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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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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허정무<br/>(許丁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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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Huh Jung-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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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許丁茂, [[1955년]] [[1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및 현 지도자이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허접무'''(許丁茂, [[1955년]] [[1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및 현 지도자이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 개요 ==
== 개요 ==
[[전라남도]] [[진도군]] 출생으로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활약할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이 허정무의 이름을 네덜란드식으로 읽어 '융무 후(Jung-Moo Huh)'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고향이 '[[진도군]]'인 점과 포기할 줄 모르는 끈질긴 승부근성과 투지에 착안하여 '진돗개'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전라남도]] [[진도군]] 출생으로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활약할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이 허접무의 이름을 네덜란드식으로 읽어 '윱무 후(Jup-Moo Huh)'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고향이 '[[진도군]]'인 점과 포기할 줄 모르는 끈질긴 승부근성과 투지에 착안하여 '진돗개새끼'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 축구인 생활 ==
== 축구인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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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포항 스틸러스|포항 아톰즈]] 감독에 취임하여 그 해 [[아디다스 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5년]] 시즌 도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지만, 그 해 다시 [[K-리그]]로 복귀하여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97년]]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대한민국)|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1998년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도 함께 맡게 되었다.
[[1993년]] [[포항 스틸러스|포항 아톰즈]] 감독에 취임하여 그 해 [[아디다스 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5년]] 시즌 도중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지만, 그 해 다시 [[K-리그]]로 복귀하여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97년]]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대한민국)|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1998년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도 함께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인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035852& 허정무축구감독, 사퇴의사 표명 ]</ref>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정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인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035852& 허접무축구감독, 사퇴의사 표명 ]</ref>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접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


