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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외로운 아이가 아니었다" 41년 전 입양 간 동생 찾는 누나가 쓴 편지

입력
2025.02.05 08: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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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입양 간 동생 찾는 조애영씨
정부, 입양인-부모 가족찾기만 지원
형제자매는 DNA 등록 등도 안 돼
1950~80년대 집중됐던 해외입양
부모 고령화에 영영 인연 끊길 수도

41년 전 덴마크로 입양 간 1983년생 막냇동생을 찾고 있는 '큰누나' 조애영씨가 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쓴 편지. 조애영씨 제공

41년 전 덴마크로 입양 간 1983년생 막냇동생을 찾고 있는 '큰누나' 조애영씨가 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쓴 편지. 조애영씨 제공

"너는 외로운 아이가 아니었다. 좋은 부모님. 많은 너의 형제들. 어려운 형편으로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네가 늘 그리운 그림자였다." 41년 전 입양 간 동생을 찾고 있는 조애영(55)씨는 지난 3일 한국일보에 보내온 '그리운 나의 아우에게'라는 편지에 이같이 적었다.

애영씨는 오남매의 맏이였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83년 봄 열네 살 터울 남동생이 태어났다. 늦둥이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다는데, 남의 논을 빌려 소작의 절반은 지대로 내며 한창 입성 좋은 2년 터울 다섯 아이를 길러야 했던 애영씨네 형편은 좋지 못했다. 애영씨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칼국수를 퉁퉁 불려 먹고, 묽은 김치죽을 쒀 겨우 배만 채우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오남매를 집에서 낳았던 어머니는 "낳고 입양 보내는 조건으로 병원비를 안 받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서울 강서구 공항동 산부인과로 향했다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애영씨가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이었다. 큰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집안 어른들끼리 나누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기로 한 부모님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평생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뒤늦게 막냇동생의 존재를 알게 된 애영씨 형제들은 "차라리 내가 입양 갔었어야 했다"는 미안함에 수소문에 나선 끝에 동생이 홀트아동복지회를 거쳐 덴마크로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갓 태어나 가족 품을 떠난 동생은 이름이 없었지만, 아버지(조성환) 어머니(이옥희) 이름이 입양기관에 남아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홀트 측에 동생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부탁하자 "어떤 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외입양인들의 친생가족찾기를 지원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에서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입양인만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라는 입양특례법을 근거로 댔다. 아동권리보장원 측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40대가 되면,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으러 많이 온다. 동생이 찾아오면 그때는 연결해줄 수 있다"고 애영씨에게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애영씨 가족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애영씨의 아버지의 나이는 여든셋, 어머니는 여든하나다. 아버지는 2년 전 심장 수술을 한 후 급격히 기력이 떨어졌고, 어머니도 최근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문제는 현재 해외입양인 친생가족찾기는 친부모와 입양인 사이만 지원한다는 점이다. 입양인이 한국에 찾아오더라도, 아동권리보장원은 친생부모에게만 연락을 취하고 형제자매에겐 연락을 하지 않는다. 경찰의 유전자(DNA) 등록을 통한 상봉도 친부모와 자녀 상봉만 가능하다. 즉 애영씨의 동생이 친가족을 찾고 싶어 해도, 친부모가 돌아가신 후라면 애영씨에게 연결을 안 해주는 것이다. 애영씨는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자랐을 막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멘다"며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애영씨 가족만의 일은 아니다. 정부 주도로 진행됐던 해외입양은 1950~80년대 초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때 부모였던 이들이 80, 90대 고령이 됐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현행대로라면, 부모들이 세상을 떠나면 입양인들이 형제자매와도 만날 끈은 영영 끊긴다. 복지부에 따르면 1958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동은 17만 명이 넘는다.

덴마크 한인 입양인 그룹(DKRG) 대표인 홍민(50)씨가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받은 입양기록 일부. 1974년,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그는 2022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해외입양인 인권 침해 조사 신청을 냈다. 홍민씨 제공

덴마크 한인 입양인 그룹(DKRG) 대표인 홍민(50)씨가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받은 입양기록 일부. 1974년,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그는 2022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해외입양인 인권 침해 조사 신청을 냈다. 홍민씨 제공

입양인이 친생가족을 찾기까지 난관도 너무 많다. '친생부모의 개인정보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입양인들도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친생부모에게 상봉 의사를 묻는 편지만 보낼 수 있는데, 수십 년 전 정보를 토대로 한다. 입양인이 가지고 있는 입양서류에 부모님의 이름이 잘못 적혔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9월 덴마크 의회 사회위원회 소속 의원 7명 등이 과거 해외입양 문제 조사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증인으로 나섰던 이반 호프만(49)도 그랬다. 코펜하겐 대학 의과대학의 유전학 교수로 재직 중인 그에 대해 입양기관이 가지고 있는 서류는 덴마크 입양 버전, 네덜란드 입양 버전 두 가지였다. 친생가족은 평생 그가 네덜란드로 입양 간 줄 알고, 잘못된 정보로 호프만을 찾아 헤맸다. 호프만이 가지고 있었던 서류엔 친생가족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해외입양인들의 친생가족찾기를 지원해오고 있는 신필식 입양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친생부모 세대가 고령이 되어가는 만큼 입양인들이 형제자매도 정보공개를 요청하거나 친생가족 찾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해왔지만, 국회 법안은 물론 아동권리보장원 규정도 변화가 없다"며 "너무 늦기 전에 변화가 절실하다"고 했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현재 해외입양 서류 공개 청구 자격은 입양인에 한정하고 있다. 친부모와 형제자매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길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41년 전 덴마크로 입양 간 1983년생 동생을 찾고 있는 조애영씨가 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은 편지. 조애영씨 제공

41년 전 덴마크로 입양 간 1983년생 동생을 찾고 있는 조애영씨가 동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은 편지. 조애영씨 제공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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