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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뉴스

국무령 이상룡과 역사 정신

정연상, "석주 이상룡 관련 대표적인 국내 유적지는 안동 임청각( 臨淸閣)이다. 임청각 내에는 유무형적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는데 아직도 우리가 그 가치와 의미를 발굴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현재 임청각은 사회 변화와 주변 환경 변화를 직면하고 있다. 특히 임청각은 안동역 이전으로 임청각 앞 주변 환경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행위는 현재의 시간 위에 이루어지지만 과거의 시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더 나아가 미래의 시간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사장 이승률)은 2017년 11월 10일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제10회 동북아공동체학술회의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무령 이상룡 역사 정신 고찰’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회의는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학술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축전을 보냈으며, 비롯해 전·현직 정책 입안자, 전문가, 기업인, 언론인, 일반시민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정용상, “임정 법통 승계를 부정하는 입장이 있다. 국가의 모습을 갖췄지만 실행성과 실용성면에서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데 임정 당시 일제치하라는 상황을 감안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천 년 우리 민족사의 전제왕정에서 완전한 권력 분립이 이루어진 민주공화정 정부로서, 주권재민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사진=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지상중계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제10회 동북아공동체학술회의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학술회의

임시 정부와 국무령 이상룡 역사 정신 고찰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사장 이승률)은 2017년 11월 10일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제10회 동북아공동체학술회의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무령 이상룡 역사 정신 고찰’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회의는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학술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축전을 보냈으며, 비롯해 전·현직 정책 입안자, 전문가, 기업인, 언론인, 일반시민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학술회의에서 다룬 이상룡(李相龍, 1858년 12월 28일, 음력 11월 24일~1932년 6월 15일) 선생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다. 특히 1925년 9월 24일부터 1926년 1월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했다.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만초(萬初), 호는 석주(石洲)다. 이상희(李象羲), 이계원(李啓元)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기도 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를 받았다.
1부 순서로 진행한 학술회의는 김재효 북방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이 전체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의 인사말로 시작해 김희곤 안동대 교수(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이 주제발표를 맡았다. 이어 이승률 이사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지정토론에서 ‘임시정부의 법통’ 측면은 정용상 동국대 교수, ‘사상 및 업적’ 측면은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임청각 복원’ 측면은 정연상 안동대 교수가 토론하고, 이어서 청중이 참여하는 종합토의 시간을 가졌다.
주제발표와 종합토의를 마친 후에는 학술회의 결과 및 결의문을 채택해 임청각 복원과 함께 향후 이상룡 선생의 독립정신을 남북 통일정신으로 승화·발전하도록 하기 위해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과 (사)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한반도통일교육연수원(가칭)을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결의문에 서명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반도를 둘러싼 엄중한 주변 정세 속에서 당면한 외교 안보 측면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갈 뿐만 아니라 우리 선열들이 피를 뿌려 세운 역사정신을 이 시대에 재조명, 확립하기 위한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특별히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신 이상룡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 비전을 세우기 위해 마련했다.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은 학술회의에 이어 이동탁 재단 사무처장 사회로 2부 순서인 ‘창립 10주년 기념 동북아국제협력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동북아국제협력상은 동북아 지역 국가 간의 긴밀한 관계 형성과 상호교류 및 이해 증진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기리고 귀감으로 삼고자 매년 개인(단체)에게 시상하고 있다.
동북아국제협력상은 한·중·일 3국 출신 중 유력한 인사를 윤번제(輪番制)로 선정해 시상한다. 2017년 동북아국제협력상은 와타나베 미카 유한대 교수가 받았다. 와타나베 미카 교수는 다문화네트워크 물방울나눔회 회장, 글로벌커뮤니티협회 고문, 법무부 외국인 정책위원,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포럼 운영위원, 법무부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또 대한민국 휴먼네트워크상(2010), 동아다문화상(2014), 올해의이민자상 대통령 표창(2016) 등을 수상했다.
와타나베 미카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중심지인 안동에서 훌륭한 상을 받은 것이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안동에 오면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에 들러 옆으로 나있는 철로를 보니 일제가 한국에 남긴 상처와 아픔이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출신으로써 과거 일제 강점기에 조상이 남긴 과오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일 간 갈등을 해소하고 동북아지역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며 “귀한 상을 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동북아국제협력상은 와타나베 교수에 앞서 권병현 미래숲 대표,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동경대 교수, 박철 북경시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동북아지역자치단체연합(NEAR) 등이 수상한 바 있다. 한편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은 이번 학술회의와 함께 참석자들과 함께 안동·영주역사문화탐방도 진행했다.
사람과사회는 근대 역사와 인물을 알리기 위해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이 제10회 동북아공동체학술회의에서 다룬 석주 이상룡 선생 이야기를 지상중계(紙上中繼) 형태로 정리했다.
-사람과사회 thepeopleciety@gmail.com