==== 2000년 이후 ====
==== 2000년 이후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43001& 허정무 '히딩크호' 기술자문 ]</ref> 그 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에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ref>[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7&key=200406252221015685 허정무, 수석코치 선정! ]</ref> 하지만 그해 말에 수석코치를 사임하였고,<ref>[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947&content_id=895 한국대표팀 허정무 수석코치, 사퇴 발표 ]</ref>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하여 7년 만에 복귀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33414 허정무, 6년 만에 전남 감독 복귀 확정 ]</ref>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으며,<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627 후기리그 첫 승,허정무 감독 개인통산 100승 달성! ]</ref> [[2006년]]과 [[2007년]] 팀의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를 이끌었고,<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61203182418 허정무 감독, "이관우-김대의 봉쇄 적중했다" ]</ref><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71202182338 승장 허정무 감독, '분석의 힘으로 우승' ]</ref> [[2006년]] [[FA컵 (대한민국)|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36746 전남 김효일 'FA컵 MVP', 허정무 감독 '최우수 감독' ]</ref>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되어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러]], [[딕 아드보카트]]와 [[핌 페르베이크]]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71207101137 대표팀 신임 감독에 허정무 감독 확정 ]</ref>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43001& 허정무 '히딩크호' 기술자문 ]</ref> 그 뒤 [[2004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에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ref>[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107&key=200406252221015685 허접무, 수석코치 선정! ]</ref> 하지만 그해 말에 수석코치를 사임하였고,<ref>[http://planning.kfa.or.kr/news/old_news_kfa_content.asp?idx=947&content_id=895 한국대표팀 허접무 수석코치, 사퇴 발표 ]</ref>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하여 7년 만에 복귀하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33414 허정무, 6년 만에 전남 감독 복귀 확정 ]</ref>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으며,<ref>[http://www.dragons.co.kr/news/news.asp?mode=view&category=&boardcode=tb_board_news&idx=6627 후기리그 첫 승,허정무 감독 개인통산 100승 달성! ]</ref> [[2006년]]과 [[2007년]] 팀의 [[FA컵 (대한민국)|FA컵]] 2연패를 이끌었고,<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61203182418 허정무 감독, "이관우-김대의 봉쇄 적중했다" ]</ref><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71202182338 승장 허정무 감독, '분석의 힘으로 우승' ]</ref> [[2006년]] [[FA컵 (대한민국)|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236746 전남 김효일 'FA컵 MVP', 허정무 감독 '최우수 감독' ]</ref>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되어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와 [[요하네스 본프레러]], [[딕 아드보카트]]와 [[핌 페르베이크]]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ref>[http://www.sportalkorea.com/news/korea/view.php?gisa_uniq=20071207101137 대표팀 신임 감독에 허정무 감독 확정 ]</ref>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하게 된 허정무는 "축구 인생을 걸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2010년 FIFA 월드컵|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은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아시아 3차 예선]]과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최종예선]]을 거치게 되었는데, 3차 예선 첫 경기인 투르크메니스탄전을 4:0 승리로 장식하면서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원정경기에서 득점없이 0:0 무승부를 거두고, 요르단과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는 무기력한 경기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요르단/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각각 1:0/3:1 승리를 거두고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3승 3무, 3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하였다.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하게 된 허접무는 "축구 인생을 걸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2010년 FIFA 월드컵|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은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아시아 3차 예선]]과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최종예선]]을 거치게 되었는데, 3차 예선 첫 경기인 투르크메니스탄전을 4:0 승리로 장식하면서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원정경기에서 득점없이 0:0 무승부를 거두고, 요르단과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는 무기력한 경기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요르단/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각각 1:0/3:1 승리를 거두고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3승 3무, 3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2008년 6월 27일에 발표된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최종예선]] 조편성은 험난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은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3차예선에서 맞붙었던 북한, 그리고 중동의 복병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와 B조에 편성되었고, 이는 곧 아시아 최종예선 죽음의 조가 된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1989년 이후 19년간 이긴 적이 없는 까다로운 상대였고 이란 역시 상대전적에서 호각세를 이루는 까다로운 상대인데다 북한은 3차 예선에서만 2경기 연속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 힘든 상대였기에, 과연 허정무호가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2008년 6월 27일에 발표된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최종예선]] 조편성은 험난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은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3차예선에서 맞붙었던 북한, 그리고 중동의 복병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와 B조에 편성되었고, 이는 곧 아시아 최종예선 죽음의 조가 된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1989년 이후 19년간 이긴 적이 없는 까다로운 상대였고 이란 역시 상대전적에서 호각세를 이루는 까다로운 상대인데다 북한은 3차 예선에서만 2경기 연속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 힘든 상대였기에, 과연 허접무호가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첫 경기는 북한과의 원정경기였다. 전반을 무득점으로 마치고 후반 20분 북한의 [[홍영조]]에게 페널티킥을 내줘 패배의 불길함이 감돌았지만 허정무 감독이 발탁한 신예 [[기성용]]이 불과 4분만에 동점골을 넣어 1:1로 경기가 끝났다. 이후 UAE와의 홈경기에서는 4:1의 대승을 거뒀고, 첫 번째 난관이 허정무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2008년 11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 경기였다. 그러나 전반을 잘 막아낸 대표팀은 후반 32분 [[이근호 (축구 선수)|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를 풀어나갔고 후반 46분에는 [[박주영]]이 쐐기골까지 넣으며 마침내 19년 무승 징크스를 깨고 2승 1무로 조1위를 달리게 되었다.
첫 경기는 북한과의 원정경기였다. 전반을 무득점으로 마치고 후반 20분 북한의 [[홍영조]]에게 페널티킥을 내줘 패배의 불길함이 감돌았지만 허접무 감독이 발탁한 신예 [[기성용]]이 불과 4분만에 동점골을 넣어 1:1로 경기가 끝났다. 이후 UAE와의 홈경기에서는 4:1의 대승을 거뒀고, 첫 번째 난관이 허정무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2008년 11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 경기였다. 그러나 전반을 잘 막아낸 대표팀은 후반 32분 [[이근호 (축구 선수)|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를 풀어나갔고 후반 46분에는 [[박주영]]이 쐐기골까지 넣으며 마침내 19년 무승 징크스를 깨고 2승 1무로 조1위를 달리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을 잘 마무리한 허정무호는 2009년 2월 11일 두 번째 난관인 이란 테헤란 원정 경기를 맞이하였다. 전반에 잘 싸우고도 후반 15분 [[자바드 네쿠남]]에게 프리킥골을 허용했지만 21분후인 후반 36분 [[박지성]]이 동점골을 넣어 1:1 무승부를 기록, '원정팀의 지옥'이라는 테헤란에서 한숨을 돌렸다. 이후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김치우]]의 후반 42분 결승골로 1:0의 승리를 거둬 마침내 무승부 사슬을 끊었고, 6월 6일 UAE와의 원정 경기에서 2:0의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2010년 FIFA 월드컵|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7연속 본선 진출을 달성하였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록일뿐만 아니라, 죽음의 B조에서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조1위를 고수하는 기분좋은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을 잘 마무리한 허접무호는 2009년 2월 11일 두 번째 난관인 이란 테헤란 원정 경기를 맞이하였다. 전반에 잘 싸우고도 후반 15분 [[자바드 네쿠남]]에게 프리킥골을 허용했지만 21분후인 후반 36분 [[박지성]]이 동점골을 넣어 1:1 무승부를 기록, '원정팀의 지옥'이라는 테헤란에서 한숨을 돌렸다. 이후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김치우]]의 후반 42분 결승골로 1:0의 승리를 거둬 마침내 무승부 사슬을 끊었고, 6월 6일 UAE와의 원정 경기에서 2:0의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2010년 FIFA 월드컵|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7연속 본선 진출을 달성하였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록일뿐만 아니라, 죽음의 B조에서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조1위를 고수하는 기분좋은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허정무호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이란과의 홈경기에서는 후반 6분 쇼자에이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36분 [[박지성]]이 동점골을 기록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허정무호는 최종예선에서 4승 4무 B조 1위로 무패 본선진출의 신화를 달성하였다.
이후 허접무호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이란과의 홈경기에서는 후반 6분 쇼자에이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36분 [[박지성]]이 동점골을 기록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허정무호는 최종예선에서 4승 4무 B조 1위로 무패 본선진출의 신화를 달성하였다.


