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알바니즈
Anthony Albanese앤서니 알바니즈 | |||||||||||||||||||||||||||||||||||||||||||||||||||||||||||||||||
---|---|---|---|---|---|---|---|---|---|---|---|---|---|---|---|---|---|---|---|---|---|---|---|---|---|---|---|---|---|---|---|---|---|---|---|---|---|---|---|---|---|---|---|---|---|---|---|---|---|---|---|---|---|---|---|---|---|---|---|---|---|---|---|---|---|
제31대 호주 총리 | |||||||||||||||||||||||||||||||||||||||||||||||||||||||||||||||||
인수사무소 2022년 5월 23일 | |||||||||||||||||||||||||||||||||||||||||||||||||||||||||||||||||
모나크스 | 엘리자베스 2세 샤를 3세 | ||||||||||||||||||||||||||||||||||||||||||||||||||||||||||||||||
총독부 | 데이비드 헐리 | ||||||||||||||||||||||||||||||||||||||||||||||||||||||||||||||||
대리 | 리처드 말스 | ||||||||||||||||||||||||||||||||||||||||||||||||||||||||||||||||
선행후 | 스콧 모리슨 | ||||||||||||||||||||||||||||||||||||||||||||||||||||||||||||||||
노동당 당수 | |||||||||||||||||||||||||||||||||||||||||||||||||||||||||||||||||
인수사무소 2019년 5월 30일 | |||||||||||||||||||||||||||||||||||||||||||||||||||||||||||||||||
대리 | 리처드 말스 | ||||||||||||||||||||||||||||||||||||||||||||||||||||||||||||||||
선행후 | 빌 쇼트 | ||||||||||||||||||||||||||||||||||||||||||||||||||||||||||||||||
야당 지도자 | |||||||||||||||||||||||||||||||||||||||||||||||||||||||||||||||||
재직중 2019년 5월 30일 ~ 2022년 5월 23일 | |||||||||||||||||||||||||||||||||||||||||||||||||||||||||||||||||
수상 | 스콧 모리슨 | ||||||||||||||||||||||||||||||||||||||||||||||||||||||||||||||||
대리 | 리처드 말스 | ||||||||||||||||||||||||||||||||||||||||||||||||||||||||||||||||
선행후 | 빌 쇼트 | ||||||||||||||||||||||||||||||||||||||||||||||||||||||||||||||||
성공한 사람 | 피터 더튼 | ||||||||||||||||||||||||||||||||||||||||||||||||||||||||||||||||
오스트레일리아의 부총리 | |||||||||||||||||||||||||||||||||||||||||||||||||||||||||||||||||
재직중 2013년 6월 27일 ~ 2013년 9월 18일 | |||||||||||||||||||||||||||||||||||||||||||||||||||||||||||||||||
수상 | 케빈 러드 | ||||||||||||||||||||||||||||||||||||||||||||||||||||||||||||||||
선행후 | 웨인 스완 | ||||||||||||||||||||||||||||||||||||||||||||||||||||||||||||||||
성공한 사람 | 워렌 트러스 | ||||||||||||||||||||||||||||||||||||||||||||||||||||||||||||||||
노동당 부대표 | |||||||||||||||||||||||||||||||||||||||||||||||||||||||||||||||||
재직중 2013년 6월 26일 ~ 2013년 10월 13일 | |||||||||||||||||||||||||||||||||||||||||||||||||||||||||||||||||
지도자 | 케빈 러드 | ||||||||||||||||||||||||||||||||||||||||||||||||||||||||||||||||
선행후 | 웨인 스완 | ||||||||||||||||||||||||||||||||||||||||||||||||||||||||||||||||
성공한 사람 | 타냐 플라이버섹 | ||||||||||||||||||||||||||||||||||||||||||||||||||||||||||||||||
| |||||||||||||||||||||||||||||||||||||||||||||||||||||||||||||||||
오스트레일리아 국회의원 Grayndler의 경우 | |||||||||||||||||||||||||||||||||||||||||||||||||||||||||||||||||
인수사무소 1996년3월2일 | |||||||||||||||||||||||||||||||||||||||||||||||||||||||||||||||||
선행후 | 자넷 맥휴 | ||||||||||||||||||||||||||||||||||||||||||||||||||||||||||||||||
개인내역 | |||||||||||||||||||||||||||||||||||||||||||||||||||||||||||||||||
태어난 | 앤서니 노먼 알바니즈 1963년 3월 2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 ||||||||||||||||||||||||||||||||||||||||||||||||||||||||||||||||
정당 | 노동. | ||||||||||||||||||||||||||||||||||||||||||||||||||||||||||||||||
