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티 파올리
Beati Paoli비티 파올리는 중세 시칠리아에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비밀스러운 종파의 이름이다. 작가 루이지 나톨리가 1909년 윌리엄 갈트(William Galt)라는 가명으로 연재한 후 1921년과 1949년에 책으로 재간행한 그의 역사소설 'I Beati Paoli'에서 설명한 이 종파는 가난한 자와 평민을 위해 싸우는 기사들의 질서를 닮았다.[1] 소설이 허구적인 반면, 시칠리아의 역사는 비티 파올리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몇 가지 증거를 가지고 있다.
1071년 시칠리아에서는 노르만 영주 로저 2세 데 오뜨빌에 의해 봉건주의가 도입되었다.[2] 앞으로 수세기 동안 귀족들이 봉건적 권리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종교재판도 시칠리아에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국가나 교회가 반역이나 이단으로 해석할 수 있는 평민들의 어떤 행동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그러한 행동은 현재 국가/교회 정권을 지지하는 것 외에 다른 목표를 가진 무허가 집회 또는 사회의 형성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비록 비밀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명령과 종파가 존재하게 되었다. 비티 파올리는 교회와 국가 모두를 반대하기 위해 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권이 제기한 침해로부터 평민들을 옹호하고 있다.[1] 그들은 검은 후드가 달린 코트를 입고 팔레르모의 유골과 지하 통로에서 피신해 밤에도 영업을 했다. 비티 파올리가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루이지 나톨리의 소설은 17세기 파올리 마을에서 그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이름의 유래도 알 수 없으나 일부는 파올라 성 프란치스코, 즉 비토 파올라에 묶기도 한다.[1]
비티 파올리는 많은 시칠리아인들에게 로빈 후드가 북유럽인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광장과 거리, 그리고 식당의 이름이 새겨진 팔레르모 카포 지구에서 비티 파올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마피아의 전임자들?
시칠리아에서는 비티 파올리가 마피아의 원생적 매니페스트로서 대중적 상상력과 마피아 집단의 이념에서 모두 보여지게 되었다.[3] 시칠리아 마피오시는 비티 파올리의 후계자로 자신을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며, 코사 노스트라는 그 종파의 기원을 추적하기를 좋아한다. 이 소설은 오늘날 마피아 문화에서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 주인공들은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마피아적 태도와 행동의 모델이다. 법정에서의 첫 대결 중 하나로, 상사의 마피아 보스 토트 리나와 턴코트(펜티토) 가스파레 무톨로가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언급하며 맞섰다.[4] 또 다른 펜티토인 안토니오 칼데론은 코사 노스트라에서 마피오소가 "비티 파올리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5]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참조
인용된 작품
- 감베타, 디에고(1993) 시칠리아 마피아: 런던의 개인 보호 사업: 하버드 대학 출판부, ISBN0-674-80742-1
- 파올리, 레티지아(2003년). 마피아 브라더스: 조직범죄, 이탈리아 스타일, 뉴욕: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 ISBN 0-19-515724-9
- 파올리, 레티지아(2004년). "이탈리아의 조직범죄: 마피아와 불법시장 – 예외와 정규성" (에드스)의 Cyrille Fijnaut & Letizia Paoli (eds). 유럽에서 조직된 범죄: 유럽 연합과 그 이상의 개념, 패턴 및 통제 정책 네덜란드, 노웰, MA: 스프링거. ISBN 1-4020-2615-3
- 찰스 윌리엄 헤케트혼, 1897년 모든 시대와 국가의 비밀 협회, 169-171페이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