일했다.는 1958년과 1968년 캐나다 자유당 대표자대회에서 지도자 후보로 출마했다.대의원은 아니지만 첫 시도에서 단 한 표, 두 번째 시도에서는 단 한 표도 받지 못했다.헨더슨은 "전날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자유당으로부터 예우표를 받은 사실이 유나이티드 프레스 인터내셔널에 보도됐다.그는 언론에서 '한 표 헨더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헨더슨도 세 차례에 걸쳐 매니토바 자유당 지도부에 출마했다.1961년 27표를 얻어 4명의 후보 중 4위를 차지했다.그는 1969년에 16표까지 떨어졌고, 다시 4표 중 4위를 차지했다.1975년 찰스 허반드의 유일한 적수로 381표 대 87로 졌다.그는 결코 지방의회에 입후보하지 않았다.

1958년 연방 선거에서 헨더슨은 포티지승마에서 자유당 후보였다.니파와는 먼 초를 두고 있다.이어 1962년1963년 선거에서 같은 승마에 '독립적' 후보(행정가, 경제학자, 성직자로 직종을 열거)로 출마해 매번 꼴찌를 했다.

1993년 초 세상을 떠났으며, 고향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