배우자. | (m. 2000; sep. 2019) | ||||||||||||||||||||||||||||||||||||||||||||||||||||||||||||||||
국내협력사 | 조디 헤이든 (2021~현재) | ||||||||||||||||||||||||||||||||||||||||||||||||||||||||||||||||
아이들. | 1 | ||||||||||||||||||||||||||||||||||||||||||||||||||||||||||||||||
거주지 | |||||||||||||||||||||||||||||||||||||||||||||||||||||||||||||||||
모교 | 시드니 대학교(BEC) | ||||||||||||||||||||||||||||||||||||||||||||||||||||||||||||||||
서명 | |||||||||||||||||||||||||||||||||||||||||||||||||||||||||||||||||
웹사이트 | |||||||||||||||||||||||||||||||||||||||||||||||||||||||||||||||||
닉네임 | 알보 | ||||||||||||||||||||||||||||||||||||||||||||||||||||||||||||||||
| ||
---|---|---|
| ||
앤서니 노먼 알바니즈(,[nb 1] 1963년 3월 2일 ~ )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인으로,[3] 제31대 총리이자 현 총리이다. 그는 2019년부터 호주 노동당(ALP)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1996년부터 그레인들러의 분열을 위한 의회 의원을 맡고 있습니다. 알바니즈는 앞서 2013년 러드 2기 정부에서 제15대 부총리를 지냈습니다. 그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케빈 러드(Kevin Rudd)와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 정부에서 다양한 장관직을 맡았습니다.[4]
알바니즈는 시드니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호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그를 한 부모로 키웠습니다. 알바니즈는 세인트 메리 대성당 대학을 다녔고 시드니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학생 시절 노동당에 입당해 이후 당 간부와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의회에 입성했습니다.
알바니즈는 1996년 선거에서 뉴사우스웨일스주의 Grayndler 의석을 얻어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2001년 사이먼 크린에 의해 그림자 내각에 처음 임명되었고 이후 여러 역할을 수행했으며 결국 2006년 야당 사업부의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2007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알바니즈는 하원 지도자로 임명되었고, 지역 개발 및 지방 정부 장관과 인프라 및 교통부 장관으로도 임명되었습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케빈 러드(Kevin Rudd)와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 사이의 리더십 긴장에서 알바니즈는 공개적으로 두 사람의 행동에 비판적이며 정당 통합을 촉구했습니다. 2013년 6월 두 사람의 최종 지도부 투표에서 러드를 지지한 후, 알바니즈는 노동당의 부대표로 선출되었고, 다음날 부총리로 취임했는데, 이는 노동당이 2013년 선거에서 패배함에 따라 그가 3개월 미만 동안 유지했던 직책입니다.
러드는 정계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2013년 10월 호주 노동당 지도부 선거에서 알바니즈는 빌 쇼튼에 반대했습니다. 비록 알바니즈가 회원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Shorten은 노동당 의원들 사이에서 더 많이 이겼고 리더가 되었습니다. 쇼텐은 이후 알바니즈를 그림자 내각에 임명했습니다. 2019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깜짝 패배한 후, 쇼텐은 지도자직을 사임했고, 알바니즈는 그를 대신할 유일한 지도자로 지명되었습니다.[5][6]
2022년 선거에서 알바니즈는 스콧 모리슨의 자유국민연합에 맞서 자신의 당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7][8][9][10] 그는 2022년 5월 23일에 취임했습니다.[11][12] 알바니즈의 첫 총리직은 의회에 원주민 목소리를 포함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하고 [13][14][15]2050년까지 탄소 중립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으로 호주의 기후 목표를 업데이트하고 국가 최저 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것을 포함했습니다. 그의 정부는 국가 반부패 위원회를 입법하고 호주 노동법에 큰 변화를 주었으며 왕립 위원회를 로보데트 제도로 설립했습니다. 외교 정책에서 알바니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추가적인 병참 지원을 약속했고, 태평양 지역에서의 관계 강화를 시도했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여러 차례 고위급 회담을 가졌습니다. 국가 간 긴장 완화를 감독하고 중국이 호주에 가하는 무역 제한 완화를 유도합니다. 또한 호주, 미국, 영국 간의 AUKUS 안보협정의 공식적인 개시를 감독했습니다.
