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앙투안 레오나르 드 빌레페익스
Paul-Antoine Léonard de Villefeix폴-앙투안 레오나르 드 빌레페ix OP (1728년 - 1780년[1] 출생)는 프랑스의 도미니카 신부였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첫 기독교 예배를 드렸다.[2] 그는 프랑스 항해사 겸 탐험가 장프랑수아 마리 드 서바이벌의 목사로 1769년 그의 배인 세인트 장 침례교에서 뉴질랜드 북섬을 목격했다. 드 서바이벌은 1769년 크리스마스에 빌레픽스가 뉴질랜드 해역에서 첫 미사를 지킨 곳인 왓위위시 인근 썸리스 베이에서 2주 동안 머물렀다.[3]
초년기
빌레픽스는 페리고르의 에투아스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제 중 한 명인 레오나드 드 레스탕도 성직자가 되어 자신이 에투아르의 교구 사제가 되었다.[4]
채플레인
빌레픽스는 서바이벌 가족의 초대를 받아 항해사 겸 탐험가 장프랑수아 마리 드 서바이벌호가 이끄는 세인트 진 침례호를 타고 남태평양으로 탐험을 떠났다.[4] 1769년 12월 배는 의심의 여지없이 만(灣)에 도착했고 빌레페익스 신부가 동료 선원들의 동반 없이 뭍으로 올라간 카리카리 반도의 랑기아오히아에 상륙하여 마을들 중 하나를 헤맸다.[4] 그는 의심의 여지없는 만에서 여덟 개의 장례를 주관했다. 생존유 선원의 절반 가까이가 항해 도중 사망했다. 제임스 쿡 선장과는 달리 괴혈병과 싸울 수 없었다.[1]
뉴질랜드의 첫 미사
빌레픽스는 44년 전에 새뮤얼 마스덴을 식전하면서 뉴질랜드에 발을 디딘 최초의 기독교 목사였다. 그리고 그는 뉴질랜드 해역에서 기독교 봉사를 이끈 최초의 서품된 목사였다. 성직자로서 그는 일요일과 성스러운 의무의 날에 미사를 말하도록 요구받았다. (그 중 성 요한 침례교도가 아직 Dombless Bay에 있었던 1769년 크리스마스는 하나였다.) 빌레픽스는 또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픈 사람들을 위한 기도,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는 만에서의 매장 기도를 이끈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4][5]
남아메리카
1770년 4월, 서바이벌 원정은 페루에 도착했고 서바이벌 선장은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통해 착륙하려다가 익사했다. 17개월 후인 1771년, 스페인 당국이 칼라오에서 생장바티스트호를 억류하고 있을 때, 서바이벌의 조카와 빌레페릭스는 금광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배를 떠났다.[4]
교구 사제
빌레픽스는 프랑스로 돌아왔고, 그도 그의 고향인 에투아르의 교구 사제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1780년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메모들
참조
- King, Michael (2003). The Penguin History of New Zealand. Auckland: Pengu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