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버그 살인 사건
Lordsburg killings날짜 | 1942년 7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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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미국 뉴멕시코 주 히달고 카운티 로스버그 인근 |
죽음 | 2 |
로스버그 살인사건은 1942년 7월 27일 뉴멕시코 주 로스버그 외곽의 한 수용소에서 고바타 도시로와 이소무라 히로타라는 일본계 미국 노인 2명이 총격을 가한 사건을 말한다. 총격범인 클라렌스 벌레슨 일병은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후 군 의전을 준수하고 있다고 증언한 뒤 무죄를 선고받았다.[1][2]
배경
캠프 로드스버그는 원래 법무부가 관리하는 적군 외계인 캠프였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후 공사가 시작되었고, 시설로 선정된 부지는 뉴멕시코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 작은 사막도시인 로스버그 외곽에 있었다. 수용소는 각각 병영, 선창 등이 있는 3개의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집단인 캘리포니아에서 온 모든 남자들이 1942년 6월 첫째 주에 도착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FBI에 의해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한 "잠재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3]
7월 27일 발생한 사건은 캠프 로드스버그에서 발생한 첫 총격 사건이 아니다. 법무부가 수용소를 관리했지만, 미 육군은 남태평양 철도를 통해 수용자들을 인도할 책임이 있었다. 군대는 지역 민간인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수용소에서 약 2마일 떨어진 울모리스 시딩으로 알려진 철도역에서 내국인들을 하역시키고, 내국인들을 매우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사막으로 행진시키곤 했다. 1978년 뉴멕시코 주 역사학부에서 파견된 한 야간 행진은 "어르신 한 명의 내빈이 들판을 가로지르며 난동을 부렸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일본어로 경고하고 있었고 경비원들이 "할트!"라고 불렀지만, 그는 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명백한 공황상태로 계속 달렸다"[1][2]고 묘사했다.
킬링스
1942년 7월 27일 밤, 노스다코타 주 포트 링컨의 또 다른 캠프에서 147명의 일본 남성들이 캠프 로즈버그로 이송되고 있었다. 울모리스 시딩에서 열차에서 내린 후 고바타 도시로와 이소무라 히로타가 함께 길을 걸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 뒤로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50대 후반으로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고바타는 친구 아이사와 히로시에 따르면 16년간 결핵으로 고생했다. 이소무라의 좋은 친구 호시야 후쿠지로씨는 "척추를 다쳤다... 몇 년 전, 보트에서 떨어져서... 비스마르크 수용소[노스다코타 주]에서 그는 아주 허리를 굽혀 걸었다." 서 있으면 호시야의 '몸이 덜덜 떨릴 것'이라는 말도 나왔고, 뛸 수도 없다는 말도 나왔다.[1][2]
이 총격은 치와후안 사막을 통과하는 2마일의 여행 중에 발생했다. Clarence Burleson은 두 명의 내연녀가 길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았다. 공식 보도에 따르면 버레슨은 30야드(27m) 떨어진 곳에서 엽총으로 두 사람을 모두 쏘기 전 "할트!"라고 두 번 외쳤다. 검시관은 이후 등 왼쪽 가운데에서 각각 9개의 알갱이를 발견했고, 사격 패턴이 그리 넓지 않아 사격 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는 증거였다. 또 두 사람이 경비원들에게 화장실을 쓰라고 요구했지만 경비원들이 허락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는 피해자들이 몸을 풀기 위해 길을 걸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1][2]
공식적인 정부 대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소무라 히로타, 고바타 도시로가 보호구역에 들어간 후, 캠프 인클로저 안에 들어오기 전에 갑자기 휴식을 취하며 보호구역 경계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경비원은 그들에게 멈추라고 두 번 소리쳤고 그의 명령이 지켜지지 않자 그의 기립 지시에 따라 발포했다. 이소무라 히로타, 코바타 도시로는 몇 시간 후 즉사했다. 그 경위에 대한 조사가 단번에 실시되었다. 근위대 군법회의는 강력하게 기소되었고 모든 사실들이 발전되었다. 경비원의 무죄판결이 나왔다.[1]
여파