인사말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

한반도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황을 고려할 때 우리의 운명을 외세에 맡길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와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어려운 현실을 주도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는 해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고자 이번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특히 호국충절의 상징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남긴 위업과 독립정신을 고찰하고, 그의 생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인 보물 제182호 임청각 복원을 논의하며 민족자존의 회복과 애국애족 정신의 의미를 되살려 제2의 건국,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일에 귀감으로 삼게 되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안동 지역은 근대화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맞았던 19세기 후반 의병항쟁과 계몽운동이 대립각을 세웠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지역 출신인 이상룡 선생은 의병항쟁에 간여하다가 사상을 전환해 계몽운동을 거쳐 만주로 망명했다. 그는 만주에서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구국항쟁의 일선에 나선 한국독립운동의 전체를 관통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임시대통령인 박은식이 내각제로 개헌하면서 이상룡을 초대 국무령으로 선임해 1925년 취임한 후 6개월 만에 사임하고 1932년 서간도에서 순국하기까지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에 올랐던 인물이다. 최근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잊혀져 있었던 이상룡 선생에 업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사진=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주제발표
김희곤 안동대 교수·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안동 지역은 근대화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맞았던 19세기 후반 의병항쟁과 계몽운동이 대립각을 세웠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지역 출신인 이상룡 선생은 의병항쟁에 간여하다가 사상을 전환하여 계몽운동을 거쳐 만주로 망명했다.
그는 만주에서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구국항쟁의 일선에 나선 한국독립운동의 전체를 관통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임시대통령인 박은식이 내각제로 개헌하면서 이상룡을 초대 국무령으로 선임해 1925년 취임한 후 6개월 만에 사임하고 1932년 서간도에서 순국하기까지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에 올랐던 인물이다. 최근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잊혀져 있었던 이상룡 선생에 업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가계와 학통
이상룡 선생은 1858년 안동 법흥동 고성이씨의 종택인 임청각에서 출생했고, 1911년 만주 망명 이후 ‘상룡’으로 개명했다. 이상룡 선생을 중심으로 그 가계에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법흥동 고성이씨(固城李氏) 가문은 상당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였는데, 여러 차례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했다.

독립운동과 사상
이상룡 선생은 퇴계학설을 추종하고 유교가 쇠퇴하는 것을 우려해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실시하며 예학을 중심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혁심유림으로 전환하면서 모화사상에서 탈피해서 민주주의와 민권사상을 수용했다.
1919년 이후 만주로 망명한 이후 사회주의를 성리학의 대동사회와 통하는 사상이라 헤아리고 유학적 차원에서 수용해 독립군 조직 간 좌우 이념 갈등을 아우르는 리더십으로 독립운동을 이끄는데 기여했다. (사회주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현재의 공산주의와 같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북식 공산주의는 이상룡 선생 활동 당시에는 없었던 이념이다.)

독립운동과 사상의 네 가지 특성
첫째, 국권회복운동, 독립운동의 기반을 향촌 즉 지역사회로 설정해 민족운동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둘째, 국가건설의 주체를 국민 전체로 설정하고 이들이 정치적 능력과 군사적 능력을 겸비한 ‘신민’ 양성을 위한 교육에 비중을 두었다. 셋째, 의병항쟁 단계부터 국권회복운동, 독립운동의 방법은 무장투쟁이라고 여겼다. 나라를 빼앗긴 후 무장투쟁이 가능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기지를 건설했다. 넷째,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가운데서도 실천적 활동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대한민국 국가 건립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부의 결의에 의해 이를 통치함, 제10조 임시정부는 국토를 회복하면 만 1개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 등 임시정부를 계승해 대한민국을 재건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임정 당시의 정부, 의회 조직, 대통령 명칭, 태극기 국기 제정, 국가 계승 등 현재에까지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정의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토론