특히 이란과의 무승부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의 감독으로 부임한 前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코치 [[압신 고트비]]가 본선 진출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상황에서 일격을 가해 사실상 이란의 본선 진출 가능성을 좌절시킨 한판임과 동시에, 몇시간후 벌어질 북한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 한줄기 희망을 던져준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와 0:0으로 비겨 B조 2위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특히 이란과의 무승부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의 감독으로 부임한 前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코치 [[압신 고트비]]가 본선 진출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상황에서 일격을 가해 사실상 이란의 본선 진출 가능성을 좌절시킨 한판임과 동시에, 몇시간후 벌어질 북한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 한줄기 희망을 던져준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와 0:0으로 비겨 B조 2위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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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초 [[KBS]]의 축구 해설 위원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002년]] 월드컵 때 [[KBS]]의 주요 경기 해설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74838& 허정무 전감독 해설가 데뷔 ]</ref>
[[2001년]] 초 [[KBS]]의 축구 해설 위원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002년]] 월드컵 때 [[KBS]]의 주요 경기 해설을 맡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74838& 허정무 전감독 해설가 데뷔 ]</ref>


[[2005년]], [[전라남도]]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504151306240500 허정무 감독, 전라남도 홍보대사 위촉 ]</ref>
[[2005년]], [[전라남도]]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504151306240500 허접무 감독, 전라남도 홍보대사 위촉 ]</ref>


== 경력 ==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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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 바깥 고리 ==
* [http://www.soccer4u.co.kr/hjmoo.htm 허정무 감독 약력]
* [http://www.soccer4u.co.kr/hjmoo.htm 허접무 감독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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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uh Jung-Moo]]
[[ro:Huh Jup-Moo]]
[[zh:許丁茂]]
[[zh:許丁茂]]

2010년 6월 21일 (월) 10:23 판

허접무
(許丁茂)
개인 정보
로마자 표기 Huh Jup-Moo
출생일 1955년 1월 13일(1955-01-13)(69세)
출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174cm
포지션 감독 (과거 미드필더)
구단 정보
현 소속팀 대한민국 대한민국
청소년 구단 기록
연세대학교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78-1980
1978-1980
1980-1983
1984-1986
대한민국 한국 전력 (아마추어)
대한민국 해군 (군복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대한민국 현대 호랑이


