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 2004년
2004 in sumo다음은 2004년 프로스모에서의 행사들이다.
토너먼트
- 1월 11~25일 도쿄 료고쿠 고쿠기칸 하쓰바쇼
- 오사카 부립 체육관 하루바쇼, 3월 14-28일
- 5월 9-23일 도쿄 료고쿠 고쿠기칸 나쓰바쇼
- 나고야 바쇼, 아이치 현립 체육관, 나고야, 7월 4-18일
- 9월 12~26일 도쿄 료고쿠 고쿠기칸 아키바쇼
- 규슈 바쇼, 후쿠오카 국제 센터, 11월 14-28일
뉴스
1월
- 상위부문은 1991년 1월 이후 처음으로 40개에서 42개로 늘어난다.두 번째로 높은 주교 부문은 26개에서 28개로 늘어난다.
- 도쿄 하쓰바쇼에서 생애 첫 무패 유쇼를 달성한 아사쇼류 요코즈나가 통산 5번째 우승컵을 안는다.준우승자는 전 세이키와이케 고토미츠키로, 일시적으로 매가시라 순위에 떨어졌지만 13-2의 좋은 성적을 내고 투지상을 수상한다.가키조는 11승을 거두며 처음으로 기술상과 산야쿠 서열로 승급한다.이전 대회에서 우승한 뒤 요코즈나 승격을 기대했던 오제키 토치아즈마는 9-6으로 아쉬운 성적만 낼 수 있다.전 코무스비 와카노야마가 주교부 대회에서 우승한다.마쿠시타 챔피언십은 17세의 하기와라(지금의 키세노사토)가 7-0으로 완승을 거두고 있다.은퇴를 선언하는 것은 38세의 아르헨티나 호시탕고와 39세의 무쓰호카이 등 전직 코무스비 오기니시키와 전직 주교 참전용사 2명이다.
- 아키노시마 세키와키 전 코무스비 다이젠의 은퇴식은 코쿠기칸에서 열린다.
2월
- 이전에는 후지시마 마구간으로 알려진 후타고야마 마구간의 대표였던 오제키 다카노하나 켄시(田中野一郞)는 건강 악화로 물러나고, 아들 다카노하나코지에게 통제권을 넘겨주고, 다카노하나 마구간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 전 세키와케 테라오는 이즈쓰 마구간에서 분점하여, 독자적인 시코로야마 마구간을 연다.
- 스모 협회는 14일과 15일 서울에서, 18일에는 부산을 방문하는 등 한국에서 전시 대회를 연다.전직 최고 부류 레슬링 선수인 카스가오는 한국 출신으로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다.아사쇼류 전시회에서 우승하다.
3월
- 오사카 하루바쇼에서 아사쇼리우 감독은 15-0으로 앞선 두 번째 우승컵을 세우며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했다.그의 연승은 현재 30경기다.오제키 카이오와 치요타이카이 둘 다 훌륭한 토너먼트를 가지고 있고 13-2로 준우승을 차지했다.이와는 대조적으로 토치아즈마는 이틀 만에 퇴장한다.강등 위기에 몰렸던 4번 오제키 무소야마는 9-6으로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매가시라 12 아사세키류(Asasekiryu)는 13-2로 3번째 준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성과와 기술로 2개의 특별상을 수상한다.전 세키와케 고토노와카(당시 36세)는 11경기와 4번째 투지상을 수상한다.몽골 하쿠호는 하야테우미와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주교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여 마쿠우치 1부 리그로 승격한다.불가리아 고토오슈는 7-0으로 마쿠시타 챔피언쉽에서 우승하여 하기와라, 도요노시마와 함께 주교로 승격된다.
- 구 세키와케 쿠로히메야마가 운영하는 다케쿠마 마구간은 문을 닫는다.유일한 레슬링 선수(아들 하구로쿠니)가 은퇴하기 때문이다.다케쿠마는 토모즈나 마구간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향후 언젠가 다시 마구간을 열 수도 있다고 말한다.
5월
- 도쿄의 나쓰에 바쇼에서 아사쇼리우의 연승은 요코즈나를 한 번도 꺾어 본 적이 없는 매가시라 호쿠토리키에 의해 35세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호쿠토리키는 토너먼트가 끝날 때까지 우승을 놓고 계속 다투고 있다.아사쇼류보다 1승 앞선 13-1일 15일차에 들어선 그는 하쿠호(데뷔 톱 디비전 토너먼트 12승3패 투혼상)에게 패해 이후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아사쇼류에게 플레이오프를 빼앗기고 통산 7번째 우승이다.호쿠토리키는 뛰어난 성과와 기술상을 받는다.토치아즈마는 여전히 출전할 수 없어 오제키 지위를 잃는다.지난 4년 대부분 동안 매가시라 계급에서 싸워온 베테랑 전직 오제키 다카노나미는 은퇴를 선언하고, 새로 개명한 다카노하나를 세키토리 계급 레슬링 선수도 없이 안정적으로 남겨둔다.지난 2년간 마쿠시타 사단에 있던 전 코무스비 하마노시마와 조니단 사단에까지 떨어진 전 마쿠시라 와카노조도 은퇴한다.몽골 토키텐쿠가 주교부 우승을 차지하다.두 명의 에스토니아 레슬링 선수인 바루토와 기타오지가 프로 데뷔전을 치른다.(키타오지는 3개 대회만 끝나면 그만둔다.)