임시정부 법통
정용상 동국대 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현재의 대한민국이 계승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은 공화제, 대의제, 기본권, 선거권, 납세·병역 의무, 국제연맹 가입, 구황실 우대, 생명형(사형)·신체형(태형)·공창제 폐지, 임정은 국토 회복 후 1년 내에 소집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에서 민주공화정의 대의민주주의, 삼권분립, 자유권적 기본권, 평등선거권, 국제질서의 일원으로 편입, 대한제국회복, 광북 후 정부의 임정승계 등을 표방하는 완전한 민주공화국제를 표방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체제를 수용한 대한민국이 임정법통을 승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임정법통승계를 부정하는 입장이 있다. 국가의 모습을 갖췄지만 실행성과 실용성면에서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데 임정 당시 일제치하라는 상황을 감안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천 년 우리 민족사의 전제왕정에서 완전한 권력분립이 이루어진 민주공화정 정부로서, 주권재민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정파나 지도자 별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을 달리 보거나 그 개념을 달리 파악하는 등의 불일치는 있었으나 정확한 개념파악을 한 결과에 따른 주의나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정파적 이익에 편승해 임정 법통 승계 문제를 연결하거나 정치 이슈화 혹은 이념적 갈등의 촉발을 유도하는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한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사상 및 업적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을 뒷받침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역동적인 사상과 이념의 변화라고 요약해 볼 수 있다. 한말 성리학적 가치 추구에서 구국 계몽주의로, 경술국치 이후에는 민족주의(자유주의)를 넘어 사회주의까지 수용했는데, 그것은 사회주의의 공산사회를 성리학이 추구하는 대동사회와 같이 인식한 결과라고 보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의 주체를 선비에서 국민으로, 경술국치 이후에는 국민에서 민중(노농대중)으로까지 전환시켜 갔다는 견해는 탁견이라 본다.
이러한 점이 석주 선생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도 본다. 바로 특이하게도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는 점인데, 이는 당대 독립운동계 원로들보다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이를 통해 좌우파 독립운동가를 아우르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매우 통합적 사고를 가진 인물로 무관을 양성하면서 동시에 자유주의적 국민(신민)으로 교육에 힘썼고, 임정 후 민족세력의 통일을 도모했던 점에서 초대 국무령으로 석주를 선임한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청각 복원
정연상 안동대 교수

석주 이상룡 관련 대표적인 국내 유적지는 안동 임청각( 臨淸閣)이다. 임청각 내에는 유무형적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는데 아직도 우리가 그 가치와 의미를 발굴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현재 임청각은 사회 변화와 주변 환경 변화를 직면하고 있다. 특히 임청각은 안동역 이전으로 임청각 앞 주변 환경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행위는 현재의 시간 위에 이루어지지만 과거의 시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더 나아가 미래의 시간을 설계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임청각을 복원하는데 무엇보다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임청각의 형태 복원이라는 유형적 가치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정신 가치를 제대로 살려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춰 미래에도 그 가치와 의미가 희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기본적인 방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승률, “학술회의의 발제와 토론을 통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안동-만주-상해로 이어지는 독립운동 전개 과정에서 보여준 업적과 사상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더욱이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 나아가 국가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이상룡 선생의 위업을 재조명하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이 아닌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기원한다는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진=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마무리
이승률 이사장

학술회의의 발제와 토론을 통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안동-만주-상해로 이어지는 독립운동 전개 과정에서 보여준 업적과 사상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더욱이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 나아가 국가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이상룡 선생의 위업을 재조명하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이 아닌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기원한다는 명쾌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사상의 뿌리가 되는 그의 생가인 임청각이 단순한 건물 복원이 아니라 가치 복원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상룡 선생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서의 구국 정신과 통합적 리더십을 재고해 볼 때 이 시대에 계셨더라면 분명 한반도의 통일과 동북아공동체를 주장하셨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숭고한 역사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제2의 한반도 통일의 기초로 삼기를 바라며, 그 중심에 있는 임청각이 차세대 통일교육의 미래를 담아내는 아름다운 터전으로 복원되어 그 가치가 영구히 보존, 계승, 발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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