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및 안전한 가족법

Adoption and Safe Families Act
1997년 입양 및 안전가정법
Great Seal of the United States
에 의해 제정자제105회 미국 의회
효과적1997년 11월 19일
인용구
국제법Pub.L. 105-89 (텍스트) (pdf)
입법사

입양 안전가족법(ASFA, 공법 105–89)은 1997년 11월 19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달 초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은 후 법안으로 서명했다.[1]

배경 및 통로

ASFA는 특수 요구가 있는 아동의 입양을 저해하는 위탁 보육 시스템 내에 내재된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시도로 제정되었다. 이러한 문제들 중 많은 것들이 1980년의 입양지원 아동복지법에서 비롯되었다.[1] 비록 그 법이 통과되었을 때 그들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주정부들은 법이 무슨 일이 있어도 생물가족을 함께 보호하도록 요구한다고 해석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1] 이 법의 가장 큰 변화는 ASFA가 기금과 관련하여 사회 보장법 제4-E호를 어떻게 개정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ASFA는 아동복지사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로 초점을 옮기고, 이전의 학대와는 무관하게 생부모와 아이들을 재결합시키는 정책에서 멀어졌다.[1] 이와 같이 ASFA는 약 20년 만에 미국의 입양과 양육 시스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었다.[1] ASFA의 대표적인 후원자 중 한 명인 공화당 존 H. 차피 로드아일랜드 상원의원은 "우리는 생물학적 부모의 필요와 권리를 항상 우선시하는 현재의 제도를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가정은 단순히 함께 지낼 수 없고 함께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할 때라고 말했다.[1]

그 법안에 대한 아이디어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서 나왔다.[2] 미국의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원래 1995년에 쓴 한 기사에서 고아가 된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3] 이어 그녀는 공개 행사를 열어 이 문제를 폭로했고,[2][3] 미국 보건복지부 관계자들과 민간 재단 임원들을 만나 정책 질문과 권고를 했다. 그녀는 이 법을 자신이 시작하고 목도한 업적으로 가장 큰 만족감을 주었다고 언급했다.[3] 이 법안은 초당적인 지지로 의회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 자녀에 대한 친부모의 권리를 폐지하는 문제와 자녀들이 양육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 지원 수준에 대해 논란이 되었다.[2] 힐러리 클린턴은 협상이 처음 결렬된 후 후자 문제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타협점을 찾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2]

최종안을 환영하면서, 빌 클린턴은 이 법안이 "어린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1]

주요 조항 및 전술

이 법의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 주가 최근 22개월 중 15개월 동안 포스터 케어에 몸담았던 아동의 부모 권리를 해지할 것을 요구한다.
  • 15/22 규칙의 예외는 다음과 같다.[4]
    1. 아이가 생물학적 친척과 함께 위탁 가정에 있을 때(킨십 케어)
    2. 기관에서 부모의 해고가 자녀에게 가장 이익이 되지 않는 이유를 문서화할 때
    3. 국가가 통일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을 때
  • 12개월마다 영속성 청문회를 개최해야 함
  • 국가가 가족을 재결합할 필요가 없는 경우를 명확히 한다(Aggraved Environments, Aggraved Environments)
  • 가족 보호 및 지원 서비스 확대
  • 입양아에 대한 보조금 확대
  • 주정부에게 채택률 개선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
  • 주정부에서 아동을 입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문서화하도록 요구
  • 입양아에 대한 의료 보장 범위 확대
  • 채택을 장려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자금 지원
  • 주간 경계선이 채택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임팩트

이 법은 아동 복지를 위한 연방 기금을 계속 받기 위해 개별 주들이 이를 준수하도록 의무화했다. 따라서 각 주는 ASFA와 양립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했다. 실제로 그러한 입법 활동은 매우 다양했다. 그 결과, 일부 국가는 통일을 강조하는 일환으로 법의 세 가지 예외에 더 의존하고 있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채택을 강조해왔다.[4]

ASFA가 시행된 지 12년 만에, 도시연구소의 사회정책 센터는 AFSA의 효과를 검토하기 위한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결론에서 도시연구소는 AFSA가 수양보육을 떠나는 아이들의 수를 늘렸지만, AFSA가 혈육 친척들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다고 선언했다.[5] 도시연구소가 논의한 AFSA의 단점들은 ASFA의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 우선 예방 서비스법을 만들도록 정책 입안자들을 이끈다.[6]

연방 자료에 따르면 ASFA가 통과된 이후 돌봄으로 입양된 청소년 수는 꾸준히 증가해 1998년 약 3만8천명에서 2017년 약 6만명으로 증가했다.[7]

드레이스 고셋 텍사스공대 법대 교수는 멤피스 법률검토회에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법안의 재정적 인센티브는 위탁양육에서 입양가정으로의 동반 이동 없이 부모권리의 빠른 종료로 가정들을 영구적으로 혼란스럽게 했다"고 말했다. "입양 및 안전 가족법이 규정하는 프로그램들은 아이들이 종종 나이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삶의 결과로 이어질 때까지 영구 입양 가정을 기다리는 위탁 가정에 계속 시달리게 되면서 바로 그 목적을 좌절시키고 있다." ASFA는 많은 아이들을 고아로 둔 것으로 비난을 받았으며 그것은 분명히 ASFA의 의도는 아니었다."그는 말했다. "우리가 영속성으로 옮겨간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부모님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8]

참고 항목

참조

  1. ^ Jump up to: a b c d e f g Seelye, Katherine Q. (November 17, 1997). "Clinton to Approve Sweeping Shift in Adoption". The New York Times. Retrieved 2008-03-15.
  2. ^ Jump up to: a b c d Sengupta, Somini (October 29, 2000). "Campaigns Soft-Pedal On Children and the Poor". The New York Times. Retrieved 2008-03-15.
  3. ^ Jump up to: a b c "First Lady Biography: Hillary Clinton". National First Ladies' Librar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September 2, 2006. Retrieved August 22, 2006.
  4. ^ Jump up to: a b Hort, Katherine A. (2000). "Is Twenty-two Months Beyond 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 ASFA's Guidelines for the Termination of Parental Rights". Fordham Urban Law Journal. 29 (6).
  5. ^ "Intentions and Results: A Look Back at The Adoption and Safe Families Act". Urban Institute. Retrieved 2020-04-29.
  6. ^ Lindell, Karen U.; Sorenson, Christina K.; Mangold, Susan V. (2020-03-01). "The Family First Prevention Services Act: A New Era of Child Welfare Reform". Public Health Reports. 135 (2): 282–286. doi:10.1177/0033354919900892. ISSN 0033-3549. PMC 7036616. PMID 31995716.
  7. ^ "Adoption & Foster Care Statistics". Children's Bureau ACF. Retrieved 2020-11-16.
  8. ^ "Gossett, The Client (2018)" (PDF). The University of Memphis Law Review. 48. 2018-12-09.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