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마이애미 허리케인스 축구팀은 2001년 NCAA 디비전 I-A 축구 시즌 동안 마이애미 대학을 대표했다. 허리케인의 축구 76번째 시즌이자 빅이스트 컨퍼런스 멤버로는 11번째였다. 허리케인은 래리 코커 1년차 감독이 이끌었고 오렌지볼에서 홈경기를 치렀다. 그들은 이번 시즌을 종합 12-0, 빅 이스트에서 7-0으로 마무리하며 컨퍼런스 챔피언으로 마쳤다. 이들은 BCS 내셔널 챔피언십게임(National Championship Game) 역할을 한 로즈볼에 초청돼 37-14로 네브라스카를 꺾고 학교 5회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결국, 38개의 기록적인 NFL 드래프트를 생산한 2001년 허리케인은 많은 대학 축구팀들에 의해 사상 최고의 축구팀으로 여겨지고 있다.[1][2][3]
2000년에 마이애미는 BCS 컴퓨터에 의해 오렌지 보울BCS 내셔널 챔피언십 게임에서 제외되었다. 그 시즌에 마이애미가 플로리다 주를 정면으로 누르고 두 사람의 여론조사에서 모두 높은 순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BCS 컴퓨터가 오클라호마 순어스에게 전국 우승을 도전하기 위해 선택된 것은 마이애미가 아닌 플로리다 주였다(오클라호마, 13–2). 마이애미가 15번 워싱턴에 34-29로 패한 반면 세미놀즈의 단독 패배는 3번으로 미국 7위 팀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애미는 그들이 잠재적 전국대회에서의 슛을 빼앗겼다고 믿으며 씁쓸한 실망감을 남겼다. 그 비수기 때, 그 팀은 완벽한 12 대 0으로 이 문제를 완전히 컴퓨터의 재량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새 감독인 래리 코커 밑에서 그렇게 해야 했는데, 그는 부치 데이비스가 NFL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감독이 되기 위해 떠난 후 감독직에 임명되었다.
허리케인은 비버 스타디움에서 열린 펜 스테이트와의 경기에서 전국적으로 TV로 중계된 황금시간대 승리로 시즌을 시작했다. 30-0으로 앞선 하프타임 마이애미에서 코커는 선발로 나섰고 마이애미는 후반전에 순항하며 33-7로 승리했다. 이 26점 차로 펜실베이니아 주 최악의 홈 패배는 조 패터노에 의해 동점이 되었다.
마이애미는 보스턴 칼리지 이글스를 9-0으로 앞서며 출발했지만 도시가 네 차례나 가로채기를 하며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몸부림치자 마이애미의 공격이 스퍼지기 시작했다. 허리케인 방어는 BC를 단지 7점으로 제한함으로써 느슨한 상황을 만회했다. 하지만 4쿼터 막판 마이애미가 12-7로 앞선 상황에서 BC 쿼터백 브라이언 세인트. 피에르는 30야드 라인부터 허리케인 9야드 라인까지 이글스를 이끌었다. BC가 중대한 반전을 눈앞에 둔 가운데 세인트피에르는 마이애미 2야드 라인에서 리시버 라이언 리드에게 패스를 시도했다. 그러나 볼이 마이애미 코너백마이크 럼프의 다리에 맞고 튀어 나와 수비 끝인 맷 월터스 손에 넘어갔다. 월터스는 10야드를 달려 마이애미 20야드 부근에서 에드 리드가 공을 두 손으로 잡고 남은 80야드를 터치다운으로 질주했다. 마이애미가 18-7로 이겼다.[11]
로즈볼BCS 내셔널 챔피언십 게임의 마지막 장애물은 버지니아 공대였다. 마이애미는 초반에 버지니아 공대에 올라 하프타임 때 20 대 3으로 앞서고 4쿼터에는 26 대 10으로 앞섰다. 그러나 허리케인에 의해 134야드 차이로 앞서고 소유 시간에 지배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호키족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공대 터치다운과 2점 변환으로 마이애미의 리드를 26-18로 꺾은 후 호키스는 마이애미 펀트를 막아내고 또 한 점 차로 돌려줘 마이애미의 리드를 단 2점으로 줄였다. 그러나 버지니아 공대 2학년 어니스트 윌포드는 또 다른 2점 변환으로 동점을 만들 기회를 얻으면서 엔드존에서 패스를 떨어뜨렸다. 그래도 회복력이 좋은 호키스는 미드필드에서의 볼을 점유하고 선두에 오르기 위해서는 필드골만 필요하며 뒤늦게 한 번 더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에드 리드가 다이빙을 하며 경기를 살린 가로채기로 마이애미팀은 26-24로 승리했다.[14] 버지니아 공대를 꺾으면서, 1위 허리케인은 전국 챔피언쉽을 위해 BCS #2 네브라스카를 차지하기 위한 로즈 볼 초대장을 받았다.
