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아몰 봉기
1982 Amol uprising아몰 봉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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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 통합의 일부 | |||||||
1982년 아몰에 총탄 구멍이 난 건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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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성 | |||||||
이란 | 이란 공산주의자 연합 | ||||||
지휘관과 지도자 | |||||||
나세르 샤바니[1] | 카크 이스마일 | ||||||
힘 | |||||||
알 수 없는 | ~100 | ||||||
사상자 및 손실 | |||||||
40–200명 사망 | 40–100명 사망 |
1982년 아몰 봉기는 마오쩌둥 조직인 이란 공산주의 연합(사르베다란)이 이란 정부에 대항한 무장 봉기였다.
배경
이란 공산주의자 연합(사르베다란)이나 간단히 말해서 UIC(스)는 인민들의 전쟁을 투쟁의 노선으로 채택한 마오주의 단체였다. 아몰 현은 UIC(미국)에 의해 혁명 거점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역사
1982년은 UIC의 역사와 이란에서 일반적으로 마오이즘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해였다. 올해 UIC는 아몰 주변의 숲에서 병력을 동원하여 이슬람 공화국에 대항하는 무장 운동을 전개했다. 1982년 1월 25일 시아막 자임(Siamak Zaim)이 이끄는 봉기를 조직하였다. 그 봉기는 결국 실패였고 많은 UIC와 마오쩌둥 지도자들이 총에 맞았다. 자임은 아몰을 무력으로 탈환한 후 혁명수비대에 체포되었고, 결국 1984년 반딧불 종식을 도운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처형되었다.
여파
봉기가 실패한 후, 대부분의 지도부와 회원들이 체포되거나 살해되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또한 여러 가지 이론적, 정치적 위기를 경험했다.
문화에서
리틀 블랙 피쉬(페르시아어: ماهییههه)))))))는 아몰 봉기에 관한 이란의 마지드 에스마일리 파르사의 2014년 이란 영화다.
참고 항목
참조
- ^ "پیشنهاد آیتالله جوادیآملی ورق را برگرداند". farsi.khamenei.ir. Retrieved 11 February 2021.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