요절기
가족과 배경
알바니즈는 1963년 3월 2일 시드니 교외 달링허스트의 세인트 마가렛 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16][17] 그는 카를로 알바니즈와 메리앤 엘러리의 아들입니다.[18] 그의 어머니는 아일랜드 혈통의 호주인이었고, 이탈리아인 아버지는 아풀리아의 발레타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1962년 3월 시드니에서 영국 사우샘프턴으로 가는 항해에서 그의 아버지가 스튜어드로 일했던 시트마르 라인의 TSS 페어스키에서 만났지만, 그 후로 그들의 관계를 계속하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19][20][21] 공교롭게도 페어스키호는 알바니즈의 미래 국회의원 동료 줄리아 길라드와 그녀의 가족이 1966년 영국에서 남호주로 이주한 배이기도 했습니다.[22][23]
자라면서, 알바니즈는 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존 포크너(John Faulkner), 카니발 오스트레일리아의 CEO 앤 셰리(Ann Sherry, 1988년 시트마 라인을 인수한 P&O의 모회사), 그리고 해양 역사가 롭 헨더슨(Rob Henderson)의 도움으로 2009년까지 그를 처음으로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이탈리아 호주 대사관과 대사 아만다 밴스톤.[19] 그는 2009년에 그의 아버지와 연락을 취했고, 이탈리아에서 그를 여러 번 방문했고, 그는 그의 가족들도 그곳에 데려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2014년에 돌아가셨습니다.[24] 그 후 그는 자신에게 두 명의 이복 형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20][21] 2017년 호주 국회의원 자격 위기 동안, 비록 이탈리아인 아버지의 출생은 일반적으로 혈통에 의해 시민권을 수여하지만, 알바니즈는 그의 출생 증명서에 기록된 아버지가 없으므로 헌법 44조의 국회의원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 주목되었습니다.[25]
알바니즈의 외할아버지 조지 엘러리는 달링허스트의 윌리엄 가에서 인쇄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ALP에 인쇄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26]
아동기 및 교육
알바니즈는 캠퍼다운 어린이 병원 맞은편에 위치한 이너웨스트 교외의 시드니 시의회 가정에서 어머니와 외조부모와 함께 자랐습니다.[27] 그의 할아버지는 1970년에 돌아가셨고, 그 다음 해에 그의 어머니는 제임스 윌리엄슨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의붓아버지의 성을 받았지만 윌리엄슨이 학대적인 알코올 중독자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은 10주 동안만 지속되었습니다.[28] 알바니즈의 어머니는 청소부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가족들이 장애연금과 할머니의 노령연금으로 연명하는 등 만성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습니다.[29]
알바니즈는 캠퍼다운에[30] 있는 성 요셉 초등학교와 세인트 메리 대성당 대학에 다녔습니다.[31] 학교를 마친 후, 그는 시드니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 전에 영연방 은행에서 2년 동안 일했습니다.[16] 그곳에서 그는 학생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고 학생 대표 위원회에 선출되었습니다.[32][33][34] 그가 ALP의 노동좌파에서 핵심 선수로 부상하기 시작한 곳도 바로 그곳이었습니다.[35] 그의 학생 정치 시절 동안, 알바니즈는 "호주 공산당, 핵 군축을 위한 사람들, 그리고 아프리카 민족 회의와 같은 더 넓은 좌파 단체들과의 연계"를 유지하는 좌파당의 하드 좌파에 동조하는 젊은 노동당 내의 단체를 이끌었습니다.[36]
알바니즈의 어머니는 2002년에 돌아가셨습니다.[37]
국회의원 경력 및 여행
1984년 경제학 학위를 마친 후,[38] 알바니즈는 그의 멘토가 된 당시 지방 정부 및 행정 서비스 장관이었던 톰 우렌의 연구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맡았습니다.[39] 1989년 존 포크너가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노동당 뉴사우스웨일스 지부의 사무차관 자리가 공석이 되었습니다. 그를 대신할 선거는 노동 좌파의 강경 좌파와 온건 좌파 그룹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고, 알바니즈는 강경 좌파의 지원을 받아 당선되어 이후 6년 동안 그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36] 1995년, 그는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 밥 카의 선임 고문으로 일하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16]
