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의 이란에 대한 화학 공격
Iraqi chemical attacks against Iran이란에 대한 이라크 화학공격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군이 이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상대로 사용한 화학공격이다. 이라크 군대는 국경 도시와 마을에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했으며 이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은 3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군에 의해 일부 의료센터와 병원에 대한 화학 공격이 있었다.[1] 2002년 '스타-레저' 기사에 따르면 이란 전투병과 전투 의료진 2만여 명이 신경가스에 의해 즉사했다. 2002년 현재 생존자 8만 명 중 5000명이 정기적인 진료를 계속 받는 반면 1000명은 병원 입원환자다.[2][3] 제네바 의정서에 따르면, 화학 공격은 금지되었지만, 실제로 이란의 승리를 막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지지했다.[4]
배경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이라크는 군대의 모든 측면을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라아드 알 함다니 이라크 장군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대한 치밀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바트당이 이라크 육군의 뚜렷한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에 비해 이라크군은 기술적 전문지식이 크게 부족했다. 1979년 사담 후세인의 정책뿐 아니라 바트당의 주요 간부들과 군 고위 간부들의 정책 때문에 이라크군은 점점 더 많은 정치화를 겪었다. 당시 "좋은 병사보다 좋은 바아티스트가 낫다"는 말이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이라크는 바트당의 간섭과 이라크 군대의 개선 시도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중요한 문제는 군 지도자들이 전쟁에 대한 명확한 전략이나 작전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5]
워싱턴포스트(WP)의 마이클 돕스 기자는 레이건 행정부는 이라크에 판매된 물질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용될 화학무기 제조에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라크군이 1984년 2월 "침입자들은 모든 해충에 대해 살충제를 살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은 극비라고 말했다. 이라크는 살충제 소탕작용을 하고 있어" 레이건의 외교 정책에 따르면 이라크를 구하기 위한 모든 시도는 필요했고 합법적이었다.[4]
이라크 문서에 따르면, 화학 무기 개발에 대한 원조는 미국, 서독,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를 포함한 많은 나라의 기업들로부터 얻어졌다. 보고서는 네덜란드, 호주,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서독과 동독 두 회사가 이라크 화학 무기 공장에 원자재를 수출하는 데 관여했다고 밝혔다.[6]
역사
화학무기는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당시 이라크군이 이란 전투원 및 비전투원들을 상대로 고용했다. 이것들은 화학적 구성과 사상자 발생 효과에 기초하여 분류되었다. 이라크군이 사용한 가장 잘 알려진 물질은 신경작용제 타분, 사린, 겨자 가스로 알려진 유기인산 신경독소였다. 이라크의 보도에 따르면 1981년 초기 및 소규모 공격에서 구토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1983년 8월 피란샤르와 하지오마란 전장에 화학무기가 동원되었다. 다음으로, 그것들은 1983년 11월에 판즈윈 전장에서 사용되었다. 이라크군은 1984년 마종군도에 수 톤의 황 겨자와 신경작용제를 사용함으로써 광범위한 화학 공격을 시작했다.[1]
1986년 이란군은 바스라 남동부 파 반도를 공격해 반도를 점령했다. 샤트 알-아랍 건너편에서 포 반도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지 않은 이라크군은 이번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란군과 여러 민병대의 통합과 협력으로 1985~1986년 겨울 동안 치밀하게 작전을 조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라크의 유정이 위험에 처했다. 이라크의 함다니 장군은 한반도 해방을 위한 전투를 또 하나의 '솜므 전투'라고 불렀는데, 이 전투는 양국 군이 큰 손실을 입었다. 화학적 공격은 이라크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5][7] 화학 공격은 1988년 8월 전쟁의 마지막 날까지 일어났다.[8] 이란-이라크 전쟁 8년 동안 국경 지역에서 350건 이상의 대규모 가스 공격이 보고되었다.[1]
민간인 공격
이라크군은 국경도시와 마을에서 전투원 및 비전투원 등에 대한 공격에 화학무기를 사용했으며 이란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다음과 같이 30건 이상 보고되었다.[1]
- 1987년 6월 28일 서아제르바이잔의 사르다슈트에서
- 1988년 3월 마리반 시 주변 마을들
- 1988년 3월 16일 할라브자에서는 5천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 1988년 5~6월 사르폴-에-자합, 길란-에-가르브, 오스나비에 도시 주변 마을들
이라크군이 의료센터와 병원에 대한 화학적 공격이 있었다.[1]
사상자
