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운하
Juliana Canal줄리아나 운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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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 |
길이 | 36km(22mi) |
역사 | |
완료된 날짜 | 1935 |
지리 | |
시작점 |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
끝점 | 네덜란드 마스브라흐트 |
네덜란드 줄리아나 여왕의 이름을 딴 줄리아나 운하(Dutch: Julianakanaal)는 네덜란드 남부에 있는 36km 길이의 운하로 마스트리히트와 마스브라흐트 사이의 불가침한 메우세 강 구간의 우회로를 제공한다. 라인 델타 항구와 림부르크 남부와 벨기에 남부의 공업지역 사이의 중요한 교통 연결이다.
역사
줄리아나 운하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건설되었고, 1935년에 개통되었다. 남부 림부르크(Limburg)의 석탄 채굴은 벨기에를 경유하는 's-Hertogenbosch'에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까지 운행하는 구식 Zuid-Willemsvaart보다 더 큰 선박에 적합하기 때문에 (1970년대에 종착역)의 석탄 채굴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줄리아나 운하는 강에서 동쪽으로 최대 3km 떨어진 뮤즈 강과 평행하게 뻗어 있다. 마스브라흐트와 마스트리히트 사이에 운하의 높이는 약 25m이다. 림멜(마스트리히트 근처), 본(Born), 마스브라흐트(Maasbracht)에 자물쇠가 있다. 1965년까지 루스테렌 근처에 또 다른 자물쇠가 있었다. 보른과 마아스브라흐트의 자물쇠가 현대화되었을 때, 이것들은 불필요하게 되었고 파괴되었다. 마스트리히트, 스타인, 본, 마스브라흐트에는 항구가 있다. 스타인 항구는 독일의 뒤스부르크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내륙항이었다. 네덜란드 주 광산(DSM) 때문이었다.네덜란드가 갖고 있던 탄광은 모두 이 지역에 있었다. 오늘날 DSM은 여전히 항구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운하를 건설하는 동안 몇 가지 난제를 극복해야 했다. 엘슬루 근처에서 건설업자들은 샤르베르크라고 불리는 가파른 언덕을 깊이 파야 했다. 이 구간에서는 한쪽의 가파른 언덕과 불과 50m 떨어진 반대편의 머즈강 사이에 운하가 건설된다. 여기서 고고학자들은 미오세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많은 치아를 발견했다. 일반 운하와는 달리 줄리아나 운하가 완전히 파여진 것은 아니었다. 높이의 차이 때문에 운하가 지상에 건설될 수 없어서 건설업자들은 거대한 둑을 만들었다. 둑의 높이는 없는 높이에서 거의 50미터까지 다양하다. 그러자 운하의 밑바닥은 두껍게 쌓인 바위들로 뒤덮여, 뮤즈 강에서 흘러나왔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운하는 중요한 전략적 역할을 했다. 1940년 독일군이 플란더스를 침공하는 것을 막았다. 이로써 벨기에 사람들은 군대를 동원하고 방어선을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을 더 갖게 되었다. 네덜란드가 항복하자 독일인들은 운하 양쪽에 벙커를 많이 지었다. 1944년 후퇴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던 연합군도 독일군이 모든 다리를 폭파하면서 운하에 의해 저지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거의 모든 오래된 철제 아치 다리들이 수리되었다. 운하 위에 더 높이 서 있고 다른 다리들보다 훨씬 긴 엘슬루의 다리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교체될 수 있었다. 오늘날 이 다리는 아치가 없는 유일한 다리(벨기에 간 고속도로 다리, 1970년대에 건설된 다리 제외)이다.
2004년 1월 27일, 운하는 국제 뉴스가 되었다. 밤 사이 둑 한 마리가 떠내려갔다. 둑길을 걷던 한 남자가 갑자기 눈앞의 오솔길이 사라진 것을 보고 소방관들을 불렀다. 저녁이 되자, 스타인의 옛 중심부는 대피했고, 엄청난 양의 물은 모래주머니에 의해서만 저지되었다. 조사 결과 원인이 밝혀졌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잊혀졌지만 여전히 압박을 받고 있던 80년 된 상수도관이 새기 시작하면서 둑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침식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