처음에 벌레슨은 '탈출 시도'를 중단한 것으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 시설의 한 경찰관은 심지어 기념품으로 살인에 사용된 엽총 탄환을 수집했고 버레슨은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육군본부는 이 사건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 않고 곧바로 사건 조사에 착수했다. 결과적으로, 버레슨은 결국 체포되었고, "의도적이고 합법적인"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 후, 텍사스 주 포트 블리스에 있는 8군 사령부로 보내져 법정 무장을 하게 되었다. 법원은 버레슨을 "의도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인을 저질러 기소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죄수들은 도망치려고 했고, 그는 단지 기립 명령에 따랐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살인 혐의는 과실치사로 축소되었고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1][2]
궁중 무술의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국무부의 한 메모는 "육군의 총격에 대한 보고를 검토하면 탈주 미수에 대한 처벌인 제네바협약 54조에서 규정한 최장 30일의 체포가 아니라 육군의 사격규칙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도조 히데키 총리 휘하의 일본 정부도 국외 추방된 내국인들로부터 살인에 대해 듣고 이에 항의해 정식으로 항의했다. 일본인들은 "군대의 호위 하에 있는 동안 거의 걷지 못하는 고령의 병자들이 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1][4]
일본인 내국인 이시자키 세마쓰 씨는 캠프의 사령관이던 클라이드 룬디 대령이 코바타와 이소무라 씨의 죽음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분명히 두 사람은 수용소의 근무 조건에 대한 항의에 말려들었고 룬디는 그의 권위에 도전한 그들로부터 본보기를 보이고 싶었다. 이시자키씨는 「여기서 [시위]를 치고 있었고, [룬디]가 열흘 이상 막사에 입막음을 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격]은 단지 한 예로 행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룬디는 총격 다음날 내국인들을 가택연금에서 풀어주고 '강제노동'이 재개됐다는 점도 주목됐다. 죄수들은 그들이 해야 할 노동이 제네바 협약에 따라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그 기준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요구했다. 그들의 슈트는 결국 포트 블리스의 8군 사령부로 하여금 룬디를 은퇴시키고, 로스버그의 캠프를 폐쇄하고, 모든 사람들을 캠프 산타페로 이동하게 했다.[2]
현재, 캠프에 있는 일부 건물의 막사, 콘크리트, 기초 등은 유적지 근처에 있는 표지판 외에 여전히 방문할 수 있다.[5]
마커는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
캠프 로즈버그 - 이 장소 근처에서 미 육군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캠프를 운영했다.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인과 일본계 미국인을 위한 수용소로 개소했다. 이후 1943년부터 45년까지 독일과 이탈리아인들을 위한 '로즈버그 전쟁 포로 수용소'로 재개장했다. 이 캠프는 작전 기간 동안 일본, 독일, 이탈리아인들을 수용한 미국의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6]
참조
- ^ a b c d e f g "Big American Night : The Lordsburg Killing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October 11, 2011. Retrieved December 5, 2012.
- ^ a b c d e f "Many Mountains Surrounding .::. The Killings at Lordsburg .:. Lordsburg Internment camp". Retrieved December 5, 2012.
- ^ "New Mexico Office of the State Historian : Lordsburg Internment POW Camp".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August 19, 2010. Retrieved December 5, 2012.
- ^ Elleman, Bruce. Japanese-American Civilian Prisoner Exchanges and Detention Camps, 1941-45. Routledge. ISBN 9781134321834.
- ^ "Documentary focuses on WWII Japanese - American internment camps in New Mexico - War History Onlin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November 23, 2012. Retrieved December 5, 2012.
- ^ "Camp Lordsburg, NM". Retrieved December 5, 2012.
외부 링크
- "Confinement in the Land of Enchantment: Japanese Americans in New Mexico during World War II". Public Lands History Center. Retrieved 2019-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