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와흐트마이스터
Gustaf Wachtmeister구스타프 와흐트마이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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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 왕의 오른팔 |
태어난 | 스웨덴 칼스크로나 | 1757년 7월 25일
죽은 | 1826년 7월 20일 스웨덴의 네스 사테리 | (68세)
얼리전스 | |
서비스/지점 | 스웨덴 육군 |
근속년수 | 1770–1809 |
순위 | 일반 |
전투/와이어 |
구스타프 와흐트마이스터(Gustaf Wachmeister, 1757년 7월 25일 ~ 1826년 7월 20일)는 러시아와의 1789년 핀란드 발케알라 전투에서 유명해진 스웨덴 육군 장교로, 팔에 총탄을 맞고 부상을 입었는데, 그 총상은 절단해야 했다.러시아에 대한 참담한 승리로 국내 반대파를 잠재우려다 홍보가 절실한 구스타프 3세에 의해 당대의 영웅이 되었다.
군경력
그는 1757년 스웨덴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스웨덴 귀족 가문의 아들들이 흔히 그렇듯이 1772년 육군 사관으로 임관하여 어린 나이에 군생활에 들어갔다.1778년 그는 1778년부터 1779년까지 바이에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와 싸우는 프러시아 군에 입대하여 캠페인 경험을 쌓기 위해 해외로 갔다.
스웨덴으로 돌아온 와흐트마이스터의 경력은 번창했고 1780년경에는 지방 달라르나 연대에서 대대를 지휘하는 중위 계급의 직위가 있었다.그는 계속해서 발케알라 전투와 그 외 여러 곳에서 러시아와 싸워 1790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두 나라에게 실질적인 이득도 주지 않았다.
그의 후기 정복은 주로 포메라니아에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고 1809년 군사 쿠데타로 현재의 구스타프 4세를 전복시킨 후 스웨덴을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 싸웠다.새로운 국왕 찰스 13세는 와흐트마이스터에게 그가 사바르와 라탄의 전투에서 했던 적진 뒤에서 러시아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사생활
라탄과 사바의 전투가 있은 후, 그는 부하들을 해안으로 후퇴시켰고, 그 해안에서 해군 총에 의해 보호되었다. 그는 상관들로부터 충분히 대담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여겨졌고, 그의 영지에 자진해서 은퇴할 수 있는 선택권을 받았다.그는 1826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 문헌 목록
- 데이비드, 사울 전쟁 고대 이집트에서 이라크까지 2009년 도링 킨더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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