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푸르트 변소 참사

Erfurt latrine disaster
하인리히 6세 황제는 라트린슈투르츠 재앙에서 살아남았다. (코덱스 마네세로부터의 불화)

1184년 7월, 독일 헨리 6세(성로마 황제)는 에르푸르트 피터스버그 시타델호프타그에서 법정을 열었다. 7월 26일 아침, 모인 귀족들의 중량이 합쳐져 피터스키르케의 나무 2층 바닥이 무너졌고, 대부분이 1층 아래 변소 세정대에 빠져 60여 명이 액체 배설물에 익사했다. 이 사건은 몇몇 독일 소식통에서 '에르푸르터 라트린슈투르츠(lit.Erfurter Latrinensturz)'라고 불린다.[1][2][3]

배경

투링아랜드그레이브 루이 3세마인츠콘래드 대주교와의 불화는 헨리 6세가 폴란드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이는 동안 이 지역을 여행하던 중 어쩔 수 없이 개입할 정도로 격화되었다. 헨리는 두 사람의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에르푸르트에서의 다이어트를 부르기로 결심하고 다른 여러 인물들을 협상에 초대했다.[4]

이벤트

신성로마제국의 귀족들이 회의에 초대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기 위해 7월 25일에 도착했다.[5] 집회가 막 시작되자 귀족들이 앉아 있던 피터스키르케의 나무바닥이 스트레스로 부서지고 사람들은 1층을 거쳐 지하실 변소로 쓰러졌다. 지겐하인의 고즈마르 3세 백작 [], 아벤베르크의 프리드리히 1세 백작, 키르흐베르크의 부르그라베 프리드리히 1세, 슈바르츠부르크의 하인리히 1세, 바르트부르크부르그라베 부르차드, 멜딩겐의 베링거 등 [6]60여 명이 사망했다.[7] 헨리 왕은 돌바닥이 있는 알코브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한다.[5]

원문

참조

  1. ^ "Curio #1: The Erfurter Latrinensturz". The Fortweekly. April 2008.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 September 2019.
  2. ^ Magnusson, Roberta J. (1 April 2003). Water Technology in the Middle Ages: Cities, Monasteries, and Waterworks after the Roman Empire. JHU Press. ISBN 978-0-8018-7283-9.
  3. ^ Arnold, Benjamin (29 January 2004). Princes and Territories in Medieval Germa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0-521-52148-2.
  4. ^ Rundfunk, Bayerischer (26 July 2011). "26. Juli 1184 : Erfurter Latrinensturz". Bayerischer Rundfunk (in Germa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 September 2019. Retrieved 3 September 2019.
  5. ^ a b "RI IV,2,4 n. 2778, Friedrich I., 1184 Juli 25–26, Erfurt : Regesta Imperii". www.regesta-imperii.de (in Germa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1 March 2020. Retrieved 3 September 2019.
  6. ^ Schwiebert, Ernest George (1996). The Reformation. Fortress Press. ISBN 978-0-8006-2836-9.
  7. ^ "Chronik von St. Peter zu Erfurt" (in Germa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4 October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