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에볼라 아우구르

Quintus Mucius Scaevola Augur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에볼라 아우구르(C. 169 – 기원전 88년)는 로마 공화국의 정치인이자 로마법에 관한 초기 권위자였다. 그는 처음에 그의 아버지(이름을 공유한 사람)와 로도스스토아적파나에티우스에게 철학을 배웠다.

Scaevola는 기원전 128년에 호민관으로, 125년에 aedile로, 121년에 praetor로 임명되었고, 그는 아시아 주지사 역할을 했다. 이듬해 로마로 돌아오자 그는 티투스 알부키우스가 가져온 강탈 혐의(아마도 개인적인 이유로)에 직면했는데, 이 혐의는 그가 성공적으로 변호했다. 117년에 그는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스크에볼라는 노년에 법과 로마의 일에 대한 관심을 힘차게 유지했다. 그는 또한 키케로애티커스의 스승으로서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웅변가 몇 명에게 법률 지식을 전수했다. 기원전 88년, 그는 로마를 구한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술라에게 백성의 적으로 이름을 짓게 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옹호했다.

키케로는 그의 드 오라토레, 드 암미티아, 드 리퍼블릭아 등 세 작품에서 옛 주인의 인격을 인터루커로 삼았다. 이 용도는 Scafionic Circle의 일원으로 Scaevola를 둔다.

가족

Scaevola는 Scipio Aemilianus의 절친한 친구인 Gaius Laelius의 딸인 Laelia와 결혼하여 아들 1명과 딸 2명을 두었다. 그의 아내, 딸, 손녀들은 모두 라틴어의 순수함으로 유명했다.

Scaevola의 딸은 기원전 95년에 집정관이자 당대 최고의 웅변가인 Lucius Licinius Crassus와 결혼했다.

그의 첫 번째 사촌들은 영사와 폰티페스 막시니우스 리치니우스 크라스무시아누스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에볼라였다. 전자는 리치니아의 아버지였으며, 불운한 호민관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아내였다.

정치국
선행자 로마 집정관
기원전 117년
루치우스 카실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와 함께
성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