7월
- 나고야 바쇼에서 아사쇼루는 13-2로 4번째 유쇼를 연달아 가져간다.그의 우승에는 8일 고토노와카와의 1차전에서 패전 직전까지 간 뒤 재대결에서 비범한 승리가 포함돼 있다.[1]준우승은 각각 12-3으로 득점한 미야비야마와 도요자쿠라다.도요자쿠라는 투지상을 수상한다(이번에 다른 상은 수여되지 않는다).카이오가 11 대 4로 득점하다.토치아즈마는 미에노우미, 다카노나미, 무소야마에 이어 네 번째로 보우트 10승을 거두며 오제키 순위를 되찾는다.지난 5월 좋은 성적을 거둔 뒤 세키와케로 승격한 호쿠토리키는 겨우 3승을 챙길 뿐이다.고토우슈는 13-2로 주교 챔피언쉽에서 우승하여 최고 부서에 승진을 한다.
8월
- 전 배심원 레슬링 선수 가네치카가 미야기노 마구간을 이어받아 부코치로 남아 있는 하쿠호의 멘토 지쿠바야마 전 마에가시라 씨를 대신한다.새로 온 미야기노 오야카타는 키타노우미 마구간을 위해 씨름해 온 마굿간과는 인연이 없지만, 이전 마굿간장의 미망인에게 입양되었다.
9월
- 도쿄 아키바쇼에서는 아사쇼리우 감독이 9-6으로 부진한 기록을 세우고 카이오가 13-2로 통산 5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2004년 대회 전승의 기회가 무산된다.아사쇼리우의 평범했던 연기는 8월 31일 결혼 피로연으로 인해 훈련 부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토치노나다와 교큐슈잔이 11-4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토치노나다가 우수 공연상을 받았고, 로호와 고토노와카가 각각 10점을 받아 투지상을 공유한다.무소야마와 토치아즈마는 둘 다 부상으로 중퇴하고 11월에 카도반이 된다.아마는 11 대 4로 주교 챔피언쉽에서 우승한다.다마스카는 7-0 완벽한 기록으로 마쿠시타 타이틀을 따내 처음으로 세키토리 랭킹에 오른다.하기와라는 아마와 함께 최고 사단으로 승격되어 키세노사토로 이름을 바꾼다.18세 3개월의 나이로 다카노하나 2세 이후 두 번째로 젊은 나이에 이 일을 달성한다.
- 카스가노 마구간의 전 세키와케 마스다야마는 자신의 치간노우라 마구간을 열기 위해 떠난다.
10월
11월
- 규슈 바쇼에서 아사쇼류 선수는 통산 9번째인 13 대 2의 우승으로 돌아온다.케이오는 요코즈나로 승격하기 위해 13승이 필요했지만 개막 당일 코토미츠키에게 패한 뒤 10일 하쿠호, 12일 미야비야마에게 1승 모자라는 12승3패의 고향 대회 준우승만 챙길 수 있다.무소야마는 3일에 은퇴를 선언하고, 토치아즈마는 6일에 탈퇴한 후 다시 한 번 강등되어 카이오와 치요타이카이만이 유일한 오제키로 남게 된다.마에가시라 1 하쿠호는 카이오와 나란히 준우승하여 우수 공연상을 수상한다.세키와케 와카노사토는 인상적인 11-4를 기록, 테크닉 어워드를 수상한다.투지 상은 두 번째 마쿠우치 대회에서도 11승을 거둔 코투슈에게 돌아간다.이시데는 법요 대회에서 우승한다.옛 매가시라 오이카리는 은퇴한다.
죽음
- 2월 29일 제42대 요코즈나 카가미사토, 80세.
- 8월 7일:요시무라 류타는 17세의 나이로 타고노우라 마구간의 레슬링 선수로서, 명예 훼손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다.
- 10월 16일:다카노하나 마구간의 마쿠시타 씨름선수 나카부치 코이치(32)는 심부전증 환자다.
참고 항목
참조
- ^ "Pair remain tied for lead at Nagoya basho". Japan Times. 12 July 2004. Retrieved 5 May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