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조씨
Pungyang Jo clan풍양조씨 | |
---|---|
나라 | 한국 |
현재 지역 | 경기 남양주시 |
창시자 | 조맹 |
연결된 구성원 | 효순왕후 조엄 조만영 신정왕후 조문명 귀인조씨 조상경 |
풍양조씨(韓陽朝氏, 풍陽朝氏, 한글: 풍壤氏, 한자: 豐壤氏)는 경기도 남양주(南州)에서 유래를 추적하는 조선족이다.[1]2015년 한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이 씨족은 12만4262명이다.
기원
바우나 바우(바우, 바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조맹(趙조, 趙)은 풍양현(현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천마산 기슭의 바위굴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당시 신라를 정복하고 있던 왕건이 영해(지금의 경상북도 영덕)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패하자 만장일치로 대답한 것은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었다.
왕건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당시 70세였다.이때부터 신라를 정복하기 위한 길을 올라 대단한 기발함과 용맹으로 삼국통일을 이루면서 지금의 태조 왕건이 바우에게 맹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후 조맹은 평장사(平長寺, 平長寺)에서 문하시종(文下宗, 門下中)[2]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그가 살던 천마산 동굴은 왕건을 만났다고 하며, 그를 보호하기 위해 현성암을 세웠다고 한다.
조맹은 결국 조지린(趙知林, 趙之藺), 조신혁(趙新hye, 趙臣), 조보(趙寶, 趙寶) 등의 후손이 있었다.세 후손이 결국 그를 풍양조씨 시조로 삼았다.
풍양현이 백제·고구려에 속할 때는 골의로현(의義路縣, 骨衣奴縣)으로 불렸다.신라 경덕왕 16년인 757년 황양(黃陽, 黃陽)으로 바뀌어 한양군 영현(漢陽郡, 漢縣)이 되었다.고려 태조 23년(940년)에 풍양(風陽)으로 개칭되어 양주군에 속하였다.현종 9년(1018년)에 포주( was州, 抱州/抱川)로 이관되었다.조선 세종 9년인 1427년에 다시 양주에 속하였다.1980년 양주군에서 남양주군으로 신설되었다.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합병하여 남양주가 되었다.
풍양조씨(風陽祖氏)는 (신) 안동 김씨, 여흥민씨(여흥민씨)와 함께 조선 말기에 세력을 떨친 세 가문 중 하나이다.
조선 후기
5명의 종묘학자와 조현명, 조인영 등 2명의 재상이 배출되었다.효순왕후(효장왕후), 효순왕후(효명왕후)로 추증된 황태자, 신정왕후(효명왕후)로 추증된 또 다른 황태자.
의춘공주(봉안공주)[3]와 문천공주(양원공주)를 비롯해 영조([4]영조) 귀인공주(철종의 첩) 귀인공주(출종) 등 두 왕비(王父)가 왕족이었다.
1834년 조씨 일가가 안동 김씨 일족으로부터 왕실을 장악하였다.이 씨족은 순조 때부터 권력을 휘두른 안동 김씨 일족을 밀어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그러나 1846년 조만영 일족이 사망하면서 다시 한 번 안동 김씨 일가의 손에 왕권을 빼앗겼다.[5]
천성적으로 반카톨릭 신자였던 조씨 일가는 헌정왕이 김씨 일가가 천주교 신자들에게 온순하다고 비난하고 박해를 시작하자 법정을 장악하여 프랑스 선교사 3명을 포함한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6][7]
풍양조씨 신정왕후는 효명세자의 때아닌 죽음으로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결국 섭정으로 정권을 잡았다.[8]
풍양조씨 일가는 이명복(고종 황제)이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아 성년이 될 때까지 자기 이름으로 다스릴 수 없을 것이며, 장차 왕을 섭정할 이하응에게 쉽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철종의 사망 소식이 하응에게 전해지자마자, 철종과 풍양조 일가는 궁중의 복잡한 첩첩망을 통해 세습된 왕실의 도장을 가져갔는데, 이는 정당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귀족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대상이며, 이는 사실상 철종이 수작을 선택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한 것이다.왕위에 오르다철종의 죽음이 알려질 무렵, 안동 김씨 일가는 대왕도령 신정왕후의 손에 도장이 놓여 있어 왕법에 따라 무력했다.
대왕후 도우가 섭정직에서 물러났을 때 흥선대군은 조씨 일족의 세력을 몰아냈었다.그녀가 로얄 정치에 참여하게 되어느 결국 민비의 개입을 했다.이리하여 왕의 아버지와 그의 지지자들의 권력을 끌어내리고, 그 가문의 권력인 여흥 민씨 일족을 끌어들였다.
기타 연결된 구성원
- 조기수 - 인평대군의 사위, 인조·인렬왕후의 손자
- 내공주 풍창왕후 - 인현왕후의 계모
- 부인 조씨 - 풍양 부인 조씨 회고록의 귀족 여성 작가
- 조씨 - 철인왕후의 고모
- 조정구 - 고종의 처남, 흥선대군과 순목대군의 사위
- 조무강 - 숙혜옹주의 남편, 양원대군의 처남, 성종의 사위
참조
- ^ Bae, Kichan; Pae, Ki-chʻan (20 April 2007). Korea At The Crossroads. Happyreading. ISBN 978-89-89571-46-9.
- ^ 조선시대 영의정과 비슷한 직위, 현 시대에는 수상과도 비슷한 직위
- ^ 성종과 초계 정씨 귀인(in仁)의 둘째 아들이다(? – 1504).
- ^ 성종과 청성심씨(淸城心氏, 1465년 ~ 1515년)의 숙용( suk用)의 막내 아들이다.심씨는 소헌왕후의 사촌동생이었다.
- ^ Yi, Song-mi (2006). Korean Landscape Painting: Continuity and Innovation Through the Ages. Hollym International Corporation. ISBN 978-1-56591-230-4.
- ^ Yi, Hyŏn-hŭi; Park, Sung-soo; Yun, Nae-hyŏn (2005). New History of Korea. Jimoondang. ISBN 978-89-88095-85-0.
- ^ Koehler, Robert (31 August 2015). Religion in Korea: Harmony and Coexistence. Seoul Selection. ISBN 978-1-62412-045-9.
- ^ Tapsahoe, Han'guk Munhwa Yusan (2007). Seoul: A Field Guide to History. Dolbegae Publishers. ISBN 978-89-7199-2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