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던롭
Henry Dunlop헨리 월리스 도브턴 던롭(Henry Wallace Dobton Dunlop, 1844년– 1930년)은 아일랜드 럭비의 전 지도자, 랜스다운 풋볼 클럽의 설립자, 그리고 옛 랜스다운 로드 스타디움 건설의 배후 인물이다.[1]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의 공학 졸업생으로, 그는 더블린 클럽 랜스다운을 설립했고 랜스다운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다른 스포츠 클럽의 호스트도 설립했다. 랜스다운 로드 스타디움을 건설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랜스다운과 랜스다운 로드
던롭은 1871년에 아일랜드 챔피언 애슬레틱 클럽을 설립했다. 트리니티 대학에서 처음 회의를 한 후, 그 대학의 교무처장은 캠퍼스에서 더 이상 회의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Dunlop은 그의 스포츠 활동을 위한 새로운 집을 찾아야 했다. 던롭은 1921년 글을 쓰면서 "그래서 나는 다른 음모를 찾아야만 했고, 심사숙고한 끝에 현재의 랜스다운로드 1호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고 에드워드 딜런(나의 트레이너)과 함께, 나는 펨브로크 부동산에서 69년 임대를 받아, 철도에서 도더로부터 약 60야드까지 뻗어 있는 구내 일부만 연 60파운드를 지불했다. 나는 4분의 1마일을 달리는 신들린더를 깔고, 현재의 랜스다운 테니스 클럽 그라운드를 내 자신의 테오돌라이트와 함께 깔고, 랜스다운 양궁 클럽, 랜스다운 크리켓 클럽을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란스다운 럭비 풋볼 클럽 - 빨간색, 검은색, 노란색 - 을 만들었다. 테니스 클럽 그라운드에서는 피츠윌리엄이 만나기 훨씬 전에 첫 테니스 챔피언쉽이 열렸다.[2]
던롭은 1872년에 랜스다운 풋볼 클럽을 설립했고 그 클럽은 그라운드에서 럭비 유니온을 해왔고, 레인스터와 아일랜드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럭비 클럽 중 하나가 되었다. 1869년에 설립된 원더러스 축구 클럽은 후에 그라운드에서 랜스다운에 합류했다. 두 클럽은 그 때부터 세입자였고, 또한 새로운 아비바 스타디움을 이용한다.
철로 밑의 참호에서 나온 300여 짐의 흙이 땅을 돋우는데 사용되어 던롭은 그의 공학적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아일랜드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투구를 만들 수 있었다.
럭비는 점차 그라운드의 주요 용도가 되었다. 첫 번째 대표 럭비 경기는 1876년 12월 레이스터와 울스터의 지방간 기구였고, 1878년 3월 11일 랜스다운 로드는 영국을 상대로 최초의 국제 럭비 기구인 영국을 개최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럭비 유니온 시험장이 되었다. 던롭은 IRFU에 5파운드와 50파운드 이상의 이익의 반을 지출 후 청구했다. 아일랜드가 그라운드에서 치른 첫 승리는 1887년 2월 5일 영국을 상대로 일어났다. 이 무렵 IRFU의 회계책임자인 해리 셰퍼드(Harry Sheppard)는 던롭으로부터 임대차 계약을 따냈고, 1906년 셰퍼드(Sheppard)가 사망하자 조합은 그의 부동산 200파운드를 임대차 대금으로 지불했다.[3]
사생활
던롭은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 다녔고 그곳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던롭은 모리스의 어머니인 손녀 쉴라를 통해 아일랜드 경주마 조련사 마우스 모리스의 조상이다.
참조
- ^ "Archived copy".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6-10-13. Retrieved 2016-10-07.
{{cite web}}
: CS1 maint: 타이틀로 보관된 사본(링크) - ^ "Years on, it's still Dunlop's field". Irishtimes.com. Retrieved 4 October 2018.
- ^ "Final farewell to Lansdowne". Belfasttelegraph.co.uk. Retrieved 4 October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