알바니즈의 첫 해외여행은 1986년 친구 제레미 피셔와 함께 바누아투로 갔습니다.[40] 1987년, 알바니즈는 그의 상사 톰 우렌과 함께 동남아시아를 방문했습니다. 여기에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 회의, 존 캐릭과 함께 칸차나부리 전쟁 묘지에서의 안작 데이 새벽 예배, 빌 헤이든의 딸 잉그리드와 함께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41] 그는 그 후 1988년에 짐바브웨, 잠비아, 보츠와나, 서유럽, 그리고 배낭여행으로 동유럽과 스칸디나비아를 방문하는 등 광범위한 여행을 했습니다.[42] 호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카멜 테벗과 데이트를 시작했고 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 휴가를 [43]보내고 1991년 인도로 배낭여행을 갔습니다.[44][45] 알바니즈는 20대 때 국무부가 주최한 미국 순회 공연에도 참여했는데, 이는 미국 정부와 지지 단체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 주제입니다.[46][47]
1990년, 앨버너즈는 매릭빌의 이너 웨스트 시드니 교외에 방이 두 개인 반 분리형 주택을 구입했습니다.[38]
초기 정치경력
국회의원 입회
1996년 선거에서 제넷 맥휴(Jeannette McHugh)가 그레인들러(Grayndler) 의석에서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을 때, 알바니즈(Albanes)는 의석에 대한 사전 선택을 얻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시드니 공항의 세 번째 활주로 개방 이후 항공기 소음이 정치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1995년 뉴사우스웨일스 선거에서 지역에서 강력한 여론 조사를 한 신생 항공기 소음 정당(NAN)이 있는 등 어려운 선거였습니다. 베테랑 정치 전문가 말콤 매케라스(Malcolm Mackeras)는 NAN이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NAN의 후보는 14% 미만의 득표율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알바니즈는 노동당을 상대로 6점 차의 완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16점 차의 여유를 보이며 당선되었습니다.[48]
그는 첫 하원 연설에서 시드니 공항의 제3 활주로 건설, 항공기 소음 및 시드니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제2 공항 건설의 필요성과 공공 인프라 전반에 대한 자금 지원, 다문화, 모국어 명칭, 사회 임금 및 보육에 대한 지지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유권자들의 이익, 서민들을 위해, 노동운동을 위해, 그리고 다음 세기의 국가로서 진보적인 발전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라고 끝맺었습니다.[48]
의회에서의 첫 해에 그는 이 주제를 계속하면서 노던 준주의 안락사 법안, 힌드마시 섬 다리 논란에 대한 원주민 공동체의 권리,[49][50] 동성 커플에 대한 슈퍼애너레이션 자격을 지지했습니다.[51]
이 후자의 문제는 그가 특별히 헌신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1998년에 그는 동성 커플들에게 사실상의 이성 커플들과 같은 슈퍼애너레이션 권리를 주었을 사적인 회원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52] 그 후 9년 동안, 그는 2007년 러드 정부의 선거가 법안을 통과시킬 때까지 세 번 더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53] 알바니즈는 이후 동성결혼 운동에 관심을 돌렸습니다.[54]
섀도캐비닛 선임
1998년 알바니즈는 장관과 그림자 장관을 보좌하는 직책인 의회 비서관으로 임명되었고 종종 완전한 장관직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55]
