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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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추
金光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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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한 임정 예하 통의부 제5중대 예하 분대장 | |
임기 | 1921년 3월 14일 ~ 1924년 6월 15일 |
군주 | 순종 이척 (前 대한제국 군주) |
섭정 | 의친왕 이강 (前 대한제국 대리청정) |
대통령 | 이승만 (대한민국 임정) 이동녕 (대한민국 임정) |
주석 | 이동녕 (대한민국 임정) |
총리 | 이동휘 (대한민국 임정) 신규식 (대한민국 임정) 노백린 (대한민국 임정) 김구 (대한민국 임정) 이동녕 (대한민국 임정) 박은식 (대한민국 임정)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99년 1월 8일 |
사망일 | 1924년 6월 15일 | (25세)
사망지 |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랴오닝성 다롄 주재 일본 영사관 앞에서 암살됨. |
국적 | 대한제국 |
정당 | 한국독립당 |
종교 | 유교(성리학) |
웹사이트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독립군 중사(1923년 ~ 1924년) |
복무기간 | 1921년 2월 15일 ~ 1924년 6월 15일 |
최종계급 | 대한독립군 중사 |
상훈 | 사후 1996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훈장 미전수 상태) |
김광추(金光秋, 1899년 1월 8일 ~ 1924년 6월 15일)는 대한제국 독립운동가이다.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그는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오동진 선생 휘하에서 제5중대 2소대장으로 박희광(朴喜光), 김병현(金炳賢)등과 함께 3인조 암살단, 삼장사(三壯士: 1924년 7월26일(토)자 독립신문)로 활약하였다. [1]
생애
[편집]1924년 김광추(金光秋)는 통의부 제5중대 2소대 지휘관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친일파를 토벌 하라는 명을 받고[2], 박희광, 김병현과 함께 3인조암살단을 결성하여, 친일파를 숙청하는데 앞장섰으며,[3] 1924년 6월 7일 조선 요리점 금정관에서 군자금을 받아 돌아가던중, 중국관헌에 발각되어 박희광(박상만:朴相萬), 김병현(金炳賢) 두 사람은 현장에서 붙잡히고 김광추는 현장에서 탈출하였다. 이후 조선사람의 집에 은신하던중 일본 밀정의 제보로 6월15일 일본영사경관대의 포위를 당하여 총격전 벌이다 머리에 총을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4]
사후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 자료
[편집]- 동아일보(東亞日報) 1926년 9월 1일자, 9월2일자, 9월8일자
각주
[편집]- ↑ [논픽션 龜尾史 .12 박희광, 온몸을 던져 구국의 꽃이 되다]
- ↑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동상 새 단장”. 2018년 4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4월 5일에 확인함.
- ↑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생가 복원 올해 넘기나?”. 2015년 7월 2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4월 5일에 확인함.
- ↑ 논픽션 龜尾史 .12 박희광, 온몸을 던져 구국의 꽃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