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남자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이 승인한 55번째 대회로, 동시에 제66회 및 마지막 아이스하키 유럽선수권대회의 역할을 했다.25개국을 대표하는 팀들이 여러 단계의 경기에 참가했다.이 대회는 1992년 대회에서도 단체전 출전 자격의 역할을 했다.
상위 챔피언십 그룹 A 토너먼트는 1991년 4월 19일부터 5월 4일까지 핀란드에서 열렸으며 투르크, 헬싱키, 탐페레에서 경기가 열렸다.8개 팀이 참가했는데, 각 팀은 한 차례씩 경기를 했다.그 후 최고의 네 팀은 다시 한번 서로 경기를 했다.스웨덴은 다섯 번째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고, 소련은 27번째 유럽 타이틀을 거머쥐었다.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1라운드 유럽팀 간 경기만 득점 쪽으로 계산됐다.
올해 대회에는 세 번의 중요한 '마지막 대회'가 있었다.7개월 뒤 소련 해체 전 마지막 등판에서 소련이 포착한 별도의 유럽 타이틀이 수여되는 마지막 해일 것이다.A조에서 그들의 위치는 러시아가 물려받게 될 것이고, 새로 독립한 옛 소련 회원국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는 1993년부터 C조 예선전을 치르기 시작했다.올해가 지나면 대회 자체가 크게 달라진다.이것이 8개 팀이 최상위권을 겨룬 마지막 순간이었다; 1992년부터는 12개 조로 확대되어 B조와 C조는 각각 4개 조를 홍보해야 했다.
미국을 제외한 4개 팀의 결승전은 매우 팽팽한 접전이었다.꼴찌 독일과 비기기만 한 미국인들은 개최국 핀스를 간신히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했다.미국은 결승전에서 다른 세 팀에게 쉽게 패배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승전에 참가하였다.스웨덴과 소련을 모두 비긴 캐네디언들은 미국과 경기에서 5골 차로 이긴 다음, 스웨덴과 소련이 비기기를 바라며 캐나다의 금메달을 보장했다.마지막 순간에 7-4로 이기고, 비록 빈손으로 경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필요한 두 골을 넣었다.9-4로 뒤진 팀 테일러 미국 감독은 마지막 순간에 골키퍼를 잡아당겼고, 이후 동메달을 따기 위해 필요한 수의 골을 넣으려 했다고 주장했다.그것은 여러 해 동안 많은 의문스러운 결승전들 중 마지막으로 IIHF가 대회의 형식을 바꾸도록 재촉했다.
소련과 스웨덴은 마지막 경기 3차 시기에서 1대 1로 비겼는데, 캐나다에게 이 경기를 버텨줬더라면 금메달을 안겨줬을 것이다.하지만, 마츠 순딘이 9:37로 골을 넣었고, 스웨덴 선수들은 계속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1][2]
월드 챔피언십 A조(핀란드)
1라운드
| 팀 | 게임. | 원 | 그렸다 | 로스트 | 점수차이 | 포인트 |
1 | 소비에트 연방 | 7 | 6 | 1 | 0 | 41 - 16 | 13 |
2 | 스웨덴 | 7 | 3 | 4 | 0 | 30 - 21 | 10 |
3 | 캐나다 | 7 | 4 | 1 | 2 | 24 - 20 | 9 |
4 | 미국 | 7 | 3 | 2 | 2 | 23 - 28 | 8 |
5 | 핀란드 | 7 | 3 | 1 | 3 | 22 - 15 | 7 |
6 | 체코슬로바키아 | 7 | 3 | 0 | 4 | 19 - 19 | 6 |
7 | 스위스 | 7 | 1 | 0 | 6 | 13 - 26 | 2 |
8 | 독일. | 7 | 0 | 1 | 6 | 13 - 40 | 1 |
파이널 라운드
| 팀 | 게임. | 원 | 그렸다 | 로스트 | 점수차이 | 포인트 |
1 | 스웨덴 | 3 | 2 | 1 | 0 | 13 - 08 | 5 |
2 | 캐나다 | 3 | 1 | 2 | 0 | 15 - 10 | 4 |
3 | 소비에트 연방 | 3 | 1 | 1 | 1 | 10 - 09 | 3 |
4 | 미국 | 3 | 0 | 0 | 3 | 12 - 23 | 0 |
5월 2일 | 미국 | 4–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