2001년, 알바니즈는 고령자와 고령자의 포트폴리오를 차지하면서 야당인 그림자 내각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002년 개각으로 그는 고용 및 훈련부 장관이 되었고, 2004년에는 환경 및 유산부 장관이 되었습니다.[16] 호주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 총리였던 존 하워드와 과학부 장관이었던 브렌던 넬슨이 후자의 역할을 하는 동안이었습니다. 알바니즈는 "원자력은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으로 합산되지 않으며, 50년이 넘는 논쟁 끝에 우리는 여전히 핵 확산이나 핵 폐기물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당 내부의 요소들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강력한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56][57]
2005년, 알바니즈는 기존의 책임과 함께 그림자 물 장관의 추가적인 역할을 맡았고, 하원에서 야당 사업부의 부 관리자로 임명되었습니다. 2006년 12월, 케빈 러드가 노동당 대표가 되었을 때, 알바니즈는 줄리아 길라드로부터 의회 원내의 고위 전술 역할인 하원 야당 사업 관리자로 인수되었고, 물과 인프라를 위한 그림자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16]
각료
러드 정부
2007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알바니즈가 당내에서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은 러드부에서 인프라교통부 장관, 지역개발부 및 지방정부부 장관, 하원 지도자로 임명된 것이 증명했습니다. 러드는 2007년 12월 3일 동료들과 함께 취임 선서를 했습니다.[58]
노동당은 이전 정부가 "단기 정치 지출에 유리한 장기 국가 건설"을 무시했다고 비판하며 선거에 나섰습니다.[59] Albanese가 인프라 및 교통부 장관으로 취임한 첫 행보 중 하나는 인프라 우선순위에 대해 정부에 조언하기 위한 독립적인 법적 기관인 Infrastructure Australia를 설립한 것입니다. 이 독립기구의 조언과 내각에서의 자신의 설득력으로 무장한 그는 도로 예산을 두 배로 늘리고 철도 투자를 10배로 늘릴 것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60] 인프라 호주의 설립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인프라 호주 프로세스를 통해 전달된 프로젝트에는 멜버른의 지역 철도 링크, 헌터 고속도로, 입스위치 고속도로, 골드 코스트 경전철 시스템 G:링크, 레드클리프 반도 철도 노선, 노아를룽가 센터 철도 노선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시포드까지 연장하고 뉴사우스웨일스주 퍼시픽 하이웨이와 퀸즐랜드주 브루스 하이웨이를 따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61]
길라드 정부
줄리아 길라드가 2010년 6월 지도부 유출 사건 이후 러드를 총리로 교체한 후 그녀는 알바니즈를 총리직에 유지했습니다.[62] 2010년에 행해진 의회 선거 이후, 알바니즈는 하원 지도자 역할을 통해 무소속 의원 토니 윈저와 롭 오우크쇼트의 지지를 협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알바니즈는 1940년대 이후 처음으로 행해진 의회에서 하원을 통해 입법을 관리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63]
2011년 알바니즈는 두 가지 주요 정책 개혁을 더 도입했습니다. 도시 계획에 관한 첫 번째 연구는 덴마크 디자이너 Jan Gehl의 작품을 바탕으로 더 나은 교통과 안전을 가진 도시 디자인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64] 두 번째 선박은 보수적인 호주 선주 협회와 급진적인 호주 해상 연합의 승인을 얻은 것으로 유명합니다.[65] 그러나 그는 연료비 상승과 탄소 가격 상승에 항의하기 위해 "불신임의 호송차"로 불리는 노스 퀸즈랜드의 트럭 호송차가 캔버라 의회 의사당으로 내려오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질문 시간 동안 알바니즈는 밖에 있는 시위대를 "결과가 없는 호송대"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시위 지지자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일주일 후 뉴사우스웨일스주 마릭빌에 있는 알바니즈의 선거 사무실 밖에서 트럭 운전사들을 지지하는 대중 집회가 열렸습니다.[66]
일련의 저조한 여론조사에 이어 지도부의 불안이 다시 노동당 정부로 내려앉았습니다. 케빈 러드 전 총리는 줄리아 길라드에게 지도력을 요구하는 데 실패하기 위해 2012년 2월 외교부 장관직을 사임했습니다.[67][68] 투표 직전, 알바니즈는 러드를 지지하며 그가 항상 러드를 제거하는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69] 그는 눈물을 흘리며 총리에게 하원 지도자직 사퇴를 제안했지만 그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노동당에 지도부 분열을 중단하고 단일화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리더십 유출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저는 토리당원들과 싸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70][71]