77 (15)
36 0(4)
국가대표팀 기록
1974-1986 대한민국 84 (25)
지도자 기록
1989-1990
1991-1992
1993
1993-1995
1993-1994
1995
1995-1998
1998-2000
2004
2005-2007
2007-
대한민국 대한민국 (트레이너)
대한민국 포항 제철 아톰즈 (코치)
대한민국 현대 호랑이 (코치)
대한민국 포항 아톰즈
대한민국 대한민국 (코치)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전남 드래곤즈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코치)
대한민국 전남 드래곤즈
대한민국 대한민국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허접무(許丁茂, 1955년 1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및 현 지도자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개요

전라남도 진도군 출생으로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서 활약할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이 허접무의 이름을 네덜란드식으로 읽어 '윱무 후(Jup-Moo Huh)'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고향이 '진도군'인 점과 포기할 줄 모르는 끈질긴 승부근성과 투지에 착안하여 '진돗개새끼'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축구인 생활

선수 생활

1978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한국 전력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고, 곧바로 해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차범근1979년 7월 독일 분데스리가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1980년 7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하였다. 팀 적응기인 반년 정도 교체 멤버로 뛰다가 그 뒤로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였고, 주로 미드필더로 뛰면서 3시즌 동안 77경기에서 15골을 넣고 1982-83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부인 문제로 인해 1983년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다. 1984년 K-리그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고, 1986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국가 대표 생활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본선 1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끈질기게 마크하였는데 이때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 마라도나가 그라운드에 나뒹굴게 되자 한국 축구는 '태권축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또한 본선 3차전 이탈리아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A매치 84경기에서 25골을 넣었다.

지도자 생활

2000년 이전

1991년포항 제철 아톰즈에 코치로 입단하여 활동하다 1993년 현대 호랑이로 옮겼다. 1990년 FIFA 월드컵에는 트레이너, 1994년 FIFA 월드컵에는 코치로서 각각 참가하였다.

1993년 포항 아톰즈 감독에 취임하여 그 해 아디다스 컵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5년 시즌 도중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지만, 그 해 다시 K-리그로 복귀하여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97년 팀의 K-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었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98년 시즌 도중에 1998년 FIFA 월드컵 도중 경질된 차범근 감독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 국가대표팀도 함께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2승 1패를 올리고도 첫 경기였던 스페인전을 0 : 3으로 패한데 따른 후유증 (골득실차)으로 인해 8강 진출에 실패하고, 레바논에서 열린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해 3위에 머무르면서 2000년 10월 감독직을 사퇴하였다.[1] 이후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하면서 7년여에 걸쳐 외국인 감독 체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허접무 감독이 팬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발탁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2000년 하계 올림픽에서 얻은 2승 1패라는 성적은 역대 대한민국이 얻은 승점 중에 가장 높은 점수라는 데 의의가 있다.