CIA는 기밀 해제된 1991년 보고서에서 이란이 이라크의 여러 화학무기 사용으로 5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고 추정했지만,[9] 장기적 영향으로 인해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10] 중앙정보국(CIA)의 공식 추정에는 국경 도시나 참전용사의 자녀와 친지 중 상당수가 혈액, 폐, 피부 합병증을 앓고 있는 민간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2002년 '스타-레저' 기사에 따르면 이란 군인 2만여 명이 신경가스에 의해 현장에서 숨졌다. 2002년 현재 생존자 8만 명 중 5000명이 정기적인 진료를 계속 받고 있으며 1000명은 입원환자다.[2][3]
날짜 | 이벤트 | 위치 | 유형 | 사상자* |
---|---|---|---|---|
1983년 8월 | 하지엄란 | 겨자 | 이란/이라크 쿠르드족 사상자 100명 미만 | |
1983년 10월-11월 | 판즈윈 | 겨자 | 이란/이라크 쿠르드족 사상자 3000명 | |
1984년 2월-3월 | 키바르 작전 | 마종도 | 겨자 | 이란인 사상자 2500명 |
1984년 3월 | 배드르 작전 | 알 바스라 | 타분 | 이란인 사상자 50 대 100명 |
1985년 3월 | 마쉬 전투 | 호이자 마쉬 | 겨자와 타분 | 3000명의 이란인 사상자 |
1986년 2월 | 여명 8호 작전 | 알파우 | 겨자와 타분 | 80001만 명의 이란인 사상자 |
1986년 12월 | 엄아르라사스 | 겨자 | 이란인 1000명 사상자 | |
1987년 4월 | 바스라 전투(카발라-5) | 알 바스라 | 겨자와 타분 | 이란인 사상자 5000명 |
1987년 6월 | 사르다슈트 화학 폭격 | 사르다슈트 | 겨자 | 피폭된 이란 민간인 8000명 |
1987년 10월 | 수마르/메흐란 | 겨자와 신경작용제 | 3000명의 이란인 사상자 | |
1988년 3월 | 할라베자 화학 공격 | 할라베자와 마리반 주변의 마을들 | 겨자와 신경작용제 | 이란 민간인 사상자 1000명 |
1988년 4월 | 제2차 알파우 전투 | 알파우 | 겨자와 신경작용제 | 이란인 1000명 사상자 |
1988년 5월 | 이란 피쉬 호수 | 겨자와 신경작용제 | 이란인 사상자 100명 또는 1000명 | |
1988년 6월 | 마종도 | 겨자와 신경작용제 | 이란인 사상자 100명 또는 1000명 | |
1988년 5월 6월 | 사르폴-에-자합과 길란-에-가르브와 오스나비에 주변의 마을들 | 이란의 민간인 | ||
1988년 7월 | 타와칼나 알라 작전 | 중남부 국경 | 겨자와 신경작용제 | 이란인 사상자 100명 또는 1000명 |
* 대기시간이 40년 정도로 길기 때문에 실제 인명피해는 훨씬 많을 수 있다.[12] |
국제협약
이라크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암시하는 보도 때문에 [4]이란은 유엔에 의해 화학무기 요원 사용을 막는 데 관여할 것을 요청했으나 유엔 등 국제기구의 강력한 조치는 없었다. 유엔 전문팀은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1984년 3월, 1985년 4월, 1986년 2월–3월, 1987년 4월, 1988년 3월, 7월, 8월에 이란에 파견되었다. 그 결과 유엔 진상조사단의 조사로 이뤄진 현장조사, 사상자 임상조사, 표본에 대한 실험실 분석 등을 통해 이라크군이 이란인을 상대로 겨자 가스와 신경작용제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안보리는 1984년 3월 13일과 1986년 3월 21일 이 보고서를 비준했고 두 개의 성명이 발표되었는데, 이라크 정부는 그러한 비난에 따르지 않았고 화학 공격을 계속하였다.[1]
참고 항목
참조
- ^ a b c d e f "Long Legacy" (PDF). cbrneworld.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2017-05-10. Retrieved 2016-02-26.
- ^ a b Fassihi, Farnaz (27 October 2002). "In Iran, grim reminders of Saddam's arsenal". New Jersey Star-Ledger.
- ^ a b 이란, 전쟁 문서 센터 (مرکز مطالعات و تحقیقات جنگ)[full citation needed]
- ^ a b c Kessler, Glenn. "History lesson: When the United States looked the other way on chemical weapons". Washington Post.
- ^ a b Woods, Kevin M.; Murray, Williamson; Holaday, Thomas. "Saddam's war" (PDF). National Defense University Press. 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 Retrieved 26 February 2016.
- ^ "Iraqi Scientist Reports on German, Other Help for Iraq Chemical Weapons Program".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Retrieved 10 May 2013.
- ^ Hashmi, Sohail H.; Lee, Steven P. (2014). Ethics an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Religious and Secular Perspectiv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0521545266.
- ^ Croddy, Eric A.; Wirtz, James J.; Larsen, Jeffrey A. (2004). Weapons of Mass Destruction: An Encyclopedia of Worldwide Policy, Technology, and History. ABC-CLIO. ISBN 978-1851094905.
- ^ Wright, Robin (2008). Dreams and Shadows: The Future of the Middle East. New York: Penguin Press. p. 438. ISBN 9781594201110.
- ^ Rajaee, Farhang, ed. (1993). The Iran-Iraq War: The Politics of Aggression. Gainesville: University Press of Florida. ISBN 978-0813011776.
- ^ 이라크의 화학전 프로그램 cia.gov
- ^ Wright, Robin (January 20, 2014). "Iran Still Haunted and Influenced By Chemical Weapons Attacks". Time. ISSN 0040-781X. Retrieved 2017-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