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의회

Parliament of Toulouse
1789년 프랑스 왕국의 의회와 소버린 평의회에 할당된 영토

툴루즈 의회(프랑스어: Parlement de Toulouse)는 프랑스 왕국요소 중 하나이다. 그것은 파리 의회를 본떠 만든 것이다. 1420년에 처음 만들어졌으나, 1437년과 1443년 찰스 7세퀘르시, 푸아그와 아르마냐크를 포함한 랭게독 지역의 민·형사·교회의 사무에 관한 상소 재판소로 칙령에 의해 확실히 제정되었다. 그것은 프랑스 남부에서 최초로 일어난 파렴치였으며, 파리와의 거리, 그리고 남부 프랑스 법 체계(로마법에 근거한)와 북부 프랑스와의 차이로부터 모두 위신을 얻었다.

파리 의회 다음으로 툴루즈 의회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의 관점은 Rhne에서 대서양으로, 그리고 Pyrénées에서 Massif Central로 확장되었지만, 1462년 보르도 의회가 관할구역인 Guyenne, Gascony, Landes, Agenais, Béran, Périgord에서 제거되었다.

1444년 6월 4일, 툴루즈의 새로운 파렴구가 툴루즈의 샤토 나르보나이스의 방으로 옮겨졌고, 그 해 11월 11일에 공식 개장하였다.

의회는 툴루즈의 종교재판을 운영하여 16세기 중반에 최소한 18명의 개신교 신자들을 산 채로 불태운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것은 1562년 툴루즈 폭동을 앞두고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 저항의 중심지였으며, 그 당시 승리한 이후, 마을의 카피툴을 완전히 지배했다.

1590년 프랑스 종교전쟁헨리 4세는 국왕에 충실한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쟁자인 카르카손 의회를 창설했다.

툴루즈 의회의 가장 유명한 재판은 칼라스 사건이었다. 1762년 3월 9일, 장 칼라스는 파르소네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툴루즈의 의회는 툴루즈의 시립 카피툴레스처럼 억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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