2000년 이후

국가대표팀 사퇴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에 대비해 대한축구협회 기술 고문을 맡았다.[2] 그 뒤 2004년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 해 6월에 요하네스 본프레러 감독이 취임한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3] 하지만 그해 말에 수석코치를 사임하였고,[4] 예전에 지휘봉을 잡았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에 다시 취임하여 7년 만에 복귀하였다.[5] 2006년 8월 30일 K-리그 통산 9번째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으며,[6] 2006년2007년 팀의 FA컵 2연패를 이끌었고,[7][8] 2006년 FA컵 당시에는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9] 그 능력을 인정받아 핌 페르베이크 감독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에 다시 선임되어 거스 히딩크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요하네스 본프레러, 딕 아드보카트핌 페르베이크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7년여에 걸쳐 외국인 사령탑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10]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하게 된 허접무는 "축구 인생을 걸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아시아 3차 예선최종예선을 거치게 되었는데, 3차 예선 첫 경기인 투르크메니스탄전을 4:0 승리로 장식하면서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원정경기에서 득점없이 0:0 무승부를 거두고, 요르단과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두는 무기력한 경기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요르단/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각각 1:0/3:1 승리를 거두고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3승 3무, 3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2008년 6월 27일에 발표된 최종예선 조편성은 험난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은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3차예선에서 맞붙었던 북한, 그리고 중동의 복병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와 B조에 편성되었고, 이는 곧 아시아 최종예선 죽음의 조가 된 것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1989년 이후 19년간 이긴 적이 없는 까다로운 상대였고 이란 역시 상대전적에서 호각세를 이루는 까다로운 상대인데다 북한은 3차 예선에서만 2경기 연속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 힘든 상대였기에, 과연 허접무호가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첫 경기는 북한과의 원정경기였다. 전반을 무득점으로 마치고 후반 20분 북한의 홍영조에게 페널티킥을 내줘 패배의 불길함이 감돌았지만 허접무 감독이 발탁한 신예 기성용이 불과 4분만에 동점골을 넣어 1:1로 경기가 끝났다. 이후 UAE와의 홈경기에서는 4:1의 대승을 거뒀고, 첫 번째 난관이 허정무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2008년 11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 경기였다. 그러나 전반을 잘 막아낸 대표팀은 후반 32분 이근호가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를 풀어나갔고 후반 46분에는 박주영이 쐐기골까지 넣으며 마침내 19년 무승 징크스를 깨고 2승 1무로 조1위를 달리게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을 잘 마무리한 허접무호는 2009년 2월 11일 두 번째 난관인 이란 테헤란 원정 경기를 맞이하였다. 전반에 잘 싸우고도 후반 15분 자바드 네쿠남에게 프리킥골을 허용했지만 21분후인 후반 36분 박지성이 동점골을 넣어 1:1 무승부를 기록, '원정팀의 지옥'이라는 테헤란에서 한숨을 돌렸다. 이후 북한과의 홈경기에서 김치우의 후반 42분 결승골로 1:0의 승리를 거둬 마침내 무승부 사슬을 끊었고, 6월 6일 UAE와의 원정 경기에서 2:0의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7연속 본선 진출을 달성하였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록일뿐만 아니라, 죽음의 B조에서 남은 경기와 상관없이 조1위를 고수하는 기분좋은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후 허접무호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이란과의 홈경기에서는 후반 6분 쇼자에이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36분 박지성이 동점골을 기록하여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허정무호는 최종예선에서 4승 4무 B조 1위로 무패 본선진출의 신화를 달성하였다.

특히 이란과의 무승부는 이란의 감독으로 부임한 前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코치 압신 고트비가 본선 진출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상황에서 일격을 가해 사실상 이란의 본선 진출 가능성을 좌절시킨 한판임과 동시에, 몇시간후 벌어질 북한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 한줄기 희망을 던져준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사우디아라비아와 0:0으로 비겨 B조 2위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2010년 2월 10일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컵 2차전에서 중국에게 3:0으로 완패를 하면서, 중국이 32년간 이어왔던 공한증을 끊어버리게 하는 불명예 또한 갖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6월 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2010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맞서 어처구니없는 수비전술을 펼친 졸전 끝에 4-1로 패해 전국민을 실망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패배에도 굴하지 않는 투지와 근성을 자랑하는 한국 축구의 위신을 떨어뜨려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만다. 또한 조별리그 3차전의 상대인 나이지리아와의 결전을 앞에 두고 '파부침주'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하며 '비기지는 않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많는 축구팬들이 경기 관전에 앞서 파부침개와 막걸리를 찾는 기현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거 쓴 새끼 뭐임)

그 외

2001년KBS의 축구 해설 위원으로 데뷔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002년 월드컵 때 KBS의 주요 경기 해설을 맡았다.[11]

2005년, 전라남도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12]

경력

선수 경력

국가 대표 경력

지도자 경력

수상

개인

클럽

감독

주석

바깥 고리

전임
대한민국 박종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995년 8월 1일 - 1995년 8월 12일
후임
대한민국 정병탁
전임
대한민국 차범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998년 10월 14일 - 2000년 11월 13일
후임
네덜란드 거스 히딩크
전임
네덜란드 핌 페르베이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7년 12월 7일 -
후임
(현직)

틀: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