오스트레일리아의 부총리
2013년 6월 러드(Rudd)는 최종 지도부 선거에서 길라드(Gillard)를 이겼습니다.[72][73] 같은 투표에서 알바니즈는 코커스에 의해 노동당의 부대표로 선출되었고, 다음날 알바니즈는 부총리로 취임했습니다.[74] 그는 2013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패배할 때까지 이 역할을 맡았고, 9월 18일 워런 트러스로 대체되었습니다.[75][76]
반대로 돌아가기
2013년 지도부 선거
2013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패배한 후, 알바니즈는 빌 쇼튼에 대항하여 노동당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출마를 선언했습니다.[77] 쇼튼은 국회의원과 평의원을 합친 투표가 처음으로 실시된 한 달간의 경연 끝에 우승자로 발표되었습니다. 비록 알바니즈가 당원들 사이에서 편안하게 이겼지만, 쇼텐은 의원들 사이에서 더 큰 우위를 점했고, 그 후에 당선되었습니다.[78]
반대 의견 단축
2013년 10월 지도부 선거 직후 쇼트는 알바니즈 섀도(Albanese Shadow for Infrastructure and Transport) 장관과 섀도(Shadow) 관광부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쇼트가 지도자로 있는 동안 그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79] 2014년 9월, 알바니즈는 도시를 위한 그림자 장관이라는 추가적인 역할을 받았습니다.[80]
야당 대표 (2019년 ~ 2022년)
이 구간은 확장이 필요합니다. 추가해서 도와주시면 됩니다. (2022년 5월) |
2019년 지도부 선거
2019년 5월 18일 노동당 대표직 사퇴를 선언한 빌 쇼튼.[81][82] 다음날 알바니즈는 이어지는 지도부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습니다.[83] 5월 21일, 크리스 보웬(Chris Bowen)은 투표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다음날 당원들 사이에서 지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84] 다른 후보가 나서지 않으면서, 알바니즈는 5월 30일 리차드 말스를 부대표로 하여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지도부를 장악했습니다.[85] 취임 당시 56세였던 그는 1960년 아서 칼웰(63) 대통령 취임 이후 59년 만에 야당 최고령 지도자가 됐습니다.[86] 알바니즈는 2019년 6월 1일 그림자 사역을 공개했습니다.[87]
2022년 연방 선거
알바니즈는 2022년 연방 선거에서 노동당을 이끌었습니다.[88] 알바니즈는 선거운동 첫날 공식적인 현금률이나 실업률을 밝히지 못해 비난을 받았습니다.[89][90] 4월 20일, 알바니즈는 스카이 뉴스가 주최한 토론에서 스콧 모리슨 총리와 맞붙었고, 알바니즈는 청중 투표를 통해 승자로 결정되었습니다.[91] 하지만 다음날 알바니즈가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여 시드니의 자택에서 격리해야 했습니다.[92] 그는 그 다음 주에 선거운동에 복귀했고, 5월 1일 퍼스에서 노동당의 선거운동을 주최했는데, 이는 서호주에서 주요 정당이 출범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노동당은 출범식에서 의약품과 육아 비용을 줄이고 호주의 제조업을 늘리며 최초 주택 구매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유 지분 주택 제도를 도입하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93] Albanese는 Channel Nine과 Channel Seven이 각각 주최한 두 번의 추가 토론에서 Morrison과 맞붙었습니다.[94][95][96][97] 여론조사 결과 제3당과 무소속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 거대 양당에 대한 지지도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98][99][100] 그러나 알바니즈는 전임자와 달리 하원에서 1석 다수를 차지한 스콧 모리슨 총리와 그의 정부를 물리치고 궁극적으로 노동당을 연방정부의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호주 총리 (2022년 ~ 현재)
이 기사는 업데이트가 필요합니다. 이유는 2023년 예산에 대한 정보가 누락되었습니다.(2023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