네브라스카는 전반 37-14로 앞서던 마이애미와의 경기에서 34-0으로 앞서고 있다.[15] 마이애미는 지난 18년 동안 다섯 번째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완벽한 12-0 시즌에 마무리를 지었다. 도시는 362야드, 터치다운 3개를 통과했고 와이드 리시버 안드레 존슨은 199야드, 터치다운 2개를 위해 7개의 패스를 잡았다. 한편, 숨막히는 마이애미 수비는 헤이스만 우승자인 에릭 크라우치를 막아냈고 허스커스는 옵션 공격을 자랑하며 네브라스카를 시즌 평균보다 200야드 낮게 잡았다. Dorsey와 Johnson은 Rose Bowl의 공동 Most Value Player로 선정되었다.
2001년 마이애미 허리케인은 일부 전문가와 역사학자에 의해 대학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으로 여겨진다.[1] 허리케인은 512점(경기당 42.6점)을 기록한 반면 117점(경기당 9.75점 허용)에 그쳤다. 마이애미는 학교 역사상 가장 큰 점수인 경기당 평균 32.9점 차로 상대를 제압하고 NCAA 기록을 세우며 연속 랭킹 팀(124-7)을 제치고 가장 큰 승률을 기록했다.[17] 공격은 학교 득점 기록을 세웠고, 수비는 득점 방어(최악의 점수 허용), 패스 수비, 이직률 마진에서 한국을 이끌었다.[17] 게다가, 허리케인 방어는 자체 8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맥스웰상 수상자, 켄 도시, 아웃랜드 트로피 수상자 브라이언트 맥키니 등 6명이 올아메리칸(All-American)의 지위를 획득했고 6명이 최종 후보선수였다. Dorsey 또한 Heisman 결승전 진출자로 3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38명의 팀원이 NFL 드래프트에서 선발될 것이다. As of 2013, they had earned a combined total of 43 trips to the Pro Bowl: Ed Reed (9), Andre Johnson (7), Frank Gore (5), Vince Wilfork (5), Jeremy Shockey (4), Jonathan Vilma (3), Willis McGahee (2), Chris Myers (2), Clinton Portis (2), Antrel Rolle (2), Sean Taylor (2), Bryant McKinnie (1), and Kellen Winslow II (1). 이 외에도 빌마, 쇼키, 윌포크, 요셉, 롤, 맥키니, 리드가 슈퍼볼에서 우승했다. 2001년 허리케인은 빠르면 2009년에 NFL 팀으로서 거의 1억 2천만 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었다.
ESPN의 스포츠센터는 2006년 로즈볼에 앞서 맷 레이나트, 레지 부시, 렌데일 화이트가 이끄는 2005 USC 트로이잔스를 ESPN.com에서 투표한 스포츠 팬들이 뽑은 지난 50년 동안 최고의 대학 팀과 비교한 특집을 운영해 그들의 역사를 결정지었다. 2001년 마이애미 허리케인은 대학 축구계에서 2001년 허리케인이 갖는 존경을 반영하듯, 팬들이 뽑은 유일한 '05년 트로이팀'을 물리친 팀이었다.[18]
그 팀의 1번, 2번, 3번 연속 러닝백은 후에 NFL에서의 출발과 함께 역주행이 되었는데, 이것은 적어도 다섯 번밖에 하지 않은 성과였다. 2010년, 2012년, 2013년, 2014년 앨라배마 크림슨 타이드 축구팀과 2012년 위스콘신 배저스 축구팀이 달성했다. 그들은 1번, 2번, 3번, 4번 모두 나중에 NFL에서 출발하면서 러닝백이 되는 유일한 팀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